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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영 Mar 25. 2022

너와 나의 클래식


 “화영아, 조금 후면 지하 주차장이야. 잠깐 내려올래?”

 “네, 알았어요.”     


친정 아빠가 아이스크림과 아이들 과자를 박스 한가득 주시고는 5분도 안 되어 가셨다. 바삐 와서 내려놓고 가는 먹거리는 온통 손주들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실어 현관문을 열고 내려놓는 순간, 상자 안 맨 위에 놓인 초코파이 상자가 눈에 들어온다. 절묘하게도 TV 광고 현실 버전을 찍은 것 마냥 '정情'이라는 한자가 눈에 박힌다. 속으로 ‘과자 이름 진짜 잘 지었네’라고 감탄하면서 이내 솟아오르는 눈물 상자를 들어 올린다.  

     

아빠는 어릴 때에도 집에 돌아오실 때 종종 양손 가득 들고 오셨다. 엄마는 너무 손이 크다고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덕분에 동생과 나는 양껏 고르고 먹을 수 있는 여유를 맛봤다. 나중에 IMF라는 후폭풍을 받아들고 힘든 시기가 있었지만 마음껏 먹던 시절이 있어서 ‘우리가 모두 아는 그 맛’으로 버틸 수 있었다. 그래서 아빠는 본인이 해줄 수 있는 시기에 최선을 다해 산타처럼 문득 먹거리 상자를 무심히 놓고 사라진다.      


상자에는 종류별로 묶인 아이스크림 봉지와 빵 종류의 과자가 있었다. 빵빠레, 보석바, 죠스바, 쌍쌍바, 구구콘, 붕어빵 과자, 고래밥, 초코송이, 가나초컬릿..     


이따금 마트에 들러 과자와 냉동 코너를 돌고 나면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착각에 빠진다. 편안하고 능숙하게 아는 과자 이름을 따라가는 시선. 아이스크림 냉장고에서 차가운 냉기 사이로 유난스럽게 부스럭대며 얼음덩이를 휘젓는 손이 낯설지 않다. 그러고는 ‘서주 우유 아이스바’를 찾아 번쩍 들어 보인다.- 찾았다!      


시간이 흘러도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얼마나 반가운지 안도감마저 들 정도다. 일곱 살, 유치원 견학으로 아이스크림 공장에 견학을 갔었다. 다른 건 기억이 나지 않지만,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고채로 찍혀 나와 무빙 트레이에 간격을 두고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이 신기했다. 흰색 모자와 비닐장갑을 낀 아줌마들이 분주하게 완성품을 점검했다. 모양이 흐트러진 것은 망설임 없이 쓰레기통으로 버려졌다. 우유 아이스바는 하얗고 담백한 모습으로 예전보다 연유의 달콤함이 유독 먼저 와닿는다. 전보다 단맛이 더 추가됐나? 어린 시절과 마흔이 훌쩍 넘은 취향의 갈래에서 오묘한 감정이 입안을 춤춘다.      


냉동실 안, 친정 아빠의 봉지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낸다. 막대 두 개를 심어 만족감을 극대화한 쌍쌍바다. 아이와 하나씩 나눠 먹고 있노라면 이 클래식은 순식간에 멈출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시간을 거스른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감탄하는 순간, 무수한 과자계의 클래식 사이로 ‘인생에 클래식이라 손꼽는 것들이 영원하기를’ 얼얼한 혀로 핥으며 바란다. 그리고 부모의 자식 사랑만큼이나 신파를 품은 고전적이고 일관된 클래식이 또 있을까 곱씹는다. 그리고 아이와 사이좋게 알킨더를 하나씩 뜯으며 오늘의 장난감을 나눈다. 시간이 지나면 너와 함께 과자를 뜯고 서로의 장난감이 더 부럽다고 외치는 이 시간도 금새 추억처럼 지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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