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느 궤도를 어떤 주기로 돌고 있을까
2월 말부터 약 2주 동안을 끈질기게 앓았다. 급작스레 나빠진 몸으로 끙끙대다가, 어느새 조금쯤 나아졌나 싶으면 새롭게 또 머리를 찌르는 듯한 통증과 온통 무기력해진 몸이 나를 다시 아래로 끌어내렸다. 쉴 새 없이 바늘로 찌르는 듯한 감각이 내 머리를 쿡쿡 건들었고 무기력한 몸을 끌고 일어날라치면 시야가 노랗게 물들며 식은땀이 났다.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무기력한 나날을 반복했다. 그렇게 몽롱한 정신으로 2주를 지냈다.
급작스레 아프기 시작했던 것처럼 끝나는 것도 급작스러웠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니 더는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한바탕 나를 괴롭힌 편두통이 사라진 후에도 내 몸은 오랜 기간 앓던 감각을 기억했다. 여전히 멍하고 무기력한 데다 쉴 새 없이 잠이 쏟아졌다. 차마 항거할 수 없는 압도적인 무기력함에 정신없이 꿈속에 파묻혀있다 눈을 뜨면 이미 오후의 한가운데였다. 까끌까끌한 입에 겨우 몇 숟갈 뜨고는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핸드폰으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주워 담았다. 소설을 읽었다. 인간의 자아와 시간과 운명에 대한 이야기들. 이따금 온통 멈춘 듯한 내 주위의 공기가 내 몸 위로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다시 잠에 빠져들면, 나는 깊은 무의식 속으로 잠겨 들었다가 잠깐 희미하게 의식을 차리기를 반복하곤 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면 해가 가장 높은 곳을 찍고 이미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중이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지금은 몇 시인지, 모든 감각이 무뎌졌다.
시간은 그 와중에도 멈추지 않고 흘렀다. 내가 침대 속에 파묻힌 채 멈춰 있는 동안에도 수많은 낮과 밤이 스쳐 지나갔다. 지구는 수만 년의 시간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변함없이, 쉬지 않고 하루 동안의 자전을 반복하고 정해진 공전 궤도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에 반해 나는 마치 정해진 주기와 정해진 궤도를 이탈해버린 채 정처 없이 부유하고 있는 듯 했다. 의문이 들기도 했다.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상태에 맞는 주기로 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해진 궤도 따위는 없고 또 다른 궤도에 올라탄 것은 아닐까. 조금쯤 조급하기도 했고 전혀 조급하지 않기도 했다. 이상한 감각이었다.
일주일쯤 지났나, 조금씩 멈춰 있던 감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거의 3주간이나 정체되어 있었던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감각이 되돌아왔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그 후에는 무책임하게 내팽개쳐두었던 내 몸과 내 일상이 본래의 주기를 찾아 돌기 시작했다.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흘렀다. 다시 이른 시간에 눈을 뜨고, 정상적으로 세 끼 식사를 하고, 올해에 다짐해두었던 일을 이어 시작했다. 내게서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그저 시간이 2월에서 3월이 되었을 뿐. 지구는 늘 같은 속도로 돌아야 하지만 사람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기꺼웠다.
우리는 모두 우리 각자에게 맞는 주기와 궤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각각의 행성이 각자의 궤도에서 서로 다른 주기에 따라 도는 것처럼. 하지만 우리가 행성들과 다른 것은, 행성들은 수만 년의 시간 동안 변함없이 같은 속도로 같은 궤도 내에서 돌고 있지만 우리는 늘 같은 속도로 돌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똑같은 궤도 위에 머물러 있을 필요도 없다. 한 사람이 온 인생을 살아내는 동안 그에 적합한 주기와 적합한 궤도는 그때그때 다르다. 20대의 주기와 60대의 주기가 다르듯이, 어제의 주기와 오늘의 주기도 같지 않다. 우리는 그때그때에 맞는 주기로 하루를 살아내고 한 해를 보내야 한다. 몇 년간 같은 궤도 속에서 돌 수도 있지만, 생애의 주기에 따라 그에 적합한 궤도를 찾아서 타고 돌게 된다. 지금의 궤도가 나와 맞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우리 스스로 다른 궤도를 찾아서 떠날 수도 있다.
나는 작년에 나의 궤도를 지금의 궤도로 옮겼다. 지금의 궤도가 나에게 적합한 궤도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루하루 수없이 많은 주기로 자전하면서 이 궤도를 한 바퀴 공전하고 난 후에야 조금쯤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전의 궤도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또 다른 궤도를 찾아, 궤도를 수정할 용기를 내어 옮겨 타기까지 5년이란 시간이 걸렸으니까. 그저 지금은 최선을 다해서 매일매일의 주기에 맞게 자전하는 수밖에 없다. 다만 이전보다는 앞으로가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전의 궤도에서보다는 최선을 다해 삶을 마주하고 있으니까. 이전의 궤도보다는 현재의 궤도에 있는 것이 더 즐거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