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근영 Feb 19. 2022

나에게 하는 말

정말 잘했어, 그동안 수고 많았어

 학기가 끝이 났다. 정말로 끝이 왔다는 게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다가, 또 조금은 와닿았다가, 다시 또 그 사실이 얼떨떨해졌다가 한다. 솔직히 나는 내가 못 할 줄 알았다. 내가 끝까지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12월부터는, 그 끝은 너무나 멀고 걸어가고 있는 나는 한없이 느리게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가기는 하는 건지, 내 시간만 슬로우 비디오 속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한 번 중심을 잃어버려 휘청이는 몸과 마음으론 한 발짝을 떼는 것에도 매번 온 힘을 쏟아야 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나는 별것 아닌 잔가지나 돌부리에도 쉽게 무너져내려 그다음 걸음을 떼지 못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저 끝과 나 사이의 거리, 그 거리에서 오는 괴리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더는 힘들다고 느껴져서 진심으로 멈추려 했다. 멈추는 데서 더 나아가 되돌아온 길을 향해 다시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내가 다시 일어나 끝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주변 사람들의 응원과 도움 덕분이었다. 걸음을 옮기는 것은 나의 몫이었을지 몰라도 다른 이의 손길 없이는 난 절대로 끝에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모든 일을 나 스스로의 힘으로만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지나친 순진함 아니었을까? 늘 혼자만의 능력으로 해내지 못할 때마다 나를 비난해왔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뭔가를 해내는 건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느꼈다.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고 지지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인 것 같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다른 이 없이는 해내지 못할 것이었대도, 어쨌든 그것은 내가 해낸 것이다. 남에게 업혀갈 수 없는 내 인생인 만큼 내가 걸어서 도달한 것이었다. 그래서 내게는 일단 많이 애썼다고, 정말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를 놓지 않아 준 많은 이들에게도 너무나 감사하지만, 여기까지 해낸 나 자신에게도 정말 고맙다고, 호들갑스럽게 보단 묵묵하게 내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다.

 이 성취가 나의 어딘가에 뿌리를 내린 것 같다. 나 혼자 해낸 것이 아니래도, 나 혼자였다면 분명히 그만뒀을 거였대도 어쨌든 나는 끝까지 왔다. 이번에도 또 실패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실패가 아니었다. 실패라고 생각했던 경험으로부터 많은 걸 얻었다. 지난 삶에서 실패라고 여겨왔던 것도 그렇겠지. 거기서 얻은 것이 결국 내가 되었고 또 그 힘으로 여기까지 온 거겠지. 내가 예상했던 모양대로 성공하지 못해도, 그 실패라고 생각하는 경험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은 것 같다. 앞으로 성공이냐 실패냐 결과로만 단정 짓지 않아야겠다. 내가 기대하고 바란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거기까지 걸어가는 동안의 매 걸음걸음에서 남는 많은 흔적들이 있다. 우리는 그 흔적을 딛고 또 앞으로 나아간다.


 가슴 한쪽이 어딘가 묵직하다. 나를 짓누르는 무거움이 아니라 나를 붙잡아주는 무게감. 이 무게감이 언제고 또 나를 지탱해줄 것 같아서 조금 든든한 마음이 든다. 이제 나는 번 여정에서 얻은 것들을 지니고 또 다음 걸음을 내딛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녕한,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