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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Apr 21. 2022

여로에서 (31)

그곳에는 그곳만의 룰이 있다


 알람은 하나만 맞췄다.   반에 일어나지 못하면   사십 분에도 일어나지 못할  같아서였다. 살면서 늦잠으로 많은  잃어왔지만, 결과적으로 인생 자체를 잃진 않았다. 늦잠으로 잃어버릴 정도의 것이었다면 애초에  것이   없었던 것이다. 너무 운명론적인 사고회로가 아니냐고?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이것저것 잃고 골치를 썩어대다보면. 끝내는 뇌의 일부가 돌아버린다.



 떠나기 전에  차례  짐을 점검하고, 택시가 잡힐 때까지 창밖을 바라봤다. 해가  기미도 없이 밤보다  새카만 밤이 도시 전역에 드리워 있었다. 못보던 러시아 국기가   건물 옥상 위에서 휘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기온은 낮았으나 바람이 뜸해 춥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사람이 많았다. 도시 전역이 불을 끄고 인적이 사라진 시간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새벽녘이나 이른 아침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려고 터미널 로비에 대기 중이었다.  이외의 외국인은 거의 없었다. 빨간 여권을 손에 들고 있는  보니 대부분은 러시아 사람 같았다. 국내 사정이 좋지 않으니 우선은 육로로 국경을 넘으려는 걸까? 자세한 사정은   없다.

 두 나라 사이를 오가는 버스여서인지 탑승하기까지의 절차가 여느 고속버스보다는 훨씬 복잡했다. 버스마다 운전기사 겸 승무원이 두 명이나 붙어있었고, 좌석을 배정하기 전에 탑승권의 유효여부와 여권, 비자 등을 꼼꼼히 확인한 다음에야 차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내 경우 앞에 있는 사람들이 미리 출력해놓은 서류 비자 같은 걸 꺼내들길래 끝까지 조마조마 했다. 핀란드 입국을 위해 준비한 비자? 내게는 존재할 리가 없는 물건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핀란드에 입국할 예정 자체가 없었으니까.

 다행히 비자체크는 러시아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절차였다. 대한민국 여권은 해외에서 매우 취급이 좋은 편이어서 웬만한 나라들과는 전부 무비자 협정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한국인들은 외국인 중에서도 상당히 무해한 부류로 취급되는  같다. 다른 나라까지 가서 불법체류를 하며 허가되지 않은 장사를 하거나, 테러 공작 등으로 피해를 입히는 일도 없다. 오히려 생활수준이 좋고 해외관광을 즐기는 국민들이라 되도록 많이 오게끔 유도해서 관광수입을 올리는 쪽이 좋다그렇게 여겨지는 덕분에, 한국인은 구십일 동안은 비자없이도  나라에 머물  있게 된다. 어떤 러시아인은   넘게 걸렸던 탑승 절차가 내겐 이십초 남짓에 불과했다. 입국목적이나 비자를 빡빡하게 확인할 필요가 없으니까. 이해관계가 희미한  나라 사람이니까. 오히려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와 러시아이기 때문에, 그들끼리는 출입국 심사를  엄격하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럴 땐 한국인이라 참 다행이군…’

 한국같은 선진국에 태어나서 천만다행이야, 대한민국 만세—로 이어지는 사고회로는 이제 안이하다. 그냥 때와 장소에 따라 내게 주어진 조건이 좋을 때가 있고, 나쁠 때도 있는 것이다. 이런 일에 일희일비하기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8번 좌석에 앉았다. 옆자리는 쭉 비어있었다. 앉은 자세 정면으로 보이는 앞좌석 뒷부분에는, 태블릿 PC 화면 같은 것이 부착돼 영화며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돼있었다. 물론 그런데 저장돼있는 콘텐츠들은 지금 기준으로 꽤 오래된 것이거나, 꽤 괜찮다해도 한국어 지원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순순히 노트북을 꺼냈다.

오전 여섯시 삼십분. 마침내 버스가 상트페테르부르크 버스터미널을 출발했다. 해가 뜨기 직전이었고, 고속도로로 통하는 교차로는 아직도 주황색 가로등들이 수놓고 있었다. 버스 내부의 불은 머지않아 꺼졌다. 나는 그 일련의 과정에서, 분위기로부터, 겨울철 서울에서 강원도 스키장으로 향하는 야간버스가 떠올라 대뜸 뭉클해졌다. 별안간 한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언젠가 꿈에서 이 비슷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면? 나는 내가 휘닉스파크행 셔틀버스 안에 있는 꿈을 꾸었다고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다. 수천킬로미터를 지나왔더니 비행기가 취소돼서, 하는 수 없이 국경을 넘어 우회경로로 귀국하려는 첫 관문이 아니라. 예지몽은 그 수신자가 과거의 자신이라는 치명적 결함을 가졌다.

 버스가 대도심을 벗어나 교외도로로 접어들었다. 창밖에 앙상하게 꺼진 숲이 펼쳐졌다. 천정을 덮은 구름들 사이로 거뭇거뭇 햇빛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탈없이 간다는 가정하에, 헬싱키까지는 일곱시간이 걸린다. 나는 노트북으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메모하다가, 도착하기까지  시간이라도 눈을 붙이자는 생각으로 머리를 뒤로 기댔다.


정신을 차렸을 땐 버스가 멈춰있었다. 버스 출입문 쪽에서 군인 두 명이 운전기사 한 명과 대화를 하더니, 나를 포함한 탑승객들의 여권과 비자를 재차 확인하기 시작했다. 나는 버스에 탑승했을 때도 한 검사를 왜 또 하나 싶으면서도, 이번에도 별 일 없으리라는 생각으로 편히 여권을 내밀었다.

 군인은 내 여권을 유심히 보더니 무어라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뭐가 잘못된건가 싶어 황급히 번역앱을 켰지만, 국경 근처까지 와서인지 인터넷이 잘 터지지 않았다. 버스는 계속해서 멈춰 있었고, 다른 탑승객들은 하나둘씩 고개를 들어 내가 있는 쪽 자리를 쳐다봤다.

 ‘설마 내가 지뢰인가? 나 때문에 별 것도 아닌 검문이 오래 걸리고 있는 건가…?’

 군인은 영어를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저 내 여권과 이민카드를 가리키면서, 계속해서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기분만 전달하고 있었다.

 끝내 뒷 자리에 앉은 다른 승객이 영어로 몇 마디 설명을 해줬다. 듣자하니 이민카드 문제 같았다. 왜 이걸 복사본으로 가지고 있느냐? 원본은 어디가고 없느냐? 뭐 그런 얘기. 나는 기적적으로 연결된 번역앱으로 ‘나는 이민카드를 한 차례 분실했고, 그 도시에 있던 관공서에서 사본을 새로 발급받았다. 이것이 문제가 됩니까?’ 라는 메시지를 통역해 보여주었다.

 그러자 군인은 머리를 갸웃하더니,  여권을 가지고 버스 밖으로 나가있다가  분이 지나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아무 일이 없었다는  여권을  다음 다른 사람들의 여권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니 복사본을 만들어둔 것일까. 어쨌든 불시 검문은 별탈없이 끝났고, 버스는 다시 출발해 국경검문소가 있는 쪽으로 달렸다. 길가 표지판에 키릴문자와 영어로 각각 ‘핀란드 방면이라 표시돼있는 것이 보였다.



 공항이 아닌 육로에 있는 검문소에서 출입국심사를 하는 건 난생 처음이었다. 하기야 한국은 삼면이 바다에, 대륙으로 통하는 길은 휴전선으로 막혀있으니 웬만해선 육로로 국경을 건널 일이 없기는 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검문소에는 핀란드인들이 있었다. 그들에 대한 첫 번째 인상은 대개 키가 크고 말쑥한 인상이라는 것, 두 번째는 러시아인들과 달리 영어 구사에 무척 능숙하다는 것이었다.

 국경검문소에 도착한 버스는 모든 승객을 하차시키고, 트렁크에 실어놓은 모든 짐을 꺼내 소지품 검사대로 보낸다. 그 사이 나를 포함한 승객들은 핀란드 입국심사를 받았다.

 한국인은 핀란드에도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니 여권 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나는 아직 PCR 검사 결과를 받지 못했다. ‘코로나 관련 사유로 입국이 거부당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입국심사대에 들어가 질문을 주고 받는 동안에도 계속  수밖에 없었다.



 “환영합니다. 무슨 목적으로 핀란드에 방문하시는 거죠?” 금발의 핀란드 입국심사관이 내게 물었다.

 “아, 그,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나는 머리가 복잡해 간단한 대답을 하는 데에도 애를 먹었다. 한국에서 왔다니, 그건 이미 내민 여권만 봐도 알 수 있는 거잖아. 왜 얘기했지? 필요한 것만 얘기하자. 필요한 것만.

 “러시아 여행중에 귀국행 비행기가 취소됐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핀란드를 경유하려고 해요”

 “아, 그러신가요?”

 “네”

 “핀란드에 머무는 기간은?”

 “하루도 안 있을 것 같아요. 내일 오전에 비행기가 출발합니다”

 “아하~” 나는 그렇게 대답하는 입국심사관의 표정이 사뭇 온화해진 것을 눈치챘다. “직업이 뭔지 여쭤봐도 될까요?”

 “작가입니다. 글을 써요”

 “좋군요. 그럼…” 입국심사관은 마지막으로 내 얼굴과 사진을 몇 번 교차해보고, 여권을 되돌려줬다. “아. 백신은 맞으셨나요?”

 “네. 한국에서 두 번 접종했어요”

 “어디 걸 맞으신거죠?”

 “화이자입니다.”

 “네. 핀란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나는 고개를 숙인 뒤에 “키토스Kiitos”라고 말했다. 핀란드어로 ‘감사합니다’ 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버스안에서 외워둔 몇 가지 의사표현이었다. 입국심사관은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입국심사장에서 나오자 이미 심사가 끝난 승객들이 모여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근처 벤치에 앉아서 크게 한숨을 쉬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이걸로 적어도 핀란드에 입국하는 절차는 끝이 난 것이다. 그렇게 국경을 넘어 핀란드 안으로 들어왔다. 구글 지도로 본 내 위치 역시 핀란드에 있는 것으로 나왔다. … 어떻게 다른 나라에 오긴 왔다! 처음에는 진짜 말도 안 되는 계획 같았는데. 이렇게 조금씩 풀려가고 있구나, 어떻게든 돌아가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헬싱키행 버스에 다시 몸을 실었다.


  ‘기왕 일어난 김에 뭐라도  쓰다 자자 계획은  삼십분만에 좌절됐다. 심사장 안에서 어지간히 겁을 먹고 있었던지, 버스 좌석에 앉자마자 긴장이 풀려 잠이 몰려왔다. 일어났을 때는 이미 오후  , 버스는 헬싱키-반타 공항에 정차해 있었다. 반타는 헬싱키 교외에 위치해 교통허브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위성도시라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포 같은 느낌일까. 세계에서 가장 검은 색으로 알려져 있는 ‘반타블랙 관계가 있나 싶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나는 잠깐 버스에서 내려 공항 주위를 둘러보다가 자리로 돌아왔다.



핀란드 도로가는 러시아처럼 숲이 많다. 중간중간 터널처럼 시야를 가로막는 거대한 암석이 자주 보였다. 암석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벽처럼 매끄러운 모양에, 햇빛을 반사해 별처럼 반짝거리는 모습이 멋스러웠다. 뭘 조각해본 경험이라곤 초등학생 때 지점토를 깎아본 게 전부이지만. 그런 돌을 깎아 조각상을 만든다면 꽤 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향에서 헬싱키 시내까지는 삼십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승객들은 고속터미널 같은 곳에 버스가 멈추자마자 짐을 챙겨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나는 버스 승무원 아저씨  쌍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 다음 터미널 밖으로 나왔다.



 헬싱키는 현대적인 도시였다. 물론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도 크고 현대적인 대도시다. 하지만 헬싱키가 현대적인 방식은 언뜻 보기에도 다른 도시들과 달라보였다. 그건 도무지 언어화하기 곤란한 지점에서의 차이였다. 러시아보다 크고 웅장한 건물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한국보다 사람이 많지도 않다. 지천에 문화유산이 널려있다는 느낌도 없고, 특출나게 대단한 양식이나 구조가 눈에 띄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그 도시 한가운데에 서서 두리번거렸을 때. 나는 내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서, 어떤 식으로의 일관된 원칙과 질서를 느낄 수 있었다. 시계바늘처럼 움직이는 자동차, 노면전차와 행인들. 과연 ‘이것이 선진국이라는 건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풍경이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헬싱키에서 머물 하룻밤짜리 호스텔을 예약해놓은 상태였다. 다만 핀란드는 평균임금과 생활수준이 높은만큼 물가도 살인적이어서, 가장 저렴한 호스텔조차 이십사유로—우리돈으로는 삼만원—의 숙박료가 들었다. 러시아였다면 하루에 만 원 정도로도 떡을 쳤을 텐데. 기본물가가 이렇게나 차이가 나니 러시아 사람들이 북유럽 방면으로 관광을 오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묵자흑이라고 하지만, 국경을 맞대고 있다고 해서 꼭 닮은 나라가 되는 건 아니다.

 터미널에서 호스텔까지는 도보로 삼사십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걸어갈 거리는 아니지만 캐리어 짐이 있는만큼 이동에 힘이  것이다. 택시는 보나마나 비쌀  뻔하고. 그나마 ‘헬싱키는 대중교통이  발달되어 있다 정보를 토대로 HSL이라는 앱을 다운로드 받았다. 5유로에 헬싱키 시내의 노면전차, 버스, 지하철을 자유롭게 이용할  있는 종일권을 결제할  있었다.



 노면전차라고 하면 흔히 트램이라고 불리는 물건이다. 외형이나 내부모습은 버스인데, 길을 왔다갔다하는 방식은 스크린도어없는 전철에 가깝다. 운행 중 소음이 거의 없고 자체가 흔들리는 느낌도 없다. 사람이 많은 역 근처, 큰 도로 부근만이 아니라 인적이 드문 골목골목까지 노선이 뻗어있는 것이 말그대로 이곳의 대중교통이다. 핀란드어 철자가 헷갈려 잘못된 역에 내릴뻔하기도 했으나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유로호스텔Eurohostel 이름대로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들 묵으러오는  같았다.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고 있었다. 로비에서부터 단색 위주의 깔끔한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다.  카운터 직원은 영어 응대가 탁월했다. 내가 묵을 호수는 이백이십이호이고, 거기에 있는 A 침대를 이용하라는 안내를 받고 방을 찾아갔다.



 방 하나에 일층짜리 침대가 두 개 있는 2인실이다. 침대 말고는 큰 책상과 의자, 개인용 캐비넷, 취침용 전등, 책장이 구비되어 있었다. 느낌만 보자면 숙박업소가 아니라 디자인 전문 대학교의 신축 기숙사 같다. 물론 그것도 어떤 관점에선 숙박업소와 비슷하지만… 나 말고 다른 숙박객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여유롭게 옷을 갈아입고 짐을 캐비넷 안에 집어 넣었다. 그러고 나서 침대에 걸터 앉아 마른 세수를 했다. 한 달 전, 한국을 떠나고 나서부터 나는 이런 순간을 조금 즐기게 돼버렸다. 또 한 번 무사히—우여곡절이 없지는 않았지만—목적지에 도착해, 잠깐의 안식을 얻게 되는 순간. 나는 정적을 확인한다. 일분일초가 이리도 가까이 있음을 느낀다.


 배가 고파서 밖으로 나왔다. 지도상으로는 숙소 근처에 식당이 몇 군데 있었지만, 마침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았다. 하나하나 돌아다니기에는 힘도 없고, 선택지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트램을 타고 도심부로 향했다.

 아까 왔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길이었다. 헬싱키 대성당 앞을 지나가는데 광장 쪽에서 소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봤다. 핀란드와 우크라이나 국기가 함께 있어서 반전시위라는 것을 알았다. 러시아를  벗어난 시점에서 그런 광경을 보자니 생각이 복잡해졌다.  시기에 러시아만큼 유럽에서 미움받는 국가가 있을까? 일방적인 침공으로 전쟁을 일으켰으니 자업자득이기는 하지만그런 나라를 가로질러와서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나도 어쩐지 공모자가  기분이었다. 딱히 죄는 짓지 않았는데도. 세상에는 그런 뻔한 사실만으로 해명되지 않는 기분이 있다.



 핀란드는 공연하게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불리는 곳이다. 사회복지, 교육제도, 시민의식, 새집 인테리어와 동계올림픽 성적까지. 이른바 북유럽 모델이나 스타일이라는 것이 수많은 분야에서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북유럽’이라는 단어가 주는 문화적 압력은 실로 무시무시하다. 가령 술에 취해서 새벽도로를 무단으로 횡단하고 나서도, “북유럽 국가에서는 늦은 밤에 신호등을 꺼놓는다고 해… 사고가 날 가능성도 높고, 밤에는 억지로 운전을 하기보다 집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어서지…” 따위의 말로 둘러대면, 사실 다 지어낸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뭔가 그럴듯해보이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니, 아님 말고….

 그래서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칭호를 얻으려면 어떤 것들이 있어야 하는가. 일단은 일요일에 쉬는 가게가 많아야한다. 나처럼 근본없이 일요일에 입국한 관광객은 식사를 해결할 곳이 여의치 않아야 한다. 어떻게 열심히 찾아 들어간 뷔페 식당에서 여유롭고 맛있는 식사를 할 수야 있겠지만, 자그마치 55유로라는 정신나간 밥값에 다리가 후들거려야 한다. 서비스도 좋고 티라미수도 맛있긴 했지만 밥 한 끼에 칠만오천 원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밥먹는 도중에 받은 메일, PCR검사 결과를 알리는 메시지 결과가 음성이 아니었다면, 그 핀란드 뷔페식당 계산원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만들 뻔 했다. 참 다행이다.

 난생 처음으로 순수한 의미의 유럽 국가에 발을 디뎠던 참이지만. 아쉽게도 내겐 도시 곳곳을 뜯어보고 다닐 시간도 에너지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때마침 지척에 있던 핀란드 국립 미술관Ateneum에 들러 전시를 구경하는 것 정도였는데, 입장권만 18유로로서 트레티야코프와 예르미타시 미술관 입장료를 합친 것보다도 더 비쌌다.

 ‘그만큼 자국 미술에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거겠지라고 생각하며 들어갔다. 입장권은 따로 출력해주지 않고 손등에다 스티커 같은  붙여준다. 접착력이 좋아서, 코로나 예방차 화장실에서 손을 빡빡 씻지 않는다면야 떨어지지 않을  같았다.



 아테니움의 전시는 그 방식대로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전시품목의 팔할 정도는 핀란드 자국의 미술품이다. 어떻게 발음해야할지 모를 이름의 화가들이 훌륭한 그림들만큼 많았고, 회화 뿐 아니라 조각과 사진까지 고루 조화롭게 배치한 전시방식이 보기에 좋았다. 영어표기도 잘 되어있다. 핀란드인의 영어표기는 Finnish다. 처음에 봤을 땐 웃겼는데 보다보니 멋있게 느껴졌다.

 나머지 이할은 어찌어찌해서 소장하게 된 외국 회화들이다. 고갱과 세잔이 각각 두 점씩, 그리고 고흐가 죽기 전에 그렸다는 풍경화가 한 점 걸려 있었다. 나는 늙은 할머니 한 분이 마스크와 머플러로 입을 가린 채, 한참동안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하며 그림을 감상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나오는 길에서 돌바닥에 떨어진 지우개도 봤다. 엄지 손가락만한 자두색 지우개였는데, 꽤 오래 사용한듯 많이 닳아 있었다. 잃어버린 사람이 꽤 속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억 속에서의 핀란드라고 하면, 무슨 국가별 교육수준 평가에서 한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한 나라라는 것, 그리고 포뮬러원 경주에서 은퇴한 과거의 챔피언 키미 라이쾨넨이 핀란드 출신이라는 것 정도다. 과연 교육수준 탑이라는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미술관 직원은 물론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마실 것이나 좀 사려고 들렀던 마트의 계산원까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여기는 2개 국어가 기본 소양 쯤 되는 것일까? 공교롭게도 내가 들른 식료품점 간판에는 ‘K-Mart’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한국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았지만. 아마도 코사-마트의 줄임말이 아닐지? 이것도 아님 말고다. 당연히 아니겠지만.

오후 일곱시쯤 되어서 숙소로 돌아왔더니 모르는 금발 외국인이 짐을 풀고 있었다. 네덜란드 학생으로 첫 해외여행을 왔다는 조이. 키가 멀대처럼 큰데 얼굴은 영락없는 고등학생처럼 어려보였다. 나이를 묻자 진짜 열아홉살이라고 했다. 확실히 이쪽 사람들은 빨리빨리 커버리는구나.

조이는 대학에서 영어와 스페인어를 전공하고 있다는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말이 엄청나게 많았다. 만난지 삼십분도 안 됐는데 자신이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출신이며, 어렸을 때부터 거기 있는 축구팀 PSV의 팬이었다는 사실까지 줄줄 말해왔다.

 “…PSV란 말이지?”

 “맞아. 아주 훌륭한 팀이야. 요즘 들어서는 못하지만” 조이가 그런대로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조이. 미안하지만, 이럴 때 한국인이라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질문이 있어…”

 “뭔데?”



 “너, 호, 혹시…” 나는 자괴감에 말을 더듬었다. 이런 질문을 내 입으로 직접 하게 될 줄 몰랐다. “…너 혹시 박지성 알아?”

 “아, 아아. 지성팍 말하는 거구나. 당연히 알지… 근데 알기만 알아. 어떤 선수였는지는 잘 몰라” 라고 대답하는 조이의 표정은, 그야말로 ‘김치를 햄에 싸서 드셔보세요’ 를 들은 톰 행크스의 그것이었다. 아무래도 별로 좋아하는 선수는 아닌 것 같았다. 하기야 열아홉살이면 세대도 달랐을 것이고.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남자들끼리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게임 얘기도 하게 됐다. 조이는 엄청난 축구광이어서, 얼마전 플레이스테이션을 새로 사서 피파 시리즈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나도 집에 엑스박스가 있어서 잠깐 했다고 말했다. 조이는 언젠가 같이 붙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나는 플레이스테이션과 엑스박스가 교차 대전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걸 말해줬더니 조이가 하는 말.

 “이래서 엑스박스는 문제야. 플레이스테이션과 연결이 안 되잖아!”

 “그건 반대도 마찬가지 아냐?” 나는 조금 발끈했다.

 “그렇지 않지. 엑스박스를 사는 건 플레이스테이션 가격이 떨어지는 걸 못 기다린 사람들 뿐이니까”

 나는 “어린 놈 주제에. 왜 이런 분야에서 이상한 혜안이 있는 거야?”라고 말하고, ‘에이, 그래도 엑스박스도 좋은 게임기야’라고 생각했다.

 하여간 어지간히도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였다. 내가 “내일 비행기를 타야하니까 오늘은 일찍 잘 거야”라고 했더니, 숙소 로비에서 체스판을 들고와서는 “한 판 만 두고 자자”라고 말했다. 내가 귀찮다고 말하든 말든 조이는 체스말을 차례로 세우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마주 앉아서 내 쪽을 정돈해 놓았다.

 “루크는 체스 잘 둬?”

 “아니… 룰 정도만 알아” 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체스에서의 룰이란 그저 어떤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서 끝나는 게 아니고, 캐슬링이나 앙파상 같이 제한된 상황에서 적용되는 규칙도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이 어렵다.

 “나는 어렸을 때 엄마랑 많이 뒀지. 엄마한테 이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어…” 조이는 의미심장하게 말하며 첫 번째 수를 뒀다.

 ‘뭐지. 퀸스갬빗인가…?’

 나는 매우 긴장한 상태에서 맞수를 뒀다.

 조이는 나한테 사정없이 털렸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봐주는 건가?’ 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순수하게 못두는 것이었다. 퀸도 룩도 다 빼앗기고, 완전히 수세에 몰리기까지 삼십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티나게 파놓은 함정수에 족족 걸렸고, 전략이라는 것도 없었다. 정말 체스를 ‘좋아하기만 한다’는 느낌이었다.

 “으악, 젠장!” 조이는 체크메이트에 걸려 지고나서, 그 벌칙으로 혼자 체스판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어째서 진 거지? 정말 아깝다!”

 나는 “전혀 안 아까운데” 라고 말하고 ‘아냐. 그래도 잘 뒀어’라고 생각했다.


 뭔가 말을 심하게 한 것 같아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한 장 찍어 조이에게 건네줬다. 조이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루크는 좋은 사람이구나. 한국인들은 전부 좋은 사람인가봐?”

 일부러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 누웠다. 조이는 내가 잠들기 직전까지도 계속, 내가 혹시 코를 심하게 골기라도 하면 바로 깨워줘, 냄새가 나서 신경쓰이면 얘기해, 같은 말들로 내 잠을 방해해왔다.

 “물어봐줘서 고맙지만, 나는 신경꺼도 괜찮아” 내가 말했다.

 그러자 조이가 대답했다.

 “네덜란드 사람한테는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인걸”

 “뭐가?”

 “신경을 하나도 안 쓰는 것 말이야”

 “…….”

 나는 누운 상태로 손바닥을 베개 밑으로 집어넣었다.

 “조이, 내 생각에… 그건 네덜란드 사람인 것과는 상관없어. 그냥 네가 친절한 사람이라서야”

 잠결에 “고마워”라는 대답을 들은것 같기도 하다. 내일 무사히 비행기 잘 타라는 말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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