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반드시 만나야만 한다.
가끔 삶이 나를 미워하거나 세상이 나를 외면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자그마한 변화라도 만들어보겠다고 온 힘을 다해 달려들었다가 시작부터 현실의 벽에 가로막혔을 때. 그래도 ‘젊으니까!’ 다시 도전했다가 예상치 못한 오해와 갈등의 턱에 걸려 우당탕 넘어졌을 때.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나 홀로 사회 부적응자가 된 듯한 고립감이 들 때.
기성의 사회 구조에서 ‘방식’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어른들의 우려와 훈계는 대부분 ‘방향’이 잘못됐다는 의미의 완곡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요즘처럼 안전망 부재의 시대에, 크든 작든 어떤 식의 실패는 반드시 흉터를 남기고 다음 스텝은 조심스러워진다. 나처럼 소심하고 예민한 보통의 젊은이라면 더욱 그렇다. 옳은 일인데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는 얘기는 곧 내가 현실을, 세상을 잘 모르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떤 것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인지(認知)와 내면화(內面化) 사이, 현실의 법칙이라 부르는 사회적 변칙에 대한 순응을 정당화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그 말을 애용한다. “세상을 안다”는 말은 그래서 참 슬프고 무서운 말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불편함과 당연함 사이, 청년 아무개의 시간들
내가 전북 전주에서 청년활동을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고시촌에 살면서 그 흔한 공무원 시험도 치러보았고, 방송국에서 프리랜서 작가(고강도 정신+육체노동에 시달리는 전형적인 비정규직)로도 있었고, 사회복지 시설에서 기획과 행정 처리를 하는 실무자의 일도 해보았다. 한 군데에서 진득하게 경력을 쌓은 것은 아니어도 나름 사회의 변화에 기여하기 위한 현장을 골라 몸담았고, 그 시간 동안 보고 들은 것들의 결론은 큰 맥락에서 대개 비슷하다.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정말 열심히 살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 사회의 구조와 편견은 놀라울 정도로 불합리하고 단단하다는 것. 나는 그 속에 파묻혀 나이와 경력 따위에 의존하는 굳은살이 되고 싶지 않아 연거푸 탈출했고, 서울을 떠나 지역에 내려와서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 공부를 하던 중 어쩌다 재미난 친구들을 만나 시작하게 된 것이 비영리단체 <청년들> 활동이다.
당시 키워드가 ‘청년’이었던 이유는 그즈음 우리 각자의 경험을 관통하는 개별적인 문제의식과 사회적인 공감대가 필연적으로 겹쳤기 때문이다. 회사의 구성원으로 있을 때에도, 독립적인 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가족-친구 간의 관계에서도, 나는 내내 청년 혹은 젊은이로 불리웠지만 한 번도 스스로 청년이었던 적이 없었다. 뜨겁지만 미숙하고, 올바르지만 결국에는 고분고분하며, 본능적으로 경쟁에 몰두하고, 다만 젊기 때문에 자주 호명되었던 그간의 궤적을 스스로 인정하고 내려놓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이미 ‘청년 분야’로 알려진 현장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이들이었지만, 청년 당사자의 입장에서 사회 구조 안에 놓인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 어렵고 괴로웠다. 1000명이 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하고, 연구 결과를 보고서로 만들어 발표하고, 조례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고, 정책 과정에 참여해보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가 실제로 훨씬 더 강력하게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지역에서 행정과 예산이 비합리적으로 움직이는 방식, 언론과 학계와 민간단체가 관변화(유착)되는 과정은 명료했지만 너무 보편적이어서, 그게 ‘잘못됐다’고 말하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던 누군가의 시 구절처럼. 우리의 활동은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그때 나에게 힘이 되어준 것이 전국 청년활동가들의 모임이다.
존재만으로 힘이 되어준 전국 청년활동가 모임
작년 2월, 시흥에서 지역 청년활동가 워크숍이 열렸을 당시 나와 <청년들> 구성원 몇몇은 지역에 돌릴 실태조사 설문지를 만들기 위해 온갖 마음고생을 하던 중이었다. 그때만 해도 지역에서의 우리 활동은 청년들끼리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외부에 활동을 알리는 수준이었기에, 실태조사라는 어려운 작업을 덜컥 시작해놓고서 어느 정도의 체계와 구체성을 갖고 진행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던 시기였다. 시흥에 가기 전의 마음가짐은 청년활동 분야에서 전주의 자리를 채우고 존재를 알린다는 일종의 의무감, 다른 지역의 또래 청년들을 만난다는 약간의 설렘과 기대 정도였던 것 같다. 이미 서울의 청년 관련 이슈들은 언론을 통해 지켜보고 있었기에 그 속사정과 노하우를 직접 들을 수 있겠다는 호기심도 약간 있었다. 우리는 사소한 이슈 하나 만드는 데도 이렇게 어렵고 힘든데, 저 친구들은 어떻게 저런 움직임과 성과를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그리고 부산이나 제주처럼 환경이 전혀 다른 지역에서 우리처럼 몸고생, 맘고생하고 있을 친구들과 서로 하소연도 나누고 공무원 욕도 실컷 하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흥에 가서 100명이 넘는 전국의 활동가 친구들을 막상 만났을 때, 사실 나는 좀 충격을 받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인데도 마치 10년지기 친구들을 만난 것 같은 반가움과 편안함, 그리고 그들의 치열한 고민과 활동에 대한 존경심과 더불어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동시에 느껴졌던 것이다.
마치 같은 전쟁을 치렀던 전우를 만났을 때 반가움이 이런 걸까? (군필자들이 군대 얘기하면서 흥분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이렇게 순식간에 가까워질 수도 있구나 싶었다. 유사하지만 다른 경험과 고민의 시간들이 같은 시공간에서 만나고 엮일 때, 그 시너지는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청년의 문제는 고립된 개별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공통된 문제이고,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는 사회적 과제라는 걸 다시 확인한 순간이기도 했다. 앞으로 전주시 청년 실태조사 진행을 어떻게 설계하고 이끌어나갈지 막막하던 나에게 그때의 1박 2일은 엄청난 자극제가 되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의미 없이 고생스럽기만 한 일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유용하고 환영받는 중요한 일이겠구나, 이 일을 꼭 해내야겠다, 그때 다짐하게 된 것 같다. 물론 이후에 전주청년보고서를 실제로 발표하기까지는 별도의 고난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말이다.
그날 이후 대전, 서울, 제주, 전주, 대구 등지에서 매달 중소 규모의 모임을 지속적으로 가지면서 서로의 고민과 아이디어를 나누고,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지역 간 청년 이슈가 있을 때마다 왕래하며 활동 상황을 주고받았다. 지자체별 청년기본조례 입법 현황과 청년기본법 성안을 위한 스터디를 하고, 실태조사를 전국적으로 시행해볼 방법을 논의하고, 각 지역에서 열리는 청년주간 행사의 일정과 기획을 두고 토론을 하기도 했다. 다들 고유의 사업과 일상으로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일 텐데도 몇몇은 자발적으로 나서서 역할을 맡고 업무를 나눴다. 연락망을 만들고, 각 지역 자료들을 수집해서 아카이브하기도 했다. 나 한 몸 잘 먹고 잘 사는 것, 내 손에 권한과 권력을 쥐는 것이 아닌 방식으로 사회적 가치에 공감하고 역할에 몰입하는 친구들이 이렇게 많다니! 나의 지역에서 품었던 막막함과 서러움이 타 지역의 동료를 통해 이해되거나 해소되는 경험은 감격스러웠다. 격렬한 토론이나 의견 충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마저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전제로 이루어진다는 일말의 신뢰가 있어서 좋았다. 물리적인 거점이 다를 뿐만 아니라 정책, 문화, 예술, 공간 등 관심 영역도 조금씩 달랐는데, 경계를 넘어 서로의 활동과 고민을 있는 그대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이런 자발적인 연대와 협업은 아마 다른 친구들에게도 놀랍고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이 좋아서, 무엇을 위해서 지금까지 이토록 긴밀하게 교류해왔을까? 서로에게서 주고받는 이 긍정적인 에너지의 정체는 무엇일까? 앞으로 우리는 이 연결망을 통해 어떤 대안과 가능성을 꿈꾸고 실현해나갈 수 있을까? 모임이 1년 가까이 지속되어온 지금, 우리는 지금까지의 흐름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체계적으로 모색하기 위한 분기점에 서 있다.
지역에서 서울로, 다시 전국 각지로
작년 10월부터 두달 동안 서울청년주간 기획단에 부산 청년활동가 오동(엄창환)과 함께 합류했었다. 청년활동 영역에서 타 지역(그것도 서울)의 친구들과 동료 경험을 쌓는다는 것은 나에게 무척 긴장되는 일이었고, 그만큼 엄청난 배움과 성찰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동안 서울은 청년정책에 있어서만큼은 정치적, 사회적, 물리적 자원 면에서 압도적으로 앞서갈 수밖에 없는 곳이라고 막연히 쉽게 생각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기획단에서 함께 일하면서 서울 청정넷의 지금까지의 활동 연혁과 성과를 면밀히 뜯어보고, 사무국 친구들과 밤새 토론하고, 정책 거버넌스 활동의 온도와 호흡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며 어떻게 지금의 청정넷과 서울시 청년정책이 존재하게 되었는지, 진짜 ‘협치’란 무엇인지, 민주적인 소통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오늘날의 청년활동이 뜻하고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어야 할지를 온몸으로 깨닫게 된 것 같다. 무엇보다 지역활동가 친구들의 질문과 고민을 수집하고, 숱한 논의를 거쳐 컨퍼런스와 교류행사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나 스스로 많은 참조점을 발견하게 됐다. 지역 활동가들의 지속적인 상호교류와 학습을 지원하는 장(場)을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청년 주체들의 거버넌스 활동의 지속성과 보편성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안에서 내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까...
작년 이맘때만 해도 청년활동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 채 세상에 대한 불평만 늘어놓던 내가 지금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러고 보니 청년활동가들의 질문과 사유를 확장하고 서로 배움의 장을 여는 것을 취지로 했던 서울청년주간 컨퍼런스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내가 아니었나 싶다. 나의 삶의 과정은 대체로 드라마틱했지만, 돌이켜보면 지난 2016년이야말로 내가 청년으로서, 나아가 시민으로서의 내 개인과 사회에 대해 보다 성숙한 시선과 경험을 갖게 된, 그리고 좋은 동료와 친구들을 얻게 된 뜻깊은 한 해였던 것 같다. 새삼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에게도 쉽사리 마음을 내어주기 어려운 사회, 아무 것에도 희망을 걸어보기 힘든 시대다. 외롭고 막연하고 불안한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조차 뜬 구름처럼 느껴질 때. 가장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 나의 존재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나를 한 뼘 더 성장시켜주는 좋은 선배와 동료일 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각자의 지역에서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전에 없던 변화와 제도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처지이지만, 적어도 이제는 더 이상 고립된 상태에서 외로운 싸움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탄핵정국에서 수백만의 촛불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압도적인 힘을 얻은 것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느끼는 것만으로 나에게 에너지가 되는 전국 각지의 청년활동가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보낸다. 우리의 2017년 한 해는 작년보다 더 유의미한 성취와 성장으로 가득할 것이라 믿으며, 앞으로 계속 ‘함께’ 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약소하나마 새해 선물로 보내 본다.
2017. 1. 20
*이 글은 2016 서울시 청년정책네트워크 시즌3 결과자료집에 수록된 글의 최초 원고입니다.
자료집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