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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과 만년필 Nov 14. 2021

그라나다의 승합차

시원스러운 또는 살벌한

스페인이 좋았고 이탈리아 여행 동안 겪었던 추위가 힘들었기에 아내와 나는 따뜻하고 햇볕이 많은 스페인을 다시 여행하기로 했다. 주로 안달루시아를 가기로 했다. 반가운 바르셀로나에서 며칠을 보낸 후 그라나다로 갔다. 숙소가 있던 알바이신은 오래된 동네고 좁은 돌길을 캐리어를 끌고 가는 게 부담스럽게 느껴져 픽업 서비스를 신청했다.


아담한 공항에 내려 짐을 찾고 게이트를 나서자 머리를 상투처럼 질끈 묶은 여자가 나에게 물었다. "Mr. 수첩?" 반갑게 인사하며 손을 내밀었는데 깡마른 체격과는 대조적으로 강한 악력이 인상적이었고 진한 담배 냄새도 함께 기억된다. 아주 씩씩하게 아내의 캐리어를 끌고 차량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고 힘차게 문을 열며 들어가라고 했다.

숙소의 픽업차량. 천장의 마감재가 뜯겨나가있지만 방향제는 밝게 웃고 있다.


승합차의 겉모습도 허름했지만 내부도 참 터프했다. 차 천장에는 마감재가 붙어있던 흔적으로 스펀지 조각이 드문드문 남아있었다. 겉모습과 어울리게 문을 닫자마자 차는 굉음을 내며 스포츠카처럼 가속하며 달렸다. 공항 근처 도로를 달리는 동안은 너른 벌판을 시원스럽게 달려 흔들리기는 했어도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숙소가 있는 알바이신 지역으로 접어들었다. 이 지역은 수백 년 된 주택지구라 골목도 좁고 오래된 건물도 많은 지역인데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속도 못지않게 빠르게 달렸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웃음으로 감춘 채 너무 빨리 달리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그녀는 "No Problem"이란다. 이 동네는 자기가 잘 아니 걱정 말란다. 행여 골목길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오면 어떡하나 했는데 좁은 골목길에서 다른 차와 교행 할 때를 빼고는 맹렬한 속도로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생각해보니 경음기 소리를 내지 않아도 차에서 나는 소음이 워낙 커서 멀리서도 알아서 피했던 게 아닐까 싶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내리니 롤러코스터를 타고난 것처럼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알바이신 숙소 앞의 좁은 길과 우리를 태워준 흰 승합차


방 열쇠를 받았으나 방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기에 식사를 하러 아랫마을로 내려갔다. 걸으면서 보니 이런 길을 그런 속도로 달렸다니 다시 한번 운전자의 담력과 운전실력에 경탄했다.


첫날 저녁에 숙소 직원이 체크 아웃할 때에는 차량 상태가 좋지 않아 이용할 수 없으니 택시를 이용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다시 한번 무서운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길이 좁아 택시가 들어올 수 없으니 큰길까지 걸아나가야 한다고 했다. 다음날 그 택시를 타는 장소에 가봤더니 짐을 들고 가기에는 계단도 있고 해서 꽤 힘들어 보였다. 마침 그날 오후에 다른 투숙객들을 싣고 들어 왔기에 직원에게 승합차가 이용 가능한 게 아니냐 수리돼서 운행 가능한 게 아니냐고 물었다.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언덕을 올라오는 길에는 그나마 안전하지만 내려가는 길에서는 위험할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둘러대느라 한 소리일 수도 있지만 그 정도로 위험한 차를 타고 왔다니 다시 한번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숙소 예약사이트의 후기를 읽어보니 2019년에도 차량 상태가 좋지 못했다. 그때까지도 그 승합차를 사용했나 보다. 재미있기도 하고 겁나기도 했다.


결국 말라가로 이동할 때는 땀을 뻘뻘 흘리며 계단을 올라 택시를 이용했고 택시 기사가 우리를 먼저 발견해 마지막 계단을 오를 때는 캐리어를 같이 들어주기도 했다.


그라나다 알바이신의 숙소. 알람브라(Alhambra: 스페인어는 h가 묵음이라 알함브라 보다는 알람브라가 더 가까운 발음) 궁전을 바라보는 뷰는 정말 좋았지만 오가는 길은 긴장감이 넘쳤었다.


창문으로 알람브라 궁이 보이는 뷰는 정말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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