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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과 만년필 Nov 11. 2021

포르투 닭한마리

포르투갈의 포르투에서

우리 부부의 첫 유럽여행 코스는 스페인 포르투갈이었다. 바르셀로나와 세비야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포르투로 향했다. 직항이 없어서 바르셀로나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다. 잠시였지만 바르셀로나에 다시 들러서 좋았고 잠시 동안 엘 프라트 공항의 로비에서 사람 구경을 하며 다음 여행지를 기대하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복통이 있던 아내는 비행 중에 흔들리는 비행기에 더 힘들어 보였다. 다행히 좌석이 여유가 있어서 아내를 옆 좌석에 길게 눕히고 가게 되었다. 그게 전조였는지도 모른다. 비행하는 동안 잠시 잠이 들었다 깬 아내는 그전보다는 좋아 보였고 새로운 나라 처음 가보는 도시에 대한 기대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비행기 옆자리에 앉았던 이스라엘 친구와 가볍게 작별인사를 하고 짐을 기다리는데 여행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각양각색의 캐리어를 토해내던 운송벨트가 멈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전 벨트마저 멈추고 말았다. 설마설마했는데 스페인 저가항공을 이용하던 사람들의 후기가 하나둘씩 머리에 떠올랐다. 캐리어를 잃어버려 갈아입을 옷이 없어 거지꼴로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야 집에서 짐을 받았다는 이야기 등...


벨트가 멈추고도 한참을 기웃거리다 수하물을 관리하는 듯한 직원에게 물었더니 영어가 서툰지 바로 손짓으로 따라오라고 하더니 한 사무실로 안내했다. 다행히 그 사무실의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은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단정한 외모의 그 남자는 "안타깝지만,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라는 말로 위로 비슷한 말을 하더니 스페인 저가항공에 대한 욕과 스페인 사람들의 전반적인 나태함까지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기 서류를 작성했으니 숙소로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우리 짐은 어딨냐고 물었더니 지금은 추적이 안된다고 하더니 다시 한번 항공사의 무능함을 탓했다. 유니폼에 적힌 로고를 보니 이 사람들은 수하물을 전담하는 외주업체였고 아마도 여러 회사들 특히 저가 항공사 등의 물류를 담당하고 있는 듯했다.

공항 수하물 사무소에서 준 서류

그래도 정말 미련이 남아 잠시 수하물 찾는 곳 근처를 한번 더 살펴보고 공항 입구로 나서니 어떤 남자가 다가와 "Mr. 수첩?"하고 묻는 것이었다. 조바심 나고 조금은 짜증이 나 보였다. 숙소에 신청한 픽업 서비스 담당자였는데 도착 정보가 전광판에 뜬 뒤로도 1시간 반 정도를 기다리고 있다가 짜증이 난 듯했다. 사정을 설명하니 가끔 있는 일이라고 하더라. 정말 수화물이 잘못 가는 일이 흔한가 보다... 짐 들고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기 힘들거라 예상해 신청한 차편에 아내와 둘이 작은 기내용 가방만 갖고 타려니 몸은 편한데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한번 속상했다. 


숙소에 도착해보니 오래된 동네였지만 내부는 신경 써서 개조한 덕에 안락해 보였다. 숙소에 들러 점심 때도 훨씬 지나 간단한 간식을 먹고 쉬는데 아내가 다시 몸이 안 좋다고 했다. 복통은 아니지만 몸살이 난 것처럼 힘이 없다고 했다. 날도 흐리고 비도 조금씩 내렸으니 더 가라앉는 것 같았다.

포르투의 숙소. 오래된 집을 편리하게 개조한 좋은 숙소였지만 캐리어가 오지 않아서....ㅠㅠ

부엌을 살펴보니 소금 후추뿐만 아니라 피리피리 같은 포르투갈 소스까지 잘 갖춰져 있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침대에 누운 아내 보고 한숨 자고 있으라 하고 집 밖으로 나섰다. 숙소 예약사이트 소개에 나온 재래시장을 찾았다. 정말 직선거리 2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땐 계단식 잔디밭 같았는데 그 지붕 아래 상설 시장이 있었다. 


재래시장(잔디밭처럼 보이는 것이 시장 지붕)을 뒤로하고. 도착 다음날 무지개를 보고 아내의 표정은 조금 밝아졌다.


이리저리 살 것을 찾아다니는데 나를 낯설게 쳐다보는 상인들의 눈빛이 영어가 통할 것 같지 않았다. 실제로도 가장 기본적인 "How much?"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양배추와 당근 양파 오렌지 등을 집어 각각 얼마냐고 손짓으로 물었더니 고개를 흔들며 손사례를 치고 웃기만 했다. 그냥 이거다 얼마냐고 했더니 모두 다 한 비닐봉지에 넣고 어린 시절 장터에서나 보던 막대 저울을 꺼내 무게를 달고 얼마라고 말해줬다. 물론 포르투갈 말로... 본능적으로 주머니에 있던 동전을 꺼내 보여줬다. 아주머니가 신기하고 즐거워하며 동전을 집어갔다. 정확한 가격은 기억나지 않지만 놀랄 만큼 싸서 큰 미소로 고맙다는 표정을 지었고 아주머니도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에게 팔았다는 즐거움에 소리 내어 웃었다.


다른 먹을 거릴 찾아 한 블럭을 돌아가자 유기농 매장처럼 보이는 가게가 보였다. 손질된 닭과 다른 야채 과일 등이 있었고 감자도 팔았다. '이제 됐다!' 싶었다. 닭, 당근, 토마토, 그리고 감자를 샀다. 시장의 그 아주머니만큼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싼 가격이었다.


집에 와보니 아내는 잠이 들어있었고 바로 요리를 시작했다. 닭을 씻어 넣고 감자와 토마토 등을 넣고 푹 끓였다. 저녁에 딱히 잡은 일정도 없었고, 나갈 힘도 없었기에 약한 불에 오랫동안 푹 삶았다. 냄비에서 끓는 동안 피리피리 소스, 식초, 그리고 고춧가루를 더해 초고추장도 만들었다. 


닭뼈가 흐물 해질 정도로 오래 삶으니 토마토랑 다른 야채들에서 맛있는 물이 잘 우러났다. 아내가 맛있는 냄새가 난다며 침대에서 일어났고 '닭한마리' 비슷한 요리를 아내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뜨끈한 국물을 마시다 살코기를 뜯어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니 고향의 맛이 났고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아내가 힘을 받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가방을 잃어버린 충격과 그전에 컨디션도 안 좋았기에 아내는 몸과 마음이 내내 편하지 않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나도 같이 날카로워져 티격태격했을 수도 있지만 용케 그러지 않고 아내를 위로하고 안심시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상당히 '어른스럽게' 아내를 위해 요리했다. 캐리어를 잃어버리는 큰 봉변을 당했고 날씨도 축축했고 매트리스가 푹 꺼지는 침대에서 자야 했지만 어려움을 어른스럽게 극복했다는 뿌듯함에 그날 밤은 푹 잤던 것 같다.




캐리어는 저희들끼리 마드리드에 갔다가 체크아웃 직전에 도착했다. 배달 사원이 반가워 껴안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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