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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A Sep 20. 2016

인터내셔널 카페 친구들의 인터내셔널 한 여행

영국 뷰들리 (April 2004)

사람은 누구나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몇 번의 고비와 그 순간에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2004년은 지금까지의 내 삶에 있어서 첫 전환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오랫동안 고집 세게도 준비했던 교환학생을 가게 되고 처음으로 혼자 낯설디 낯선 외국 땅에 떨어져 생활을 해야 했던, 아직은 소녀였던 나의 첫 독립기였다고 본다. 두려움과 긴장이 가득했던 내가 마주친 세상은 고맙게도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따뜻하고, 재미있고, 설레는 곳이었고, 그런 세상에서 나는 꽤 성공적인 독립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십 년 전의 런던(London) 학교생활을 곱씹어 보면, 내 머리와 마음의 공간이 모자랄 정도의 기억과 감정들이 한꺼번에 솟구쳐 오른다. 건물보다 수선화가 가득 핀 정원이 더 넓었던 캠퍼스, 밤새 교내 펍의 파티 소리로 쿵짝쿵짝하다가도 아침 일찍 일어나 기숙사 방의 커튼을 젖히면 야생 토끼가 뛰어다니던 곳, 너무나 호젓하여 사랑스러웠지만 가끔 살인자가 출몰한다는 괴소문이 꼬리 물었던 캠퍼스에서 지하철역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드레스 곱게 차려입은 귀족 여인들이 계단 위에서 우아하게 걸어 내려올 것만 같은 건물들. 그 공간에서 머물렀던 그때의 우리들은 서투르기 그지없는 청춘이었지만 또 얼마나 푸르르고 싱그러웠는지.


무엇보다 그곳의 향기를 나만의 특별한 추억으로 간직하게 해 주는 것은 나와 같은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학교에서 만나게 된 다양한 친구들과 좋은 튜터들, 그리고 물론 학교 밖에서 여러 루트를 통하여 알게 된 지인들도 있다. 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던 소중한 순간들 중에 가장 ‘영국스러웠던’ 순간을 고르라고 한다면 떠오르는 친구들이 있다. 나는 교환학생 기간 내내 내가 머물고 있던 캠퍼스에서 진행하는 기독교 학생 모임에 참여했었다.‘인터내셔널 카페(International café)’라는 이름으로 근교의 학교 학생들이 매주 한 번씩 모여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게임도 하고, 성경공부도 하며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이었다. 나는 ‘이 세상에 신은 없다’와 ‘이 세상 만물이 모두 신이다’라는 극과 극의 사고를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비종교인이지만, 같은 기숙사에 머물고 있던 미국에서 온 제인 Jane의 권유로 모임에 처음 참석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반해 나도 모르게 꼼짝없이 그 모임의 일원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 친구들과 함께한 순간을 가장 ‘영국스러웠다’라고 기억하는 것은 무려 9개의 다른 나라에서 온 다양한 스무 명의 친구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고 생각을 나누었던 시간들이 내가 느끼기에는 유독 아시아 학생이 주류를 이뤘던 우리 학교 내 생활에서 각기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런던의 느낌에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다. 


처음 모임에 참석했던 날, 너무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종교모임이라는 어색한 분위기에 조금은 낯설어하고 있었는데 그때 모임의 리더인 찰리 Charlie가 나를 소개했다. 

나는 한국에 첫번째  핀을 꽂았다

“네가 인터내셔널 카페에 온 첫 한국인이야. 너무너무 환영해!”

나는 모임 역사상 최초의 한국인으로 중앙에 마련된 커다란 세계지도 귀퉁이 조그만 나라 대한민국에 나의 핀을 꽂았다. 첫 한국인 친구에 대해 다른 스무 명의 친구들은 열렬한 환영을 해주었고 덕분에 나는 금방 그들과 가까워졌다. 모임을 할 때마다 저녁식사를 함께 만들어 먹을 뿐 만 아니라 흡사 스피드 게임처럼 유명인 설명하면 맞추기, 원하는 물건 빨리 가져오기, 림보, 젠가 등등 어찌 보면 굉장히 원초적인 게임들을 무릎에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열정적으로 하며 우리는 점점 허물없이 대할 수 있는 사이가 되어 갔다. 

종종 지역 교회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하여 카드 만들기라든지, 요리교실이라든지 자잘한 행사에 참석도 하고 자원봉사도 하면서 나로서는 지금까지는 겪어보지 못한 방식으로 국경, 나이, 인종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우정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우리는 부활절 방학을 맞이하여 2박 3일간 지방의 작은 도시 뷰들리(Bewdley)로 향했다. 여행에 함께 한 사람들은 똑똑하고 친절하고 유머러스해서 해서 나의 이상형이 되어버린 영국인 찰리 Charlie, 항상 엄마같이 나를 잘 챙겨주는 모리시안 린다 Linda, 언제나 밝고 활기차고 이야깃거리가 많아서 즐거운 말레이시안 애니 Annie, 늘 차분하고 모임의 엄마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 싱가포르인 수안 SuAnn, 정말 잘생기고 착해서 제인 Jane의 짝사랑이 된 아일리쉬 패디 Paddy, 때로 한국에 대한 이상한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나와 종종 격렬한 토론을 하게 되었던 영국인 사이먼 Simon, 패디 Paddy와의 여행이라서 이번 여행을 손꼽아 기다렸던 한국계 미국인 제인 Jane, 댄스를 공부하는 열정적 에너지 소녀 미국인 쉬봉Chivon, 늘 조용하게 웃는 얼굴이 예쁜 미국인 니콜 Nicole, 내 단짝 친구 일본인 하루나 Haruna, 그리고 얼굴도 하나같이 닮은 데다 이름이 너무 복잡해서 지금도 헷갈리는 인도인 친구들 4명까지 모두 15명의 대이동이었다.

뷰들리로 가는 길

우리는 천천히 둘러둘러 구경하며 뷰들리로 향했고, 찰리 Charlie가 지인을 통하여 마련해 놓은 우리가 묵을 집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모두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대로변에서 오솔길을 따라 자동차로 5분여 들어가 산속에 조용히 자리 잡은 이 저택은 말 그대로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 전원적인 풍경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곳이었다. 집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따라 젖소와 말이 뛰노는 초원이 펼쳐지고 영국 정부 차원에서 보호하고 있는 블루벨이 지천에 널려있는 곳에 영국인 노부부가 살고 있는 이층 집. 게다가 집안을 한 바퀴 둘러보는데만 한 시간 가까이 걸릴 정도의 커다란 저택이었기에 언젠가 꿈에서나 봤을 법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주변 자연환경도 훌륭하지만 영국인답게 정원도 어찌나 아기자기하게 가꾸어 놓았는지 매일 아침 나는 저절로 눈이 떠져 호젓이 혼자 산책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산책을 하고 돌아오면 기다란 테이블에 우리가 모두 함께 앉아 먹을 수 있도록 아침식사가 준비되어 있었고, 좋은 사람들과 웃고 대화하며 즐거운 식사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나면 이 집 개를 데리고 나가 집 근처의 숲을 산책하고, 각자 책을 읽거나 배드민턴 같은 간단한 운동을 하며 시간을 하릴없이 보내다가 매일 두 번씩 집의 여주인인 쟌 Jan이 차려주는 애프터눈 티와 직접 구운 과일 파이를 먹으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곤 했다. 


그렇게 마음을 포함한 모든 것이 풍요롭고 여유로웠던 그 3일의 추억 속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는 순간이 있다. 뷰들리 집에는 샹들리에와 그랜드 피아노가 근사한 응접실이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모두 둘러앉아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또는 성경공부와 기도를 했다. 다양한 학교에서 다양한 전공을 하는 친구들이 모였기 때문에 우리는 제각각 특기도 다양했다. 응접실의 그랜드 피아노 앞에 둘러앉아 고전음악 전공인 애니 Annie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모차르트 소나타에서부터 바흐의 미뉴에트로 이어지는 끊이지 않는 피아노 소리에 취해 있을 때, 댄스 전공인 쉬봉Chivon이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늘 까불까불 하고 유쾌하기만 했던 그녀의 우아하고도 절제된 몸사위에 우리는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아야 했다. 이래서 사람은 두고두고 보아야 아름다운가 보다. 그렇게 한참이 되던 리사이틀이 끝나가고, 애니 Annie의 연주곡은 어느덧 가스펠로 향하고 있었다. 

‘아, 그래. 기독교 모임이었지.’

 새삼 모임의 정체성에 대하여 섬광처럼 떠올랐을 때, 무심결에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승애, 이 노래를 어떻게 알아?”

 내가 기독교인이 아닌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친구들이 나에게 물었다. 

“응? 아…. 내가 중학교 때 다녔던 학교가 기독교 학교였어. 아마 그때 학교에서 배웠던 것 같아.”

“정말? 신기하네.”

그때부터 주야장천 온갖 가스펠들을 그들은 영어로, 나는 한국어로 부르며 마치 엄청난 사실을 발견한 것처럼 신나 하며 가사를 맞추어 보기도 했다. 그 순간 바깥 산책을 하고 돌아온 일본인 친구 하루나 Haruna가 응접실로 들어왔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우리의 노랫소리에 합류했다.

“어라?”

 하루나 Haruna는 이 모임에서 나와 함께 유일하게 기독교인이 아닌 친구였다. 

“하루나, 너는 이 노래를 어떻게 아는 거야?”

“내가 다닌 중고등학교가 모두 기독교 학교였거든. 그래서 가스펠은 웬만하면 다 알아.”

이건 또 무슨 인연인지…. 그렇게 우리는 장장 2시간 동안 가스펠을 불러댔다. 영어로, 일본어로, 한국어로. 각자 언어는 달랐지만 우리는 한 목소리로 한 노래를 불렀다. 그 순간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나는 ‘이 세상 만물이 모두 신이다’의 상태에 와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시간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사람들. 그들은 그들이 가진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나일지라도 거부감 없이 받아주었고, 그대로를 인정해 주었다. 그런데 뜻밖에 순간에 종교의 힘 안에서 우리의 필연적 인연을 느끼게 된 것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순수하게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순간이 더 감격스럽지 않았을까?

사실 어느 한 종교라는 것을 갖게 되면 아직은 어른스럽지 못하고 모자란 나의 마음이 혹여 더 편협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교회도 다녀보고, 성당도 다녀보고, 절에도 다녀봤지만 한 곳에 정착하여 마음을 심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영국의 작은 도시 어느 응접실에서 어쩌면 이런 것이 종교에 힘이 아닐까, 하고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스쳐간다. 

사람과 사람을 통하게 한다는 것.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이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지 않은가.


인터내셔널 카페 마지막 모임

이후로 학기가 끝날 때까지 매주 모임은 계속됐지만, 내가 런던에 머무는 한 학기라는 시간은 너무나 덧없고 초라하게도 짧디 짧았다. 학기 마지막 모임을 바비큐 파티로 나름 성대하게 마무리하려던 우리의 계획은 여지없이 런던의 변화무쌍한 날씨 덕에 이뤄질 수 없었다. 그렇지만 늘 그랬듯 조그만 공간에 모여 앉아 소소한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던 그 밤도 나는 애틋하게 좋았다. 이 사람들을 생전 다시 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정성 들여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들을 준비하여 작별인사를 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겠다던 약속을 하던 우리들. 그저 나는 이 좋은 사람들에게 스쳐 지나가 버리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랐을 뿐인데 내 작은 선물 하나에도 정말 기뻐하며 한 사람씩 돌아가며 꼬옥 안아주는데 왜 그리 눈시울이 붉어지던지. 꾹 참는 법만 배웠지, 감정을 드러내는 방법을 미처 몰랐던 나는 누군가를 이렇게 따스하게 안아본 적이 언제였던가 싶었다. 그들의 심장으로부터 진심 어린 마음이 전해져 와 잠시 스쳐 지나가는 내가 참으로 많은 것을 받아가는구나, 라며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 순간만큼은 나 역시 그들이 믿는 저 하늘 위의 누군가에게도 이 만남을 나에게 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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