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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모씨 Jun 11. 2023

과장된 표현이 난무하는 시대

역대급 킹받는 프리미엄 끝판왕?

SNS를 보다 보면 다양한 콘텐츠의 홍수 속에 개인 또는 기업의 광고나 콘텐츠가 점점 더 자극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단 몇 초 사이에 고객의 시선을 끌어야 하니 진부한 표현이나 잔잔한 메시지로는 참을성이 사라진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너도나도 좀 더 자극적이고 좀 더 특이한 문구를 내세우는 이유이다.


소비자가 콘텐츠에 공감을 얻어 콘텐츠를 끝까지 감상하거나 관련사이트 접속을 시도했다면 절반은 성공한 거라고 볼 수 있다. 적어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은 전달할 기회를 얻은 셈 이니까. 문제는 그렇게 시간을 들여 콘텐츠를 보는 소비자 입장에서 소위 “낚였다”라고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SNS는 불특정 다수가 모여 노는 공간이다 보니 무언가 특정한 흔적을 남기기 전엔 성별이나 나이, 성향을 가늠할 수가 없다. 바꿔 말하면 콘텐츠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누가 내 콘텐츠를 많이 볼 지 알 수가 없어 명확한 타겟층을 설정하지 않은 이상 대중적인, 즉 수요층이 많은 젊은 세대들을 기준으로 그들이 즐겨 쓰는 유행어나 밈(meme)을 소재로 콘텐츠를 만들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각종 변형된 유행어들이 난무하고 상황이나 서비스의 퀄리티와 맞지 않는 단어를 반전심리를 이끌어내기 위해 무차별하게 사용하게 되다 보니 단어의 원래 뜻과 무게감이 현저하게 추락하거나 원 뜻과는 다른 용도로 변형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킹받는건 기본, 역대급 미친 끝판왕 슈퍼 프리미엄이 보편적인 시대


이제는 일상적인 단어가 되어버린 “킹 받네”라는 단어를 예로 들어보자. 킹받는다는 화가 난 상태인 열받는다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앞에 최고라는 의미가 내포된 King라는 단어가 결합되어 만들어졌다.



     최초로 "킹받네" 라는 단어를 쓴 사람은 침착맨이라고 한다.            출처:구글이미지


원래의 단어 뜻대로라면 정말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폭발할 때 써야 할 단어 같지만 보통은 가볍게 신경이 거슬리거나 장난스러운 짜증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고 있다. 최근에는 오히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려 약간 당황하거나, 어떠한 상황에서 예상과는 달리 더 나은 결과물이 나올 경우 반어적인 표현으로 더 많이 쓰이는 듯하다.

역대급은 또 어떤가. 기존과 조금 변형된, 크게 새로울 것 없는 것들에도, 출근시간 차가 많이 막혀도, 비가 많이 와도, 눈이 많이와도 역대급이다. 조금 저렴한 상품이 나오면 사장님이 미쳤다고 하거나 미친 가성비 끝판왕이라고 한다. 기존 서비스에 그다지 메리트가 크지도 않은 소소한 혜택을 추가하고 슈퍼 프리미엄 서비스 라고 한다. 남들도 다들 그렇게 쓰는데 나만 일반적이라고 쓰면 무언가 손해 보는 느낌이다.



무게감이 사라진 단어들


문제는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이 체감상 그렇게 대단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내가 하나의 제품을 만들고 미친 가성비라고 아무리 외쳐도 그걸 믿어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제품에 대해 구매의사가 있어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라도 바로 검색을 통해 동일한 기능의 제품의 최저가를 검색해 볼 것이다. 반대로 최고급 프리미엄 서비스를 내놓았다고 해도 그것을 직접 경험하고 느끼기 전에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핸드폰을 스와이프(Swipe) 해서 넘겨버릴 뿐이다.


이런 시대적 흐름은 바꾸어 말하면 나의 진정성을 전달하기 위해선 전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수고가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터넷이라는, 얼굴도 모르는 불특정다수가 쏟아내는 말과 콘텐츠들은 그 신뢰도를 측정할 수 없어 지속적인 반복메시지를 주거나 신뢰도가 보장된 인물이 대신 말해주거나, 집단지성이라 볼 수 있는 소비자나 유저의 후기를 좋게 받아야 가능해지게 되었다. 말과 단어의 진중함과 품격이 제 기능을 점점 못하고 있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시대에 말과 단어를 특정 이미지나 대상이 독점해서 쓸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구는 쓸 수 있고 누구에겐 금기어라면 그것은 구시대 독재체제 에게나 어울릴 일이다. 그러나 인간은 언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며 교감한다.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되는 요인중 하나도 세대별로 쓰는 언어의 다름에서 오는 괴리감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말을 어떻게 쓰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고 책임이겠지만, 한 번쯤은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나 표현이 주는 감정들을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설득을 하는 것도 공감을 얻는 것도 감동을 주는 것도 인정을 받는 것도 결국은 말을 통해 이루어지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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