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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의 열쇠, 연기법

탈옥의 기술 : 열여덟 번째

by 나말록


스스로 갇혀있지 않음에도 갇혀있다고 착각하는 것을 일러 망상(妄想)이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망상이란 단지 엉뚱하고 기이한 생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영위하는 모든 생각이 그 본질에 있어 망상에 해당한다.


그 이유는 우리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이원적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은 본질적으로 둘로 나누어 파악하는 작용이다. ‘나’와 ‘너’, ‘좋음’과 ‘나쁨’, ‘안’과 ‘밖’, ‘원인’과 ‘결과’를 나누는 그 순간, 생각은 이미 진실 그 자체가 아닌, 진실을 쪼개어 놓은 파편이 된다.


이러한 이원적인 생각은 필연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환에 빠진다. 가장 고전적인 예시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하는 물음이다. 이 물음은 이원성의 감옥 안에서는 결코 답을 찾을 수 없다. 원인과 결과를 둘로 나누어 어느 하나가 먼저일 것이라 전제하는 한, 이 생각은 끝없이 순환하며 우리를 결론 없는 미로에 가두어 버린다. 우리의 일상적인 모든 생각이 바로 이와 같은 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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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길: 심법과 연기법


역사적으로 인류는 이 생각의 감옥을 벗어나기 위한 두 가지 길을 발견해왔다.


하나는 심법(心法)이다. 이는 ‘마음의 법’으로, 끊임없이 요동치는 자신의 마음을 안으로, 더 안으로 파고들어 그 근원을 들여다보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본성(本性)을 꿰뚫어 본다 하여 견성법(見性法)이라고도 한다.


다른 하나는 연기법(緣起法)이다. 이는 마음이 아닌, 지금 눈앞에 펼쳐진 대상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방식이다. 다만, 그 현상을 개별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모든 것이 서로 조건이 되어 일어난다는 ‘연기’의 관점으로 관찰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흔히 ‘수행’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의 대부분은 이 심법에 속한다. 불교의 선(禪)이 그렇고, 참선(參禪)이 그러하며, 기타 다른 수많은 관법과 명상들 역시 마음의 근원을 파고들어간다는 점에서 심법의 범주에 있다. 아마도 인류가 고안한 수행법의 99.9%는 심법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매우 아이러니한 지점이 있다. 깨달음의 대명사로 불리는 석가모니는 심법이 아닌 연기법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불가에서는 불법의 핵심은 연기법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실제 수행 현장에서는 심법이 주류가 되어왔다.


이러한 현상은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강화된 측면이 있다. 당시 문자에만 치중하여 공부의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름의 궁여지책으로 마음을 직접 파고드는 혁신적인 공부 방법인 심법이 자연스럽게 발달한 셈이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심법은 널리 퍼졌고 연기법은 상대적으로 그늘에 가려졌다. 그 결과, 사람들은 심법이야말로 불교의 중심이며 석가모니 또한 심법으로 깨달았을 것이라는 깊은 오해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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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이 중시되었던 과거의 시대에는 어쩌면 이 심법 방식의 공부가 더 유리했을지 모른다. 또한 끝없는 생각의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중생에게 ‘일단 멈추고 내면을 보라’는 가르침은 매우 유익한 방편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고도로 발달한 이성과 분석적 사고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에 와서는, 역설적이게도 연기법이 훨씬 더 적합한 길이 될 수 있다.


물론 깨달음이란 이성을 넘어서는 공부이기에, 지나친 분석력과 이성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연기법은 매우 묘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수행은 우리가 가진 이원적인 사유를 초기 재료로 사용한다. 그것을 부정하거나 억누르지 않고, 오히려 그 이원적 생각을 재료 삼아 점차 다원적, 통합적 인식으로 우리를 전환시킨다. 이성을 발판 삼아 이성을 뛰어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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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법의 한계


심법을 통해 내면의 근원, 즉 본성을 확인(견성)한다고 해서 모든 공부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진정한 끝이라면, 깨달음은 실생활과 분리된 그들만의 리그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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