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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감옥, 공간의 감옥

탈옥의 기술 : 열일곱 번째

by 나말록
이것을 못 보게 하는 것은
단지 생각(이원적 관념)일뿐이지
다른 이유가 없다.



우리는 두 개의 감옥에 갇혀 산다. 하나는 공간의 감옥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의 감옥이다. 이 감옥은 철창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생각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더 견고하고 빠져나오기 어렵다. 철창은 보이지만 생각의 벽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스크린 속 주인공이 감옥에 갇혀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정작 관객석에 앉은 우리가 더 큰 감옥에 갇혀 있다는 건 알아채지 못한다. 영화 속 감옥은 허구지만, 우리가 갇힌 감옥은 너무나 실제처럼 느껴져서 감옥인 줄조차 모른다. 눈을 뜨기 전까지는 이 감옥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간다.


시간과 공간이란 것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둘 중 하나다. 이것이 마치 대단한 헛소리이거나 또는 도력 높은 도인의 심오한 깨달음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둘 다 아니다. 이것은 아주 단순한 진실에 대한 서술일 뿐. 이것을 못 보게 하는 것은 단지 생각(이원적 관념)일뿐이지 다른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일단 보고 나면 속을 방법이 없어진다. 마치 이미 알아버린 것을 모르던 때로 되돌릴 수는 없다. 영화를 보면서 그것을 실제라고 받아들이는 건 더는 가능하지 않다. 한번 진실을 보면 결코 되돌릴 수 없다.



공간의 감옥


공간의 감옥은 '여기'와 '저기'를 나누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는 여기 있고 당신은 저기 있다. 책상은 여기 있고 의자는 저기 있다. 서울은 여기고 부산은 저기다. 이런 분리가 너무나 당연해서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면 '여기'와 '저기'라는 건 개념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인식되는 것은 다양한 감각의 내용들이다. 시각적 형태, 촉각적 감각, 청각적 소리들. 이 모든 인식의 내용에는 '여기'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지 않다. 우리가 생각으로 '이것은 여기, 저것은 저기'라고 구획을 짓는 것이다.


냉장고를 열고 배를 꺼낸다. 배는 냉장고 '안'에 있었고, 지금은 내 손 '안'에 있다. 그런데 냉장고의 '안'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는가? 냉장고의 문을 열면 공간이 보인다. 그 공간이 '안'인가? 공간 자체에는 '안'이라는 속성이 없다. 우리가 냉장고라는 경계를 설정하고, 그 경계 내부를 '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배가 냉장고 '안'에서 내 손 '안'으로 이동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배가 실제로 이동한 것인가? 지금 이 순간 인식되는 것은 손의 촉각과 배의 형태뿐이다. '이동'이라는 것은 과거의 기억(냉장고 안에 있던 배)과 현재의 인식(손안에 있는 배)을 연결해서 만든 이야기다. 실제로는 과거의 배도 없고 이동도 없다. 다만 지금 이 순간의 인식만 있을 뿐이다.


이것을 더욱 극명하게 보려면 거리에 대해 생각해 보면 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00킬로 미터라고 한다. 그런데 이 400킬로 미터라는 거리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서울에도 없고 부산에도 없다. 그 중간 어디에도 없다. 거리라는 것은 두 지점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개념이지, 실제로 존재하는 무엇이 아니다.


더 이상한 것은 우리가 '여기'에서 '저기'로 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결코 '여기'를 벗어난 적이 없다. 서울에 있을 때도 '여기'이고, 부산에 도착해도 여전히 '여기'다. '여기'가 아닌 곳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다. 우리는 평생 '여기'에만 머물러 있으면서,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한다는 환상 속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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