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옥의 기술 : 열여섯 번째
이제 어쩌면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오늘 하는 이야기는 그동안 매우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당연하지 않은, 마치 세상에 이제 갓 태어난 아이처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풀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숙제 중 하나다.
깨닫는 것, 즉 스스로를 가둔 감옥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이원적 관념의 허구성을 눈치채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어왔던 당연한 것들을 고정관념 없이 그리고 편견 없이 살피는 것뿐이다.
이원적 관념을 쉽게 표현하면,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다. 무언가가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이원적 관념이고, 그것이 우리를 가두는 쇠창살이다.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존재한다고 착각함으로써 그것이 우리를 옭아매는 쇠창살이 된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그대로가 바로 이원적 관념에 빠져있는 상태다. 이상할 것도 없고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그러나 사실은 자연스럽지 않은 매우 어색하고 불편한 상태가 바로 당신의 일상적인 의식 상태다.
눈을 뜨면 삶의 모든 무게가 훌훌 날아가버린다. 삶은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눈을 뜨지 못한 자의 삶은 마치 쌀 수 십 가마를 어깨에 이고 길을 가는 것과 같다. 무게에 짓눌린 은근한 두려움과 공포를 바탕에 깔고 산다. 잠시 그 괴로움을 잊기 위해 다른 것에 몰두하려 노력하지만 그 무게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 짐이 내려질 때 비로소 '그랬구나' '그렇게 무거웠구나'를 깨닫게 된다. 이 차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실제로 벗어나 보지 못하면 도무지 알기 어렵다. 그렇게 뿌리 깊은 이원적 관념이 바로 당신의 삶을 옥죄는 하나하나의 창살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관념의 근본이 바로 '있다'라는 존재관념이다.
‘있다’가 관념이라는 말이 조금 믿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개념이기 때문에 ‘있다’라는 생각이 없이는 ‘없다’라는 생각도 일어나지 않으며, '없다' 없이는 '있다'도 일어나지 않는다. 컵을 보면서 컵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컵이 ‘없다’는 개념(상상)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없다’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서 낯설 수도 있지만, **이원적 상대적 구조는 물리적인 대상과 개념의 구분 없이 작용한다. **
“하지만 이렇게 눈에 보이는데요?”
우리는 보통 눈에 보이는 것을 ‘있다’와 동일시하지만 사실 이 둘은 다른 것이다. 보이는 것은 직접적인 경험이고 ‘있다’는 개념이고 생각이다. 알고 보면 **인식되는 것과 존재는 관련이 없다. **좀 더 깊게 들어가면 오히려 반전이 일어나, 인식되는 것이 존재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일상적인 말을 들여다보면 여지없이 상대적 간섭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유령처럼 한쪽 발을 대극에 딛고 서있다.
아주 오래전 중국에 육조혜능이란 아주 유명한 스님이 있었다. 스승으로부터 깨달음의 증표인 의발(衣鉢)을 전해 받은 혜능은 다른 승려들의 시기를 피해 몰래 도망쳐야만 했다. 이때 혜능을 뒤쫓는 승려들 중에 도명이란 스님이 있었는데, 그는 혜능에게 의발을 빼앗는 대신 깨달음의 가르침을 청했고, 혜능은 기꺼이 도명에게 짧은 법문을 들려주었다.
선도 생각지 말고 악도 생각지 마시오.
바로 그때, 어떤 것이 그대의 본래면목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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