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분리

꼬리찾기 #17

by 나말록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이원적이다. 세상도 역시 이원적으로 드러나 있다. 컵이 있고 식탁이 있고 바다가 있고 파도가 있다. 이원적이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인식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둘로 나뉘어지지 않고는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빛만 있어서는 빛이 드러나지 않고 어둠만 있어서는 어둠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언뜻 생각하면 이원의 속성인 ‘다름’를 ‘따로 존재함’으로 이해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다름’은 본질적으로 분리와는 상관이 없지만, 생각이 ‘다름’의 현상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분리의 착각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각각 따로따로 다르게 보이는 대상들을 앞에 두고, 이 분리가 단지 이원적 생각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면 과연 얼마나 납득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지 않아도 휴대폰과 노트북은 여전히 따로 분리돼 있는데 그게 아니라고? 그렇다. 이렇게 이원적으로 따로 떨어진 것으로 인식된다고 해서 그것이 분리는 아니다. 이 말이 얼마나 당황스러운 말인지 잘 안다. 그래서 예부터 쉬운 이해를 위해 꿈을 예로 들었다. 꼼 속에서 온갖 사물들이 따로 떨어져 있고 제각각이지만 결국 꿈을 꾸는 의식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그래도 꿈과 생시가 차이가 있어 완전한 이해에 도달하기는 어렵지만 어떻게 분리된 것을 하나로 인식할 수 있는지는 짐작해 볼 수 있다. 꿈과 생시 모두 이원적 생각이 작용한다. 꿈과 생시 모두에서 그 분리를 만들어는 것이 바로 생각이다. 이원적인 차별로 드러난 것이 분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분리로 인식하는 것이다.


개념을 통해서 효율성을 얻게 됐지만 그 분리된 것을 실제 존재하는 것으로 믿으면서 우리에게 문제가 생겼다. 생각이라는 감옥에 스스로 갇혀버린 것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이성이 발달한 인간 종족이 겪어야만 하는 원죄와도 같다. 이성이 발달하기 전에는 분리란 존재하지 않았다. 이성의 발달과 이후 세상을 구조화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재주에 스스로 걸려들어 버렸다. 마치 마술사가 자기 마술에 자기가 속은 것처럼 말이다. 단지 과정일 뿐이니 그렇다고 안타까워할 일은 아니다.


인간 의식의 진화는 이성의 전 단계인 전이성에서 이성으로 발달해 왔다. 아직도 이성적 인간의 진화는 진행 중이지만 발전의 방향은 명확하다. 생각 너머를 본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이성적 인간의 다음 단계다. **혹시라도 이성을 넘어선다는 개념이 전이성, 즉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으로의 회귀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주 큰 오해다. 생각을 넘어선다는 것은 이성적 기능 이전, 즉 어린아이처럼 순수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성을 포함하고 넘어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논리에 빠져 개념을 실체시 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에 지배당하지 않고 지혜롭게 쓰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때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이 자기의 이원적 생각뿐이었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개념으로 삶을 그리는데 과몰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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