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과 그것 아닌 것

꼬리찾기 #20

by 나말록


꼬리의식이 활동하는 과정을 보면 처음에는 대상과 상대되는 것을 딛고 대상을 드러나게 했다. 빛은 어둠을 드러나게 하고 작은 것은 큰 것을 드러나게 하고 음은 양을 드러나게 했다. 큰 것은 작은 것을 드러나게 하고 비싼 것은 싼 것을 드러나게 했다. 이렇게 보면 세상은 모두 상대적인 대극으로 드러나 있는 듯하다. 그런데 상대적 대극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컵과 같은 물리적 대상은 반대되는 대극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컵의 반대가 물병이 아니고 사과의 반대가 배는 아닌 것처럼 말이다.


결론을 말하면 **사과의 대극은 ‘사과 아님’이다.** 존재의 관점에서는 사과 ‘있음’과 사과 ‘없음’이지만 개념의 관점에서는 ‘사과’와 ‘사과 아님’ 이 바로 상대적 대극이다. 앞서 살펴봤던 ‘있다’와 ‘없다’와 같이, 구조는 완전히 같다. 이 두 경우를 통합하면 그것이 바로 ‘**그것과 그것 아닌 것**’ 이 된다. 기호로 표현하면 **A and not A** 가 되고 디지털의 개념으로 하면 **0과 1**이 되며, 그림으로 표현하면 앞서 제시했던 꼬리 간섭모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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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든 것은 ‘그것과 그것 아닌 것’으로 모아진다. 꼬리는 언제나 ‘그것과 그것 아닌 것’ 사이를 끊임없이 잇는다. 그 모습이 때로는 비교로 나타나고 때로는 상대적인 가치 변화로 나타났다. 가장 극과 극에 있을 것만 같은 ‘이것과 이것 아닌 것’은 어째서 서로 끈끈히 연결돼 있는 것일까. 의미적으로는 달라도 너무 다르고 멀어도 가장 먼 데 말이다.


0과 1로 만들어진 디지털 세상은 현실 세계와 모습이 비슷해 보인다. 0과 1은 숫자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과 그것 아님을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무엇이든 표현되고 인식되기 위해서 대극을 필요로 한다는 점은 디지털 세상이나 현실이나 다름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쌍으로 드러나야 하는 기본 구조가 같은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꼬리의 움직임과 디지털에서의 꼬리의 움직임은 동일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모방한 3D 게임과 시뮬레이션 구현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만일 ‘그것과 그것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없었다면, 다시 말해서 0과 1을 구분 못하거나 사용할 수 없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인식의 기본 조건은 상대적 대극의 존재 여부다. 존재 여부라고 해서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건 아니다. 예외 없이 쌍으로 드러나야 한다.



다름의 역할은 드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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