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신고
솔로프리너를 선언한 지 벌써 1년이 됐고 감사하게도 아직 잘 생존하고 있다.
올 한 해 동안 주 3~4일은 스타트업들과 협업하며 마케팅 어드바이저로 활동하고, 1~2일은 외부 강의와 자기 계발에 투자하려고 했는데 전자는 잘 지켜졌지만 후자는 Not bad 수준.
그래도 틈틈이 취준생, 현업분들, 스타트업대표님들 대상으로 외부 강의를 하면서 원했던 방향대로 한 걸음씩 내디뎠던 한 해였다. 현재는 40FY에서 파트타임으로 웨이마크 서비스를 리딩하고 있는데 팀을 리딩하며 동료들과 함께 이룬 의미 있는 성과를 2024년이 가기 전에 기록하고 싶었다.
"구매전환율 8배 상승, 월평균 매출 이익 17배 상승"
다양한 실험과 실패와 성공과 배움이 버무려져 상반기 대비 하반기 월평균 구매전환율 8배 상승, 매출 이익 17배 상승이라는 큰 성과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얻은 유의미한 내용과 알고 있었지만 망각하고 있던 기본적인 것들.
1.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서비스는 역설적이게도 얼마나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지에 따라 성패가 나뉜다.
웨이마크 서비스는 직장인 대상 자기 이해를 통해 건강한 커리어핏을 찾는 진단 검사다. 그야말로 먼저 알려주지 않으면 어떤 가치를 제공해 주는지 알기 힘든 무형의 서비스.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서비스는 역설적이게도 얼마나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지에 따라 성패가 나뉜다. 고객이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할 수 있게, 만질 수 있게, 볼 수 있게, 이해될 수 있게 해야 한다. 무형의 서비스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2. 유저가 우리 서비스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신규 유저를 더 많이 데리고 오는 것보다 우선 돼야 하는 건 '유저가 우리 서비스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다. 우리가 내세우는 핵심가치가 실제 유저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경우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걸 알아내는 가장 빠른 방법은 고객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다. 그럴싸한 리서치가 아니어도 된다. 어떤 질문을 해야 내가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지 질의설계만 잘 되어 있으면 나머지는 실행의 영역이다. 잘못된 포지셔닝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매우 비싸다.
3. 시장 성숙도가 낮은 서비스일수록 검색 유저는 많지 않다.
시장 성숙도가 낮은 서비스는 대체로 그걸 보여주기 전까진 그게 필요한 서비스였다는 걸 유저가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타겟 유저가 우리를 잘 발견할 수 있도록 미디어에 노출하는 매체핏이 우선이고, 고객 언어로 치환하여 성과 내는 메시지 전략이 따라와야 한다. 검색어를 공략하는 건 그다음이다.
4. 브랜드 검색어 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
그럼에도 구매가 임박한 유저들은 실패하지 않는 소비를 위해 비슷한 다른 서비스와 비교/검색을 한다. 때문에 '브랜드 검색어'는 업종 불문 늘 구매율이 높고, 트래픽 품질이 좋은 키워드이다. 따라서 검색 결과에 나오는 콘텐츠의 최신성, 누적 발행량, 평판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5. 미디어 믹스는 필수가 아닌 선택
매체핏 파악을 위해 초반 테스트는 필요하지만, '미디어 믹스' 워딩이 주는 무언의 의무감에 휩싸여 굳이 다양하게 운영하진 않는다. 어차피 예산 범위 내에서 마케팅 활동을 해야 하는데 규모가 애매하면 미디어 채널만 분산되고 충분한 학습이 이뤄지지 않아 성과하락의 악순환만 반복된다. 더불어 처음부터 믹스된 형태로 진행할 때 미디어 별 성과 중복으로 인해 효율 판단이 애매하다. 심지어 미디어 별 성과인정 기간도 다르다. 오히려 반응이 오는 쪽에 최대한의 예산을 집중하여 효율 구간과 임계치를 먼저 확인하고 추가 확장은 그다음 액션아이템으로 가져가는 편이다.
6. 선 단일 미디어 운영, 후 미디어 믹스의 이점
이렇게 진행할 경우 2가지 이점이 있는데 첫째, 성과가 잘 나는 운영방식과 포맷을 알 수 있어 미디어 추가 운영 시 시간낭비를 줄일 수 있다. 둘째, 거의 모든 미디어의 기여성과 모델은 Last click이다. 한데 유저의 구매여정은 다양하기 때문에 명확한 기여성과 구분이 어렵다. 1개의 미디어를 운영했을 때와 2~3개의 미디어를 운영했을 때 실질적인 성과차이가 별로 없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점진적인 미디어 확장을 하게 되면 추가한 미디어 운영 이후 늘어난 매출 성과의 증분만큼 대략적인 기여도를 파악할 수 있다. (다만 이건 담당자의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성격이라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다)
7. referral과 organic은 기업 경쟁력
서비스 운영에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낮은 CAC와 높은 LTV의 상반된 선형 그래프다. 그리고 마케팅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나리오는 referral과 organic 유입이 쏟아지는 파이프 라인을 구축했을 때다. referral은 우리 서비스 핵심 가치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줄 때 활발히 일어나고, organic은 기업의 SEO or ASO 액션에 큰 영향을 받는다. 쉬운 예로 피부과 신규환자의 시술동의율은 광고를 보고 온 사람보다 지인 소개로 온 사람의 시술동의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제법 많은 유저들이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해하고 구매하기보다 그들이 믿는 사람의 말을 믿고 구매한다.
8. 세일즈와 CX/CS는 마케터의 강력한 뮤즈
세일즈와 CX/CS 업무를 하는 동료와 물리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가까운 게 좋다. 누구보다 유저 보이스를 현장에서 날 것으로 가장 많이 듣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데 직무 성격 상 통제 가능한 영역보다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아서 본연의 업무를 쳐내기에도 바쁜 경우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온도로 핵심만 짚어서, 일목요연하게, 잦은 빈도로 유저보이스를 전달해 주는 동료가 있다면 출근 후 그분께 절을 하면서 다니자.
9. 퍼널 개선은 올바른 데이터 수집으로부터 시작된다
퍼널 개선은 별도의 비용 없이 성과 개선이 가능한 아주 좋은 방법이다. 유저 시나리오에서 구간 별 이탈률만 개선해도 엄청난 효과를 얻는다. 이게 가능하려면 내가 보고 싶은 데이터를 언제든 볼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어야 하고, 그 환경을 만들려면 내가 그 데이터를 왜 보고 싶은지 자신과 타인에게 설명하고 문서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보통 이벤트 정의서라고 하는데 문서화의 목적은 크게 2가지이다. 데이터를 보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레벨로 이해하기 위함이며, 혹시 모를 담당자 부재나 교체 시 히스토리를 다운로드하는데 용이하기 때문이다. 만약 혹시 모를 불안에 휩싸여 보지도 않을 데이터까지 마구잡이로 수집한다면 나중에 관리 비용이 더 드는 곤혹을 치르게 된다. 무엇보다 이벤트 로깅을 해주는 데이터 분석가나 엔지니어분들이 굉장히 싫어하는 행위이다.
10. 일이 되게 만드는 의사소통
목표 달성을 위해 나아가다 보면 직무가 다른 사람 or 다른 팀과의 협업이 필수적으로 발생한다. 팀원을 설득시키는 것보다 훨씬 품이 많이 들고 오래 걸린다. 그래서 무엇보다 일이 되게 만드는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건설적인 대화가 많이 오갔는데도 결론이 물음표로 남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논의 아젠다를 미리 공유하고 누가, 왜 해야 하는지,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그래서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 언제까지 할 수 있는지를 명문화해야 한다. 단순 가열찬 논의를 빈도 높게 하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11. 빠른 실행 VS 시장 조사
부끄러운 실수도 있었다. 성장한 매출에 힘입어 넥스트를 염두한 세그먼트 & 서비스 영역 확장을 했고, 빠른 실행이란 명분으로 시장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론칭 후 한 달 만에 운영 보류라는 의사결정을 했지만 이를 위해 투여됐던 팀 리소스는 나의 느슨한 판단으로 인해 낭비된 셈이었다. 최선을 다해 매진하여 아쉬운 결과를 얻는 것과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기회비용은 결이 다르다. 팀원에게, 전사 동료분들께 사과했다. 반성해야지. 이래서 리더의 역할과 역량이 중요하다.
올해 일하면서 고마운 점이 있다면 무엇보다 팀웍으로 좋은 성과와 즐거운 경험을 쌓아 올릴 수 있었다는 것. 시니어 파트타임으로 합류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성과를 내야겠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나에겐 동료들의 신뢰를 먼저 얻는 게 중요했고 신뢰는 성과로 증명하는 게 가장 빠르고 명확한 편이라서.
그 와중에 조급해하지 않고 제 속도와 방향대로 꾸준히 갈 수 있었던 건 오랫동안 함께 했던 동료처럼 따뜻하게 대해 준 팀원과 전사 동료분들의 Trust & Respect 덕분이었다.
일을 하다 보면 규모와 상관없이 계획했던 일의 절 반 이상은 생각지 못한 이슈로 시도조차 못하거나, 우선순위에 밀리거나, 시도했다가 방향이 바뀌면서 빠르게 접는 걸 종종 경험한다. 수위와 빈도에 따라 다르지만 이걸 기본으로 받아들이고 업무에 임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혼자 하는 일이 아니기때문이다.
지금의 방식으로, 지금의 페이스로, 내가 언제까지 얼마나 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 중요한 건 나라는 제품이 아직 망하지 않고 여전히 그로스 모델로 워킹하고 있다는 데에 큰 의미를 두고 싶고 좀 더 나답게, 좀 더 초연해진 자세로 한층 더 멋있게 늙고 싶다.
그래서 내년엔 맥북을 사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