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이와 내 유전자가 불일치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나랑 맞는 게 베스트였는데 또다시 난관이다. 담당자는 요새 애들을 많이 낳지 않아서 형제 중에 맞는 사람이 잘 없다고 했지만, 위로의 말일뿐 맞는 사람은 또 맞겠지. 이제 타인 공여자를 찾을 거라 한다. 그나마 국내에서 공여자가 나타나길 기도해야겠다. 나보다 더 잘 맞는 유전자가 어딘가에 있겠지. 모든 것이 풍족했을 때는 몰랐던 것들을 역경 속에서 알 수 있는 게 아이러니하다. 특히 오늘 같은 결과를 받으니 김이 새기도 한다.
엊그제 병원에서 돌아온 후에는 엄마가 집에서 기억을 잠시 잃으시고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정욱이 어디 있어? 우리 정욱이 어디있는거야!!!!!"
라고 찾으셨던 적이 있다. 얼마나 아득하고 두려웠는지 지금도 겁이 난다. 이 모든 무너짐을 초연하기엔 난 너무 나약하다. 신의 뜻이 무엇이든지 간에 만약 내가 바라는 동생의 삶을 이뤄줄 수 없다면, 그땐 정말 내 힘으로 살 수는 없을 거 같다. 사람들은 막상 맞닥드리면 다 하게 된다고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의식 없이 깊은 물에 빠진 것처럼 모든 물길에 치이고만 있다. 사람이 주체적으로 산다는 건 주변의 모든 것이 안정되어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었다. '나답게' 산다는 말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말이었는지. 허우적대지도 못하고 휘청거리는 나는 그저 저 수면 위 어딘가에서 이 모든 물살을 뚫고 나를 건져내어 줄 손이 나오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