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항암을 마치고 퇴원을 하고, 오늘 첫 외래를 다녀왔다. 집에서도 실내에만 있어야 하니까 답답해하는데 교수는 나가지 말고 집에서 먹고 자고, 병원 같은 환경으로, 있으란다.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이 얘기하는데 젊은 사람은 그게 제일 힘든 일 아닌가.
정욱이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 항암 휴식기에 정욱이가 있을 환경을 위해 병원에서 간략한 가이드라인을 받고 백세모(급성백혈병환우회)도 검색해서 본 후 엄마랑 같이 집을 싹 정리했다. 이사 온 지도 꽤 됐고, 무엇보다 책이 너무 많아서 결국 집 전체를 정리해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결국 중고 컨테이너를 하나 사게 되었다. 원래 거실 벽이 전부 책장으로 돼서 그곳에만 한 500권의 책이 있었는데 책장과 책을 다 빼고, 소파도 버리고, 내 방과 정욱이 방의 가구와 배치를 다 바꿔서 방을 교환하고, 정욱이의 새 방에는 침대와 책상만 두었다. 집안에 먼지가 생기면 안 돼서 커튼을 다 떼내고 블라인드를 주문해서 설치하고, 오래돼서 다 벗겨진 나무 문틀을 페인트칠로 보수했다. 언제 바꾸나 했던 오래된 거실 에어컨도 이번에 새로 사고, 그동안 안 사고 있던 공기청정기도 거실, 주방, 정욱이 방용으로 갑자기 세대를 사게 되었다. 정욱이는 따로 식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해서 새 식기와 살균 기능이 있는 식기세척기도 구입했다. 화장실도 따로 써야 한다고 해서 정욱이용으로 거실 화장실을 아예 비웠다. 끝으로 우리 집 강아지 복실이는 감염위험 때문에 같이 살 수 없다고 해서 복실이를 남친네 맡기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야 집이 얼추 정리가 됐다.
정욱이가 집에 있으니 병원에서 처럼 매일 정욱이 손 닿는 곳과 화장실, 방 청소를 락스 희석액과 알코올 스왑으로 소독한다. 옷도 늘 삶아서 빨아야 하고, 이불도 매일 털고 말리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너무 바쁘다. 정욱이는 식사도 살균식을 해야 해서 엄마랑 매끼마다 장을 보고 요리하는데 말그대로 삼시 세끼 찍으면 시간이 다 가있다.
살균식은 모든 걸 가열해야 해서 그런지 뭔가 맛이 없다. 항암제로 입맛이 없어진 정욱이는 식욕도 별로 없고 구토도 자주 하는데 매 끼니 메뉴를 바꾸고 조금이라도 맛있는 포인트를 잡아 요리하는 게 정말 어렵다. 부모님이 아기들한테 밥 한술만 더 먹으라고 하는 게 이런 애원하는 심정이구나 싶다.
그래도 정욱이가 와 있으니 무조건 너무 좋다. 부모님도 한결 마음이 나아보이시고, 나도 평소처럼 명랑하고 씩씩하게 우리 집 왈가닥으로 지낸다. 다만, 3개월 때 우리 집에 와서 지금 14살이 되도록 실내배변을 잘해왔던 복실이가 남친 집이 어색한지 우리 집에서처럼 배변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남친이 야근을 하거나 늦게 귀가하는 날에는 복실이 배변을 시키러 가야 하는데 정욱이가 '내 동생 복실옹'을 엄청 사랑하고 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차라리 잘된 건지도 모른다. 집에 와도 복실이랑 같이 있지 못하는 게 돌아온 그 애의 아쉬운 부분 중 하나였는데 내가 복실이한테 가는 날엔 복실이 사진을 찍어서 정욱이한테 보내주고 복실이랑 영상 통화하는 게 하나의 즐거움인 거 같다. 정욱이랑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방법이 또 뭐가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