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필요 없는 실행력
1988년 대학을 졸업하고 LG그룹 공채로 취직한 나는 신입 연수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일주일 간 수 백명의 동기들과 전국의 공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평택 청주 구미를 찍고 드디어 부산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었다. 기획조정실(기조실)의 통제된 연수생활 속에서 부산의 해운대 앞 바다는 20대 청춘에겐 낭만이 꿈틀거리는 참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기조실에서도 그날 저녁은 우리들에게 자유시간을 주었다.
우리 조는 소주와 오징어를 사서 바닷가 모래사장에 자리를 잡고, 오랜만에 구속에서 벗어난 자유를 만끽하며 그간의 회포를 풀 수 있었다. 때는 청춘의 5월, 밤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시원하다 못해 약간 추위도 느껴지는 날씨였지만, 술이 오른 우리에겐 산들바람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당시는 20대 젊음이 한창 뜨거운 때이기도했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 말했다.
"우리 지금 바다로 뛰어 들어가 수영할래?"
우리는 잠시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이구동성 좋다고들 대답하였다.
"그럼 일단 웃통을 다 벗고,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바지를 벗고 뛰어 들어 가는 거야."
우리는 모두 동의하고 웃옷을 벗고는 셋을 외쳤다. 나는 얼른 바지를 내리고 팬티만 걸친 채, 5월의 찬 바닷가로 질주하여 바다 속으로 뛰어 들어가자마자 갑작스런 추위를 이기기 위해 열심히 수영을 하였다. 순간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것을 느끼며 뿌듯함에 젖어있다가 문득 나 혼자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나는 얼른 밖으로 뛰어나와 옷을 걸치며 약속을 어긴 동기들에게 한 소리를 하였다. 그러자 팬티가 흰색이었다는 등, 막상 벗으려니 추었다는 등… 여러 이유와 변명이 쏟아져 나왔지만, 결국 그들은 생각만 있고 행동은 없는 핑계쟁이들에 불과한 사람들일 뿐이었다.
바다로 뛰어드는 일은 그저 일직선으로 달려가면 되는 너무도 단순하고 쉬운 일이었지만, 왜 그들은 그렇게 행하지 못했을까? LG그룹 공채로 합격한 그들이 머리가 나빠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콜럼부스의 달걀처럼 달걀을 깨서 세우거나,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알렉산더 대왕이 한 칼에 잘라 풀은 것처럼, 실행력은 다른 이유와 변명이 필요 없다. 매우 단순한 것이다. 바로 하기로 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참으로 많은 변명 속에 살고 있다. 대부분 실행력이 약한 사람들은 하기로 한 일에 다시 많은 이유를 단다. 때론 그 이유들이 모두 타당한 것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유들을 단 칼에 자를 수 있는 결단력과 실행력이 없다면, 마음 속의 생각은 결코 현실이 되지 않을 것이다.
엄청난 작품과 발명품으로 르네상스 시대를 꽃피웠던 레오다르도 다빈치는 말했다.
“충분히 생각하고계획을 세우되, 일단 계획을 세웠으면 꿋꿋이 나가야 한다. 아는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적용해야 한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는부족하다. 실천해야 한다.”
어느 조직에서든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계획을 수립하였다 해도,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성공할 확률은 제로(0%)이지만, 일단 행동에 옮기면 확률은 50%가 된다.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긴 나무로 쳐서 감을 따야 하는 것처럼, 뭐든 행해야 이루어질 수가 있다. 그래서 실행력 없는 목표는 비극과 같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비극이고, 기타리스트가 연주를 하지 못하면 비극이듯이, 실행하지 못하는 계획들도 모두 비극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행력이 경쟁력이고, 진정한 리더십인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아무리 노력해도 실행을 해야 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어떻겠는가?
중국에서 화장품 기업을 창업하여 몇 년이 지나자 매출이 급증하여, 약 6개월 후면 회사 자체 물류팀 직원들로는 물량을 다 배송해내기가 힘들 것이라 예상이 되었다. 나는 향후 매출증가를 대비한 물류업무 개선을 위해, 팀장에게 TFT를 구성하고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대안을 찾아내라고 지시하였다. 그런데 이 TFT가 한 달이 지나도록 바쁘다는 핑계로 회의도 잘 되지 않는 게, 매우 지지부진하였다. 실제로 나도 물류팀이 매우 바쁜 것을 잘 알고 있었던지라 계속 기다려 봤지만, 물류팀장은 그 후로도 계속 TFT를 진행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나는 물류팀장을 불러 물었다.
“왜 TFT가 진행이 잘 안되지? 매번 한다고 하면서 벌써 3개월이 지나자 않았나?”
“죄송합니다. 몇 번 회의를 했는데, 아직 이렇다 할 실마리를 못 잡고 있습니다.”
“아니, 이러다 우리회사 실적이 갑자기 급증하면 어쩌려고 그래?”
“근데..., 솔직히 저는 TFT 자체를 어떻게 운영해야할 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회의를 해서 문제를 발견하는 방법 자체를 몰라서 잘 못하겠습니다.”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그 동안 대기업에서 많은 TFT와 신규 프로젝트 및 워크아웃(Work-out) 미팅을 수행해왔던 내게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R&D 출신으로 주로 혼자 연구를 해왔던 물류팀장이나, 팀워크에 익숙지 못하고 회의문화가 별로 없는 중국인 직원들에게, TFT를 통해 현상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안을 도출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알아서 하라고 맡긴 내가 잘못이지, 그 직원들을 탓할 노릇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TFT 운영 방법으로 GE의 워크아웃 미팅에 대한 자료를 주며 운영방법을 설명해주는 한편, 만일을 대비해 아예 전문 유통업체에 물류를 통째로 아웃소싱하는 안도 병행해서 검토해보라는 가이드 라인도 주었다. 그렇게 되자 비로소 TFT가 어느 정도 돌아가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최종적으로 물류 아웃소싱이 가장 좋은 방법으로 채택되어, CJ대한통운과 시기적절하게 계약을 체결하고 급증하는 매출에 대한 물류대란을 대비할 수가 있었다.
즉, 어쩌면 사람들은 실행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을 하는 방법조차도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아무리 행동하라고 얘기해봤자, 뜬 구름 잡는 것처럼 아무런 소용도 없을 수 있다. 그럴 때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이해하기 쉽게 알려줘야 한다. 그렇게 되면 실행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위사람이 더 이상 왜 아직도 하지 못하냐고 떠들어 댈 필요도 없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