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0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한석봉, 글씨의 미학과 시대의 흔적

전설이 된 서예가의 글씨와 현대적 시선

by 김형범 Jan 30. 2025

한석봉의 이야기는 한국인들에게 너무도 익숙한 전설과 같습니다. 특히 그의 어머니와 관련된 일화인 "떡을 써라, 글을 써라"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조선시대라는 배경과 한석봉이라는 이름은 서예의 아름다움과 노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습니다. 어머니가 등잔불을 끄고 떡을 썰게 하면서도 한석봉에게 글씨를 쓰게 했다는 이야기는 그가 단순한 서예가가 아니라 노력과 정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게 만든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남아 있는 한석봉의 글씨를 보면 오늘날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화려한 캘리그래피나 예술적인 스타일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의외로 소박하고 단정하며 정돈된 서체를 보여주는데, 이를 처음 접하는 현대 독자들 중에는 다소 실망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반응은 단순히 그의 글씨 자체를 문제 삼는다기보다는 우리가 그의 전설을 너무 과장되게 받아들였거나, 현대적 기준으로 그의 작품을 평가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오늘날 한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한글 서체, 특히 교과서나 문서 프로그램에서 사용되는 기본 서체들이 바로 한석봉의 스타일을 기반으로 표준화되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그의 서체는 너무나 널리 퍼져서 오히려 평범하게 느껴질 만큼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는 그가 단순히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당시 조선시대 서예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의 영향을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조선시대는 서예가 단순히 글씨를 쓰는 기술을 넘어 학식과 품격을 나타내는 중요한 문화적 요소였던 시기였습니다. 한석봉은 그러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했고, 이는 조선 서예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의 서체는 깔끔하면서도 균형감 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당대에는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는 그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예술가로 평가받아야 할 이유 중 하나입니다.


만약 한석봉이 현대에 태어났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그는 디지털 캘리그래피나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큰 두각을 나타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의 글씨가 가진 단정한 아름다움은 현대적인 미적 기준에도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깔끔한 글씨가 전부는 아니다"라는 현실적인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는 시대와 문화가 사람의 업적과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결국 한석봉의 전설적인 이야기는 단순히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의 일화를 넘어, 시대와 문화 속에서 개인의 업적이 어떻게 형성되고 전해지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의 이름이 전설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그 시대가 요구했던 미적 기준과 문화적 가치를 정확히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글씨를 보며 단순히 미적 감탄을 넘어서, 그가 남긴 영향력의 깊이를 떠올려야 할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그린란드와 덴마크, 억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