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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왜 암에 걸리지 않을까?

거대한 몸집 속에서 벌어지는 생물학적 미스터리

by 김형범

바닷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를 바라보면 신비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대왕고래는 길이가 30미터에 달하고 몸무게는 수십 톤이 넘는 거대한 생명체인데요.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질병인 암이 고래에게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요?


암은 세포가 통제되지 않고 무한히 증식하는 병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세포의 수가 많을수록 암에 걸릴 확률도 높아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몸집이 작은 동물, 예를 들어 생쥐는 암이 생기면 금방 사망하지만, 거대한 고래는 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합니다. 이 현상은 ‘페토의 역설(Peto’s Paradox)’이라고 불리며 과학자들의 흥미로운 연구 주제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과학자들은 오랜 연구 끝에 고래가 암에 강한 이유를 몇 가지 밝혀냈습니다. 먼저, 고래는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를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이나 생쥐의 세포에도 암 억제 유전자가 있어 암 발생을 막아주지만, 고래의 경우 이러한 유전자의 수가 훨씬 많아서 암세포가 생겨도 초기에 제거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특히, 코끼리처럼 몸집이 큰 동물들이 암 억제 유전자를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습니다. 이는 오랜 시간 동안 자연선택을 통해 발달한 생존 전략일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고래는 세포가 분열하는 속도가 느리고, 신진대사율도 낮습니다. 세포가 빠르게 분열할수록 유전자 변이가 일어날 확률이 높아지고, 이는 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킵니다. 그러나 고래는 세포 복제가 천천히 이루어지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생길 가능성이 낮고, 암세포가 빠르게 퍼지지 못합니다. 이를테면 인간보다 세포 재생 속도가 느려 오히려 안정적으로 세포를 유지하는 것이죠. 이런 특성은 고래뿐만 아니라 장수하는 동물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됩니다.


더 흥미로운 가설도 있습니다. 고래의 몸속에서는 암세포끼리 경쟁이 일어나 결국 암세포 자체가 스스로를 파괴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암세포들도 생존을 위해 자원을 필요로 하는데, 큰 동물일수록 종양 내부에서 이러한 경쟁이 심해져서 서로를 억제하게 된다고 합니다. 결국, 암세포들이 자원을 빼앗기면서 성장 속도가 느려지고, 종양이 커지지 못하는 것이죠. 이를 '중복 종양' 이론이라고도 하는데, 종양 내에서 암세포가 서로 견제하며 확산 속도를 저하시킨다는 개념입니다.


이러한 연구는 인간의 암 치료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고래의 생리적 특성을 연구하면 새로운 암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실마리를 얻을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암 억제 유전자를 활용한 치료법이나, 암세포의 자기 억제 메커니즘을 연구하여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고래의 신체 구조나 면역 체계가 암을 막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왕고래와 같이 장수하는 동물들의 유전적 특징을 분석하면, 인간의 질병 치료에도 적용할 수 있는 유용한 정보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세포 분열 속도나 면역 체계의 특성이 인간과 어떻게 다른지 분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연구 주제입니다.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 온 암이라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다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에게서 해답을 찾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다의 거대한 신비 속에서 우리는 암을 정복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까요? 혹시 인간도 고래의 생존 전략을 배워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앞으로의 연구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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