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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초콜릿의 대가: 비스킷과 케이크의 엇갈린 운명

딱딱함과 눅눅함, 그 사소한 차이가 가른 수천억 원의 세금 전쟁

by 김형범

우리는 앞서 소화를 돕기 위해 태어난 의료용 비스킷이 바다를 건너 한국에서는 생존을 위한 '비상식량'이 되고, 고향인 영국에서는 초콜릿을 입었다는 이유로 '사치품' 취급을 받게 된 기구한 운명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더욱 흥미로운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다이제스티브를 만든 영국의 제과 명가 맥비티(McVitie's)에는 다이제스티브 말고도 '자파 케이크(Jaffa Cakes)'라는 또 다른 효자 상품이 있는데, 이 두 형제 과자가 영국의 까다로운 세법 앞에서 전혀 다른 운명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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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세청의 기준은 냉혹했습니다. 초콜릿이 입혀진 다이제스티브는 명백한 '비스킷'이자 사치품으로 분류되어 20%의 부가가치세를 두드려 맞았습니다. 판사가 직접 먹어보고 "이 맛은 사치다"라고 판결했다는 일화처럼, 다이제스티브는 그 정체성을 부정당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습니다. 그런데 국세청의 칼끝이 맥비티의 또 다른 제품인 자파 케이크를 향했을 때, 회사는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겉보기엔 영락없는 초코 비스킷처럼 생긴 자파 케이크 역시 세금 폭탄을 맞을 위기에 처하자, 맥비티는 거액의 로펌을 고용해 "이것은 비스킷이 아니라 케이크다"라는 주장을 펼치며 역사적인 법정 공방을 시작했습니다.


이 재판의 핵심은 맛이나 모양이 아니었습니다. 승패를 가른 것은 엉뚱하게도 '시간이 흘렀을 때의 물리적 변화'였습니다. 맥비티 측은 아주 기상천외하면서도 과학적인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비스킷은 오래 방치하면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해 눅눅해지지만, 케이크는 수분이 날아가면서 딱딱하게 굳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법정에서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 거대한 실험이 진행되었습니다. 판사와 변호인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며칠 동안 방치된 자파 케이크는 맥비티의 주장대로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습니다.


반면, 우리의 다이제스티브는 어땠을까요? 뚜껑을 열어두면 눅눅해지는 그 익숙한 성질 때문에 다이제스티브는 변명의 여지 없이 '비스킷'임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고, 사치세 부과 대상이라는 멍에를 벗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자파 케이크는 "딱딱하게 굳었으므로 케이크가 맞다"라는 판결을 받아내며, 필수 식료품으로 인정받아 세금을 면제받는 쾌거를 이룩했습니다. 똑같이 밀가루로 만들고 똑같이 초콜릿을 입혔지만, 단지 시간이 지났을 때 눅눅해지느냐 딱딱해지느냐 하는 이 사소한 물성의 차이가 수천억 원의 세금을 가르는 결정적인 기준이 된 것입니다.


결국 다이제스티브는 태생이 의료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초콜릿을 입었다는 이유로 사치품이 되어 세금을 내게 되었고, 자파 케이크는 케이크라는 법적 지위를 인정받아 '합법적 탈세의 전설'로 남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생존주의자들에게는 가성비 최고의 비상식량으로 칭송받는 다이제스티브가, 정작 본토에서는 눅눅해지는 성질 탓에 억울한 세금을 내고 있다는 사실은 묘한 연민을 불러일으킵니다. 어쩌면 이 과자의 역사는 인간이 만든 법과 규정이 얼마나 자의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틈새에서 피어나는 이야기가 얼마나 달콤하고도 씁쓸한지를 보여주는 가장 바삭한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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