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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옌T Nov 28. 2021

항해사와 나침반

‘잘 맞는’ 수업이란


 이번에 수능을 마친 제자가 감사인사를 보내왔다. 3개월 만에 점수가 5등급에서 2등급까지 뛰어 수능에서 최고점을 찍은 것이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수능이 100일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 학생은 기초가 부족하고 수능 공부도 너무 늦게 시작해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 학생은 기초가 부족하지도 않았고 학습 양도 많았다. 단지 방향을 모른 채 끝없이 단어만 암기하고 문제만 풀고 있었다. 마치 망망대해 한가운데로 끊임없이 항해만 하는 꼴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고독한 항해사에게 나침반을 하나 쥐어주었고, 그게 전부였다.



 학생도 열심히 했고, 나도 수업에 최선을 다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극적인 점수 향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학생에게 이런 결과가 나올 거라고 예감했다. 단 몇 번의 수업만으로 우리가 ‘잘 맞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열심히 공부한다. 입시를 지도하는 선생님들은 그보다 더 열심히 준비하고 지도한다. 그런데도 결과가 항상 같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본인에게 ‘맞는’ 수업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나와 맞는 수업이란 무엇일까? 개인적인 경험과 주워들은 사례들로 다음과 같이 추론해보았다.




1. 워너비

 왜 일타강사들은 슈퍼카를 탈까? 처음엔 ‘그 사람이 슈퍼카를 좋아하나 보다’ 싶었다. 그런데 슈퍼카를 타는 강사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물론 멋진 차지만 불편함도 꽤 많을 텐데 말이다. 수험생 커뮤니티를 보면 강의력보다는 강사가 타는 차, 입는 옷, 먹는 음식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일 때가 있다. 예전에는 그런 부분을 왜 중요하게 평가하는지 회의감을 느낀 적도 있다.

 그러나 순수하게 학문 자체의 즐거움으로 수험생활을 하고 있는 수험생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저마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힘들고 지긋지긋한 수험생활을 견디고,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대신 목표를 달성할 조력자(강사)의 수업을 선택한다. 그러다 보니 목표를 이루어 성공한 미래의 내 모습을 그들에게 투영할 수밖에 없다. 물론 ‘성공=돈’이라고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화려한 삶만큼 직관적이고 즉각적인 동기부여를 일으키는 것도 없다. 이 뿐만 아니라 멋진 커리어우먼, 학문적 성취, 행복한 가정을 꾸린 모습까지 자신이 원하는 미래상을 가진 선생님을 동경하고 따르게 되는 것이다.




2. 취향

 수험생 시절, 나는 자신을 어필하는 강사를 좋아하진 않았다. 그가 몇 명의 수험생을 합격시켰고, 얼마나 대단한 학력을 가졌으며, 매출을 얼마큼 올렸는지에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입담이 좋고 재미있는 썰이 가득한 강사의 수업을 선호했는데 오늘은 얼마나 웃길지 기대하면서 수업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해당 과목에 흥미가 생기면서 성적도 상승 그래프를 그렸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나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였다.

 잘생긴 과외 선생님을 붙여주면 성적이 오른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성에게 관심이 많은 학생이라면 충분히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수업을 일부러 피해서 듣는 학생이 있었는데, 해당 강사의 화장과 옷이 촌스럽다고 했다. 당시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그것도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 하물며 판서 스타일부터 작은 습관 하나까지 공부할 맛 나게 하는 모든 취향을 존중한다.



3. 멘탈

 학생들을 대할 때 가장 고민이 되는 순간은 당근과 채찍을 주어야 하는 순간이다. 안 괜찮은 순간에도 무조건적인 ‘괜찮아’를 줄 수도 없고, 독한 멘트에 용기를 잃고 좌절할까 봐 걱정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원래 독한 멘트를 못 친다. 평소에 독하고 악착같이 사는 타입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에게도 강요할 수 없다는 생각이기도 하고, 애초에 그런 말을 하는 내 모습은 어색하고 설득력이 없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늘 따뜻함만을 주게 되는데 이게 누군가에겐 독이 될 수도 있음을 알고 있다.

 두 가지를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면 좋겠지만, 대체로 강사들은 하나의 캐릭터를 가진 경우가 더 많다. 즉, 누구 수업에 가면 혼나고 누구 수업에 가면 위로받을지가 거의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 공부자극을 불러일으키는 날카로운 말들에 각성이 되는 학생이라면 실제 결과에도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이고, 그런 말들에 멘탈이 와장창 깨지는 학생이라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자신이 어떤 멘탈의 소유자인지 미리 점검해보기를 권한다.




 처음에 언급한 학생과 나는 이 모두가 잘 맞는 굉장히 드문 케이스였다. 운이 매우 좋았다고 생각했지만 수많은 선생님들 사이에서 나를 선택했으니 어쩌면 우리는 필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교육 시장에서 강사들은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광고하고 있고, 강의에 대한 평가나 후기도 찾아보기 쉽다. 결국 ‘잘 맞는’ 선생님을 고르는 키는 수험생이 쥐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지 못한 것 같다면, 우선 너 자신을 알라.


 나의 목표는 무엇인지, 목표가 없다면 선호하는 취향이 무엇인지, 그마저도 모르겠다면 채찍과 당근 중 나를 동기 부여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자. 제아무리 훌륭한 약도 사람에 따라 그 효과가 다르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었다고 나에게도 먹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에게 효과가 좋은 약이야말로 진정한 명약이다.



즉, 나를 ‘먼저’ 알고 쌤을 알면 백전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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