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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옌T Dec 14. 2021

능동적으로 수동적이기

Reference의 치사량


 나는 사주 보기를 좋아한다. 타고난 기질과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려주고 생년월일로 계산하는 풀이법이 꽤 신뢰할 만한 것 같아서다. 그러나 유명하다는 철학관을 연평균 2회씩 다니다 보니 대부분 내 미래까지 맞추지는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코앞에 닥친 신년 운세마저도 맞춘 적이 없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사주를 보는 이유는 뭘까? 사주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히 드는 순간은 인생이 잘 안 풀리거나 무언가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인데, 전자인 경우에는 “이제부터 잘 풀린다”라는 말을 후자라면 이미 내 마음이 기울고 있는 선택지가 옳은 선택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 같다. 그러면 나는 늘 원하는 답을 들었는가 떠올려보면 거의 대부분 그렇지 않았고 그 철학관에 재방문하지도 않았으며 결국 내 마음대로 살았다.


 볼 때마다 후회하면서 최근에 또 사주를 봤다. 이번에는 결정하고 싶은 게 있었다. 사실 내 마음은 한쪽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걱정이 팔자인 나는 “그게 너의 길이다”, “그것이 너의 운명이다” 따위의 말을 듣고 싶었다. 내 선택이 정답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원하는 답은 듣지 못했다.



 강의를 듣고 질문을 하러 오는 수험생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사주를 보는 내 모습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이때 나는 사주를 봐주는 쪽이고 수험생들은 다음과 같은 유형의 손님들이다.



1. 내 말이 정답이라고 맹목적으로 믿는 유형

2. 내 말을 참고하여 도움이 되는 것만 취하는 유형

3. 내 말을 불신하고 맞는지 아닌지 검증하려는 유형



 이 중에서 가장 위험한 유형은 1번 유형이다. 동방예의지국에 대다수 유교 보이와 유교 걸들은 학생이 선생님 말을 따라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수험생들이 준비하는 대부분의 시험은 몹시 수동적인 형태이다. 정해진 정보를 일방적으로 주입받고 선택지에서 정답을 고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개인적 견해를 개입시킬 수도 없고 오류를 증명해낼 수도 없다. 하지만 시험방식이 수동적이라고 해서 학습방식마저 수동적이어서는 안 된다.


 가령, 같은 질문을 할 때도 어떤 학생은 “이 문제 답이 왜 이거예요?”라고 묻는 학생과 “저는 이 문제에 답이 이러저러해서 이거라고 생각했고 저건 요래조래 해서 맞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뭘 잘못 생각한 거예요?”라고 묻는 학생이 있다. 사실 두 가지 질문에 나는 똑같이 답을 찾는 방식을 설명해 줄 것이다. 그러나 첫 번째 학생에겐 잔소리가 따른다. “답이 그거인 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건 해설지나 사전에 다 나오고~” 하면서 말이다. 두 학생의 지식의 총량이 같다고 가정할 때 두 번째 학생은 실전에서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 가능성이 더 크고 결과도 좋을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능동적인 질의응답 예시1

능동적인 질의응답 예시2



 오늘도 “이 단어 뜻이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솔직히 그냥 무슨 뜻인지 알려주면 그만이라 귀찮거나 짜증 나지는 않는다. 그저 내가 준 답만 믿으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추론하고 찾아보고 고민해보지 않는 수험생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뿐이다.




수동적인 질의응답 예시



 사주나 점을 보거나 혹은 종교를 믿는 상황과 비교했을 때 맹목적인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들을 초래해왔는지는 수많은 매체와 주변 사례를 통해 경험했을 것이다. 그것들은 필요한 조언으로서, 마음의 위안으로서만 즐겨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최근에 나는 사주와 상관없이 원하는 결정을 내렸다. 운명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린 결정들이 운명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정답을 알고 싶지만 시험지 밖에서 정답이란 스스로 선택해서 묵묵히 걷고 있는 이 길뿐이다. 나머지는 Reference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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