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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트로살롱 Sep 28. 2022

미국에서 이삿짐 트럭 타고 셀프 이사하기

3개국 8번의 이사가 남긴 것, 나의 집에 관한 단상



이사에 대한 기억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다. 지방 도시에서 서울로 이사 가던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엄마는 바로 다음날 서울로 이사를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친구들과 작별할 새도 없이 나는 태어나 살던 곳을 떠나 초등학교 1학년 초에 서울로 올라왔다. 나의 짐들과 집안의 세간살이들이 작은 이삿짐 트럭에 실려 멀어져 갔다. 우리가 어떤 경로로 서울에 있는 집까지 갔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이후로 서울에서 두어 번쯤 더 이사를 했다. 그때의 이사는 새로운 집과 동네에 대한 설렘과 함께, 새 학교와 친구들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감이 늘 나를 쫓아다녔다.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낯선 곳을 좋아하면서도 적응하는 데는 힘들어하는 이중적인 성격은 그때의 기억이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

미국에서 첫 번째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두려움보다는 설렘의 감정이 앞섰다. 지독하게 낯선 환경에 더 이상 적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과 대도시에서 살게 되었다는 기쁨이 컸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이사의 과정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이번 회는 주를 옮겼던 미국 이사에 대한 서술적이지만 감정적인 나의 일기 같은 이야기다.








결혼 후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2년 여를 살았다. 아이가 태어나고 두 달쯤 지났을 때, 남편은 시카고로 이사하자고 했다. 오클라호마는 더 이상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은 아니라고, 큰 도시로 가자고 말이다. 남편의 박사 논문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고 아기는 너무 어렸다. 지금 바로 움직이기에는 우리에게 장애물은 넘치고 넘쳤다. 그런데 지금 가지 않는다면 영영 대도시의 냄새는 못 맡고 살게 될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다. 우리는 몇 날 며칠을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그래, 한번 가보자고. 뭘 해도 여기보다 낫겠지.  

미국에서의 이사는 생각보다 거칠고 힘들었다. 한국에서 이사를 여러 번 경험해본 나로서도 이런 이사는 생전 처음이었다. 남편의 계획은 꽤나 야무졌다. 이삿짐 트럭을 빌려서 이삿짐을 싣고 남편이 직접 운전을 해서 시카고까지 가야 한다. 오클라호마에서 시카고까지 한 번에 가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므로 중간에 한번 쉬었다 가기로 했다. 인디애나폴리스에 남편과 친한 형이 살고 있었다. 일단 그 집까지 가서 며칠 푹 쉬면서 재충전 후 다시 시카고 집으로 들어가는 게 남편의 계획이었다. 오클라호마에서 인디애나까지 10시간, 그곳에서 시카고까지 3시간 반 정도 걸린다. 어차피 어떻게 가도 12시간 이상은 잡아야 하는데 이삿짐 트럭을 몰고 아기와 함께 어디 가서 잠을 잘 수도 없으니 그 방법이 가장 나아 보였다.

한 번도 운전해보지 않은 큰 이삿짐 트럭을 몰고, 그 뒤에 자동차를 붙여서 태어난 지 두 달 반 된 아기를 데리고 미국의 다른 주로 이사한다는 건, 누가 들어도 말도 안 되는 계획이었지만 일단 그냥 해보는 거다. 우리에게 다른 방법은 없었다. 미국은 자기가 직접 이삿짐 트럭을 빌려서 운전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일단 이삿짐 트럭을 한 대 빌렸고 그 뒤에 우리 차를 연결했다. 이삿짐은 다행히 단출했다. 가져갈 수 있는 가구는 침대와 소파뿐. 그 외에 남편의 책과 우리의 옷가지, 생활용품과 아이용품들로 1톤 트럭이 가득 채워졌다.




이삿짐은 트럭에 우리의 이삿짐을 싣고 자동차도 매달았다. 이제 출발 준비 완료.


오클라호마에서 인디애나 폴리스를 지나 시카고까지 가는 여정은 길고 길었다.


트럭 안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보통의 눈높이와 조금 다르다. 주유소에는 트럭들만 주차하고 주유하는 공간이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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