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커버사진으로 올린 사진은 2007년 노무현 정권의 마지막 해에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 민주정부 1,2,3기의 대통령이 한 컷에 잡힌 흔하지 않은 사진이라고 합니다. 고인이 된 두 분은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민주정부 3기를 과연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지금 이 시점에서 보면 참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사진입니다. 오늘 고국에서 들려온 문재인 후보의 대통령 당선 소식을 접하면서, 제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2012년 12월 20일, 18대 대통령 선거가 문재인 후보의 패배로 끝난 다음 날, 참담함과 절망감에 빠져있던 제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근무하던 곳에서 조직원들끼리 같이 점심식사를 했는데, 전 정말 단 한 숟가락도 제대로 뜨질 못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대략 일주일 정도는 거의 식사를 제대로 못할 정도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제 모습이 많이 생각나네요. 물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을 기원하기는 했지만, 아무리 연좌제가 폐지된 근대사회라고 해도 철권통치를 휘두른 독재자의 딸이 어떤 뚜렷한 정치적 성과도 없이 그 유산에만 기대어 보수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는 점은 도저히 납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가 몸담고 있는 정당이 보수의 가치를 대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심각한 회의가 들었고요. 당시에 과거사 문제에 대해 (물론 거의 엎드려 절받기 수준이었지만) 어느 정도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고, 이른바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며 복지정책을 실현하겠다는 그 후보의 말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었던 겁니다. 대선 직전에 터진 국정원의 조직적인 선거개입은 이러한 저의 마음에 기름을 붓는 것이었죠.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나라를 퇴행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그 정당의 후보를 선택한 대선결과에 좀처럼 수긍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다시 5년을 이 정당이 집권한 사회에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라는 생각에 그야말로 앞이 깜깜했습니다. 하지만 아마 제가 박근혜 정부 집권 이후부터는 대부분의 기간을 한국 밖에서 살게 된 탓인지, 얄궂게도 직접 피부로 체감하는 고통의 강도는 이명박 정부 때보다는 아마 좀 덜했던 것 같습니다. 4년 남짓 내내 직접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감내하셨을 분들에게 죄송할 따름이지요. 저는 어쨌든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랐지만, 2012년 12월 19일 이후로 모든 정치 뉴스에 눈과 귀를 닫아버렸습니다.
제가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게 된 것은 지난 2016년 총선을 전후한 때입니다. 그전까진 저 역시 매번 선거에서 지기만 하고, 선거에서 지면 “혁신”을 내세우며 비상대책위원회가 들어서지만 결국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이 서로 네탓만 하며 끊임없이 내부에서 총질을 하는, 민주당의 모습에 정말 질려있었습니다. 결국 한국도 일본처럼 지리멸렬한 야당에, 자민당의 사실상 일당체제가 장기적으로 존속하는, 그런 모습이 일상화될 것이란 암울함을 떨쳐내기 힘들었지요. 당시 제가 의아했던 것 중 하나는 이른바 “친문 패권”이란 말로 문재인 후보를 끊임없이 공격하는 광경이었습니다. “도대체 저 사람이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저러나?”하는 생각은 저로 하여금 민주당의 실상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정치 뉴스에 눈과 귀를 닫고 살았던 제가 조금씩 변화해가는 과정이었죠. 실상을 알고보니 문재인 후보를 공격하는 주요한 근거는 바로 정당 내부의 계파 문제였습니다. 정당 내의 계파 정치인들이 서로의 세력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이를 분점하는 과정을 문재인 후보가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 당 대표로 선출된 이후, 온라인 입당을 통해 전무후무한 숫자의 풀뿌리 당원들을 받아들이고 이들이 당 내부의 의사결정, 당 운영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정치인들이 정당 내부에서 자기들끼리 적당히 결정하는 구조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죠. 공천과정에서도 김종인 씨를 영입한 과정에서 잡음이 일기도 했지만, 어쨌든 새누리당보다는 확실히 빠른 시일 내에 분란을 정리했고요. 또한 각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인사들을 영입하여 공천한 뒤, 국회의원이 된 이들 인사들을 통해 정당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자는 방향성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정치인들은 민주당을 떠나게 되지요.
그리고 2016년 총선의 놀라운 승리, 그리고 그 이후 완전히 새롭게 정비된 민주당의 국회의원들은 국회에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수면 위로 드러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만약 민주당과 야권의 총선 승리, 그리고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열성과 노력이 없었다면 과연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밝혀질 수 있었을까요? 저는 아직도 당시 집권여당이 국정감사를 파탄으로 몰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뻔한 양비론으로 일관했던 언론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대결,” “싸움”만 일삼는 국정감사, “파행”으로 치닫는 국정감사 - 이런 식의 내용이었죠. 애초에 그 파행과 대결을 야기한 쪽이 누구였는지, 왜 그런 파행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심층적인 분석도 없었습니다. 물론 10월에 있었던 JTBC의 특종보도, 그리고 그 이후 분노한 국민들의 촛불시위가 최종적인 탄핵의 동력을 견인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분명 문재인 후보가 당 대표가 된 이후 민주당의 시스템을 정당이란 이름에 걸맞게 적극적 당원 중심의 구조로 재편하고 총선 승리를 통해 집권 정부의 실정을 압박했던 것도 탄핵과 새 대통령 선출을 이끌어낸 중요한 토대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문재인 후보가 앞으로의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정부”라고 호명한 것이 굉장히 중요한 상징성을 지닌다고 봅니다. 정당이 당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보장하고 이들의 활동과 목소리를 정강과 정책에 반영하며, 이것을 집권 내각의 정책을 통해 현실화시켜서 다시 정당 내부로의 정치적 참여를 독려하는, 이러한 선순환 구조의 정치문화가 어느 정도 뿌리내렸고,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죠. 전 이 민주정부 3기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이 나라에 퍼져 있는 절망과 고통을 국민들이 더 이상 감내할 수 있을까요? 변화의 과정은 생각보다 더딜 수 있고, 개혁은 예상보다 느리게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변화라는 것은, 설령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라도 해도, 충분히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합의하는 방식으로 도출되어야 합니다. 빠른 변화만이 살 길이라면, 그것은 아마 권위주의 체제 내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되겠지요.
제가 투표권을 갖게 된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제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개표결과를 보니 그동안 기존의 야권후보가 총선과 대선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제가 사는 지역에서도 승리를 거뒀습니다. 그만큼 정치지도자가 이 나라를 제대로 운영하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의 표현이겠지요. 사실 공화국의 헌법과 기존에 존재하는 법 체계만 제대로 적용한다면 지난 10년 간의 퇴행은 꽤 많이 복구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글을 통해 여러 번 언급했듯이, 저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같이 가야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둘은 상호 보완적 관계이지 어느 하나를 희생하거나 어느 하나를 더 중요시해야 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더 이상 사기업이 유의미한 일자리를 창출해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공부문의 일자리 공급이 없다면, 어떻게 청년들에게 고용을 제공할까요? 또한 공공부문에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왜 세금 부담으로만 볼까요? 공공부문에 고용된 젊은이들이 바로 세금을 내는 주요 재정 기여층이 되고, 그들이 안정적인 수입을 얻게 됨으로써 주요 소비자층이 되어 내수를 촉진시킨다면 그것이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 현실적인 해결책이 아닐까요? 저는 새 정부의 공약과 방향성이 바로 이러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했고, 따라서 집권 이후에도 이러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잘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라 보았습니다.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와 감성이 10년 간의 보수정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므로, 이러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정치적 민주주의의 테두리 안에서 잘 실현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고요.
물론 TV토론 당시에 있었던 동성애 발언은 어느 면으로 봐도 아쉽고 부족한 발언이었고, 충분히 비판받을 만 합니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가 비판을 수용하여 개선된 성명을 내놓았고, 그것만 봐도 집권 이후에 이전 정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0년 간, 저는 이 사회의 고통과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해주지 못하는 대통령의 모습에 너무 질려버렸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 당선이 확실해진 직후, 광화문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났다는 사실은 바로 새 정부의 수반이 이전 대통령들의 “무감”한 모습과는 확실히 다른,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의 학부생 시절은 노무현 정부 때와 겹쳤고 그 이후 20대 후반과 지금까지의 기간은 보수정권과 함께 했습니다. 저의 정치적 지향이 어느 정도 형성된 이후부터는, 끊임없이 공화국의 헌정과 민주주의 원칙을 퇴행시키는 보수정권을 비난하며 살아왔던 것 같네요. 학부생 시절 때, 학교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여성주의 단체와 교지들을 손쉽게 볼 수 있었던 모습과, 그리고 10여 년이 흐른 지금 “페미니즘”을 말하는 순간, 이른바 “꼴페미”라는 모멸적인 비난이 들리고, 사회에 비단 여성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라면 누구에게든지 혐오와 증오가 만연하는 모습을 비교해보면 정말 지난 10년 보수정권 치하에서 얼마나 사회가 퇴행해왔는지를 느끼게 됩니다. 또한 제가 기억하는 학부생 시절이 얼마나 탈권위주의적이고 정치적 개방성이 넘쳐나는 사회였는지 절감하게 되고요. 아마 전 20대에 노무현 정부의 긍정적 유산을 끝자락이나마 경험하고 보수정권을 맞이했다면, 아마 20대부터 바로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통째로 경험해야했던 분들의 고통은 더욱 심했을 겁니다. 그 분들에게는 그런 정치적 자유를 만끽할 만한 경험이 많지 않았겠지요. 지난 10년 동안 그 힘든 시간을 겪어왔던 모든 분들에게 오늘의 대통령 선거 결과는 분명 조금이나마 위로와 희망이 되는 순간일 겁니다. 저로서도 저의 20대와 30대에 암울하게 자리잡았던 보수정권 10년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며, “아, 이렇게 한 시대가 끝나는구나”라는 묘한 해방감과 또한 새로운 민주정부 3기에 대한 희망을 느꼈습니다. 지난 10월부터 민주공화국의 회복을 외치며 촛불을 들었던, 그리고 그 촛불을 응원했던 모든 분들은 오늘 이 즐거움과 환희를 누릴 자격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