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ymour: An Introduction>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매우 독특한 다큐멘터리를 한 편 소개하려고 합니다. 지인 중 피아니스트인 분이 한 분 계시는데, 제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계셔서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한 번 보라며 추천해주었습니다. 종합시험 때문에 너무 바빠서 좀 여유가 생긴 지금에서야 이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는데요. 단순히 한 피아노 연주자의 삶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 지에 실린 리뷰의 한 구절처럼, “인생과 예술에 대한 원대하고 숭고한 송가”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무척 훌륭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알고보니 한국에서는 “피아니스트 세이무어의 뉴욕 소네트”라는 제목으로 소개가 되었네요.
시무어 번스타인Seymour Bernstein은 1927년 태생의 피아니스트인데요, 이 사람의 이력이 독특한 것은 바로 성공적인 전문 연주자로서의 데뷔, 저명한 음악상 수상 등에도 불구하고 1977년 50세 때 전문 연주자로서의 삶을 그만두고 음악 교육자이자 작곡가로만 활동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그는 마지막 연주회에서 그 연주가 자신의 마지막 공연이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밝히지도 않은 채, 전문 연주자로서의 경력을 그만둡니다. 영화는 번스타인 본인에 대한 인터뷰와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가 왜 그러한 결정을 내렸는지를 먼저 살펴봅니다.
그 이유는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번스타인은 1969년 자신의 데뷔 연주회를 회상하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중압감이 너무나 끔찍했다고 털어놓습니다. 그는 연주 다음 날, 혹독한 평을 하기로 유명한 평론가의 리뷰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봤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번스타인의 데뷔 연주는 엄청난 호평을 받았죠. 그는 친구가 자신을 위해 마련해 준 리셉션 자리에서 그 친구를 조용히 따로 불러 내어, “네가 정말 날 사랑한다면 다시는 내가 대중 앞에서 연주하게끔 하지 말아달라”고 진지하게 부탁했다고 말합니다. 번스타인은 전문적인 클래식 공연의 상업성, 그 공연에 수반되는 중압감, 그리고 전문적인 연주를 통해 무언가를 창조해내야 하는 압박 - 이러한 이유들이 자신이 전문 연주자로서의 삶을 그만 둔 이유라고 털어놓습니다. 인터뷰어가 “하지만 당신은 정말 뛰어난 연주자고, 심지어 대단한 호평도 받았다”고 이야기하자, 이 지점에서 번스타인이 내놓는 대답이 매우 놀랍습니다. “그 점이 자신의 ‘공포’를 줄여주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번스타인은 그 공포감이 결국 자신이 피아니스트로서 “부족하다”라는 생각과 이어졌다고 말하면서, 그 생각은 결국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느낌과 연결되었다고 이야기하죠. 또한 그는 이른바 전문 연주자로서 주요한 경력 (major career)을 쌓아가는 자신의 친구들이 실로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합니다.
번스타인은 끊임없이 성공을 강조하는 문화와 전문 연주자로서의 삶이 그다지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을 일찌감치 간파했던 것일까요? 이후 장면부터 영화는 번스타인이 뉴욕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과 본인의 인터뷰를 교차편집하며 보여줍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번스타인은 정말 행복해 보이고 진심으로 그 일에 집중하고 그 일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감독한 미국 배우 에단 호크Ethan Hawke도 아마 이 점에 끌렸던 것 같아요. 그는 번스타인에게 자신이 배우 생활을 하며 느꼈던 개인적이고 본질적인 고민을 털어놓지요. “인생의 후반에서 만약 물질적인 이득이나 특별한 종교적 소명이 아니라면, 도대체 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입니다. 자신은 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살아내고” 싶지만, 이렇게 성공만을 강조하는 문화 속에서 어떻게 그것을 이뤄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거죠. 영화에서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 번스타인도 호크에게 명확한 답을 줄 수 없었겠죠. 확실한 것은 번스타인은 교육자로서의 삶이 자신을 “행복하고, 온전하게” 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점일 겁니다. 아마 그가 이런 통찰을 발견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경험이 큰 역할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클래식 악기를 전공했던 동료 병사들과 함께 전선에서 미군들을 위해 연주회를 열기도 했지요. 태어나서 클래식을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했던 병사들이 자신들의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렸던 경험을 그는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아마 그러한 경험들이 자신에게 엄청난 중압감과 고통만 안겨주는 전문 연주자로서의 삶을 미련없이 포기하도록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요.
영화는 번스타인이 2012년 4월 5일, Steinway hall rotunda에서 소규모 연주회를 갖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물론 전문 연주자로서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는 분들의 노력이 폄하될 이유는 없습니다. 엄청난 중압감을 이겨내고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는 그들의 성취는 분명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고요. 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빛나는 이유는 전문 연주자가 아닌, 보다 정확히는 그 경력을 떠난 사람의 삶을 통해 음악과 삶에 대한 의미있는 성찰을 전해준다는 점일 겁니다. 단순히 음악 뿐 아니라 음악을 비롯한 예술, 그리고 넒게는 인문학의 목적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주고요. 번스타인의 말은 아니고 인터뷰어에게서 나온 언급이지만, 제가 마지막에 인용하는 구절은 제가 예전에도 인문학의 존재가치를 생각하며 느꼈던 점을 잘 정리해주는 듯 했습니다. 소비주의와 성공을 끝없이 주입하는 시대에 인문학과 예술은, 그것이 “돈과 실용”에 직결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 문화에 더욱 중요하다는 것.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더불어 우리의 이웃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잃지 않도록 우리를 이끌어준다는 점 - 바로 인문학과 예술이 결코 우리의 삶에서 사라져서는 안 될 이유일 겁니다.
Out culture deliberately drives people to focus outside so it can control them. Because if you can make people slaves of consumerism, slaves of success, slaves of status, you can manipulate them completely. So the role of music in our culture is crucial, because music is the art most sacredly capable of helping us get in touch with the deepest passions and compassions and deepest understandings of oursel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