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자리

by Untitled

작가의 그럴듯한 작업실을 상상한다. 수많은 책이 책장에, 바닥에, 그리고 창가에 쌓여있다. 한쪽 창에서는 빛이 들어오고, 밖으로는 하늘과 나무, 바람이 보인다. 낡았지만 손 때 묻은 나무 책상과 의자가 그 창을 마주 보고 놓여있다. 책상 위에는 그가 항상 쓰는 차가 담긴 컵, 그가 읽고 있는 책, 그리고 작은 노트북과 종이와 펜이 놓여있다. 살랑이는 바람에 책장이 사락사락 넘어간다. 그렇게 따뜻하고 아늑한 공간에서 작가는 항상 글을 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앉아서 생각하고 읽고 쓴다.


작가의 시간은 작업실에서 흐를 것이다. 내가 작가였던 적은 없지만 내가 글에서 사진에서 보았던 미술 작가, 그리고 문학 작가들의 작업실에는 항상 그들만의 창작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도구들과 영감을 주는 물건들이, 혹은 그들이 좋아하는 물건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자신 안의 것을 함께 버무려 내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것이다. 그것이 조금씩 쌓여가며 작품이 될 것이다. 매일매일 무엇이든 써봐야지라고 생각한 이후로, 그래서 아주 작은 공간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나의 것으로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도서관 창가에 앉아있다. 창 밖을 보는 것이 좋지만, 햇살에 방해받는 누군가에 의해 블라인드는 조금의 틈도 남기지 않고 끝까지 내려진다. 따뜻한 곳이 좋지만 도서관은 늘 싸늘하고, 오늘따라 옆 사람은 키보드를 왜 이렇게 화가 난 듯 두드리는지 알 수 없다. 길게 연결된 책상을 따라 그 진동이 내 손까지 전해진다. 당장 자리를 뜨고 싶지만 어디를 가야 하지.


집에서는 이런저런 잡념과 집안일로 몸과 마음이 무거워져, 조금이라도 무엇이라도 하기 위해서는 어디로든 출근할 곳이 필요했다. 가장 쉽게 떠올린 곳은 당연히 카페다.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서 작업을 한다. 그러나 접근성이 좋은 동네 카페에는 오래 앉아 있기가 미안하고, 프랜차이즈 카페를 가면 마음은 편하지만 생각보다 멀리 나가야 하고 시끄러우며 커피도 맛이 없다. 맛없고 비싼 커피를 마시고 싶지 않기 때문에 가 본 집 근처 스터디 카페는, 사람도 많지 않고, 조용하고, 따뜻했지만 답답했다. 일전에 길을 걷다가는 굉장히 좋은 공간을 발견했는데, 누군가의 작업실처럼 아늑하게 꾸며진 카페였으며 책도 볼 수 있고 구매할 수도 있는 서점이기도 했다.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충분했다, 그러나 역시 시간당 꽤나 비싼 가격을 줘야 했다.


역시 하나의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 푼도 벌지 못하며 집안일과 육아를 담당하는 주부로서 내 공간을 집 이외의 곳에 마련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사실 언제든 쓰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어디서든 쓸 수 있다. 노트북 하나, 혹은 노트 하나와 펜이면 되니까. 옆 사람의 키보든 소리나 시끄러운 카페 소음이 뭐가 문제가 되겠는가. 그러나, 그럼에도 무엇인가에 집중하기 위한 나만의 공간과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다시 어쩔 수 없이 집을 떠올린다. 집의 모든 공간에서도 내가 가장 많이 앉아있는 구석진 식탁 자리가 생각난다. 아이들이 밥을 먹을 때도,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나서 맥주를 한 잔 할 때에도, 잠깐 쉬거나 어디 앉아야 할지 모를 때에도 거기에 앉아 창 밖을 본다. 우리 집 참 빛이 잘 드네, 우리 집 참 전망이 좋네, 우리 집에서 보는 석양이 멋지다, 이런 생각을 했던 그 자리. 어쩌면 거기가 가장 내 자리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어두운 밤, 냉장고 소리가 바로 옆에서 크게 들리는 그 자리에서 참 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또 지고는 했다.


이만 추운 도서관에서 벗어나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한다. 오늘 밤에는 고요히 그 자리에 노트북을 들고 앉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