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꽤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지만 그 모든 시간이 글쓰기를 위한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워지지가 않는다. 낮에는 생각이 멈추어있고, 아이들이 하교하는 2-3시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의 주부 핵심근무시간에는 물론 집안일과 육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엉덩이 붙일 시간이 없이 바쁘게 움직여야 제때 아이들을 재우고 집안일을 마무리할 수 있다. 저녁 식사를 마무리하고 쉴 틈 없이 설거지하고 돌아서서 '숙제는 다 했니? 이제 책 읽고 잘까?'라고 말할 때까지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시간을 계속 확인하며 움직이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딴짓을 하면 갑자기 아이들 취침 시간이 늦어지거나, 아이들을 재우고 덜그럭 설거지를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 되면 아이들 옆에 눕거나 침대 아래 앉아서 종알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사실은 들어줄 때도 있고, 늦었으니 그만 자자며 재빨리 더 말하려는 아이를 막고 자려는 때도 있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정말로 두서가 없이 아무렇게나 튀어나온다. 학교에서 친구랑 했던 게임을 설명하거나, 교실에 정말 재밌는 아이 이야기를 할 때도 있고, 내일 시험이나 자리 바꾸는 것에 대한 걱정을 이야기하다가 장래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떤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물어볼 때는 쉽사리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데, 문득 학교 급식에 대해 이야기하다가도 본인의 고민과 걱정을 털어놓기도 하는 것이다. 하루 중에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많지가 않아서 나도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혹은 긴 시간을 확보해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매일매일의 일정은 생각보다 바쁘고, 하루는 너무 짧고, 아이들의 이야기는 잠자리에서만 활발하다.
종알대는 아이들이 조용해지고 모두가 자는 고요한 밤, 냉장고 옆 식탁의 구석진 자리에 앉는다. 식탁 등만 켜놓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이제는 저녁 시간 내내 미뤄두었던 내 마음속의 고민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어디에 전할 길이 없는 내 마음속의 잡념들이 활개를 치는 시간이다. 그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들고 생각 없이 재밌는 영상을 보다가도 아이들처럼 문득 오래 묵혀두었던 생각이 불쑥 튀어나오거나, 오늘 하루 조금 잊고 싶은 실수들이 생각나서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렇게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결국엔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생각으로 이어지고는 한다. 과거의 나, 비슷했던 경험의 연속, 반복해서 떠오르는 상념들, 어떤 개념에 대한 의문 같은 것들. 그리고 매번 그것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고 글로 남기면 좋겠다며 그 시간을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곤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모두가 일을 하고 있는 낮이 되면 분명 어젯밤 나를 사로잡았던 고민들을 꺼내어 보고 싶은데, 밝은 햇살 아래서는 어쩐지 생각이 잘 흘러가지가 않는다. 낮은 돌이키고 다시 생각하는 반추의 에너지보다는 의지와 이성의 시간으로 주저 없이 앞으로 흘러가려는 에너지로 채워진다. 시계를 보며 몇 시까지 무얼 하고, 오늘은 이런저런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며, 저녁이라는 휴식의 시간을 향해 흘러가는 낮의 시간. 그래도 그 틈틈이 생각이 떠오르는 때가 있다면 아무 생각 없이 걸을 때이다. 하루의 사이사이 목적 없는 걷기 시간이 찾아오면 갑자기 어떤 생각이, 어떤 조짐도 없이 튀어나온다. 가만히 무얼 하려 애쓸 때는 전혀 보이지도 않았던 생각의 실마리가 어렴풋이 보이기도 한다. 그걸 잘 잡아둬야 하는데 메모장을 켜는 순간 왜 이렇게 그 생각이 하찮기만 한지.
메모장에 언젠가부터 쌓인 고민해 볼 것들의 목록이 길어진다. 하지만 생각이 튀어나오는 그 시간에 그 고민들을 붙잡아 문자로 기록하고 정리하기까지의 여정이 길고 길다. 조금 더, 조금 더 낮의 시간을 잘 채워야 한다. 아마 책 읽기와 리서치의 시간들이 더 필요할 것이다. 그러면 비어 있는 밤의 시간이 그것들을 모아서 더 새로운 생각을 덧붙여 내놓아주지 않을까. 그 밤의 시간에 나의 것을, 나의 글을 더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바라며 다시금 밤을 기다리게 되는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