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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깎이 Mar 21. 2017

나의 엄마, 엄마로서의 나

어지러운 대화 속에서 발견한 엄마와 나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내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너무 어지러웠던 대화 속에서 정말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맞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맛있는 밥을 먹고 느긋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맘튜던트로서의 내 불안을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하게 위로를 기대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매몰찬 반응들이었다. "너 왜 그래", "정신 차려", "얘 이상해...."

충격...이었다.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드러난 나는

집안일을 도맡야 해야 하는, 남편과 자식의 식사는 물론 건강과 미래까지 책임져야 하는,

가족들을 서포트하는 역할과 의무만을 의식하고, 그걸 해내지 못하면 죄책감을 느끼는 엄마였다.

전통적인, 희생적인 어머니 상인 것이다. 

사실 나도 최근에 미묘하게 내가 '내가 닮고 싶지 않은 우리 엄마'의 모습이 되어간다고 느끼고 있었다.

자식에게 헌신하고, 스스로에게는 최소한의 시간과 비용만을 쓰는 어머니의 모습.

집 안 곳곳의 일을 내 것으로 여기고, 힘들어하면서도 모든 걸 해내고야 마는 어머니의 모습.

그래서 나 자신은 절대로 닮고 싶지 않았던 그 모습을 어딘가 내가 닮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그러한 삶의 태도가 나에게 학습되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그런 것 같다.

대화를 나누며 아이의 생활 전반을 내가 관장해야 한다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육아는 무조건 엄마와 아빠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역시 그렇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초반에는 남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요구하고, 다투고, 실망했다면

지금은 그런 과정을 겪으며 남편에게 기대를 버린 부분이 많아졌다.

그와 동시에 나 역시 육아를 내 일로서 소유하여 내 영역으로 삼고

거기에서부터 내 자존감, 내 중심을 찾고자 한 것 같다.

가정 밖에서의 내 일은 사라졌으므로 그 대신 육아를 내 일로 삼은 것이다.

그래서 마치 엄마의 모습처럼 남편에게 역할 분담을 요구하는 대신

육아를 자연스럽게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행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희생적인 엄마들의 모습에서 벗어나려는 나의 발버둥도 발견했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너무나 당연히 여겨지는 바람에 어디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을 해왔다. 가사와 육아.

그런 모습을 헌신적이고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리고 우리 세대의 딸들은 그 노동에 의존하면서도 어딘가 그 모습에서 불안과 불만을 느꼈다.

나 역시 엄마와는 다르게 살고 싶다는 바람을 언제부턴가 계속 가져왔고,

그게 오히려 지금 내 안의 모순과 갈등을 만들어냈다.

내 일을 가져야 하지만 그건 육아와 가사노동이 되어선 안된다고...

여기에 매몰되는 건 구시대적인 거라고...

나는 엄마나 아내이기 전에 나라고...

이건 아니라고...

그래서 결국 나는 엄마나 아내로서 가정에서의 역할보다 

사회 안에서 나의 직업을 갖고 나의 역량을 펼치는 것을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모순이 드러나고 갈등이 발생한다.

나는 육아에서 내 중심을 찾으려고 애쓰는 동시에 벗어나기를 원한다.

육아는 내 것이었으면 하면서도 동시에 내 것이 아니었으면 하는 것이다.

밖에서 돈을 버는 남편이 부럽고 동시에 집에만 있는 내가 불만족스럽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육아 대신 사회에 나가 내 자리를 찾고, 거기서 가치를 찾고 싶다.

결국 집에서 가사 노동을 하고 육아를 하는 것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게 된다.


석사를 따기 위해 공부까지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담감 때문에 육아가 더욱 짐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사실 우리 엄마 역시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엄마가 석사라는 건 어릴 적부터 내심 나의 자랑이었지만,

그런 엄마의 능력이 아깝게 저물어갔다는 걸 의식한 건 내가 결혼이란 걸 하기로 마음먹으면서였다.

엄마는 교사로 일을 하며 석사를 땄고, 30년이 넘게 교사로서 일해오셨다. 

아마도 새로운 직업에 도전한다든가 해서 학위를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 제도 속에서 그리고 전통적으로 요구되는 엄마와 아내의 역할 속에서

그 학위는 빛을 보지 못하고 마치 없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나 육아 역시 값진 일이다. 가사노동 역시 값진 일이다. 

'그 노동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다'라는 비교나 평가보다 필요한 것은,

그 노동을 그녀의 선택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그녀를 구조의 희생자로 보지 않는 것이다.

내가, 혹은 주변 사람이 그걸 희생이라는 둥 잘못됐다는 둥 이야기를 하는 것이야 말로

그 노동을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주제넘게 그러한 평가를 내림으로써, 아이러니하게 내 노동도 낮춰보게 되었다.


사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정말 많이 상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친구들이 내 상황이나 여건을 먼저 고려하기보다는

내 행동을 굉장히 잘못된 것, 그러니까 내가 우리 엄마를 평가했듯

구시대적이고 답답하고, '그래서는 안 되는 것'으로 언급하는 것이 정말로 매우 불쾌했다.


물론 내 친구들이 지적한 것 중 내가 육아와 가사 노동을 마치 내 것인 양 하면서도

그걸 전혀 가치 있는 일로 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번 곱씹으며

나의 노동에서 우리 엄마의 노동까지 이어지는 내 생각과 태도, 감정에 대한 실마리를 풀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네 어머니 상을 구시대적인 것, 폐기되어야 할 것으로 상정했던 그 대화 속에서

너무나 괴로웠던 내 감정도 되돌아보며 내가 얼마나 거만했던가도 깨닫게 되었다.

우리네 엄마들의 삶을 그렇게 단순하게 단칼에

'그래서는 안 되는 것'으로 만들어버린 평가는 주제넘은 것이었다.


나의 엄마가 엄마로서의 나의 모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엄마를 닮고, 또 거부함으로써 또 다른 엄마로서의 내 모습을 만들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엄마의 삶을 어떤 하나의 평가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곧 내 일상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긍정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절실히 느꼈다.


오늘의 많은 대화와 생각과 글쓰기를 통해

엄마와 나 사이의 의식하지 못했던 벽이 있었음을, 그 벽이 아마도 조금은 허물어졌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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