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들의 현관문
이웃들의 현관문 앞에 서는 일은 항상 어색하고 떨린다. 이제는 이웃들의 문을 두드릴 일은 잘 없으니까. 두드린다면 오히려 무슨 일이지 싶어 놀라기도 하니까. 오늘은 인테리어 동의서를 받기 위해 이웃들의 집에 예고 없이 방문해야만 했다.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높이 올라오니 계단에서 보는 풍경이 너무나 생소하다. 우리 집에서는 보이지 않던 길 건너편의 건물과 아파트, 도로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꼭대기 층에는 오래 인사하며 지낸 할머니가 사신다. 늘 아파트 경로당으로 출근을 하시고, 할머니들과 의자 카트 같은 것을 밀며 산책하신다. 아이들을 예뻐하시고, 늘 어디 다녀오는 길이냐 물으시며, 종종 경로당에서 받으신 떡을 나눠주시기도 하신다. 왼쪽 집인지 오른쪽 집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벨을 눌러본다. 젊은 여성 분이 나오셨다. 내 이름이 아니라 호수로 나를 소개하고, 여차저차해서 왔다고 설명을 드렸다. 흔쾌히 서명을 해주셨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누가 어디에 살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한층 한층 내려오며 벨을 누르기 시작했다.
여기 사는 8년 동안 거의 내가 사는 층과 1층 만을 오갔기 때문에 다른 집을 볼 일이 없었는데 계단에서 방화문을 열면 보이는 풍경들이 계속 달라지는 게 재밌었다. 벨들도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낸다. 귀청이 찢어지도록 크게 나는 벨도 있고, 버튼이 아예 없어져버린 벨도 있다. 벨을 누르지 말라는 경고가 쓰여 있기도 하고, 너무나 정갈한 글씨체로 '초인종이 고장 났습니다. 문을 두드려주세요.'라고 적힌 집도 있다. 국가 유공자 팻말이 붙은 집이 많다는 걸 처음 알았고, 근처 성당 스티커가 붙어 있는 집도 많다는 것도 알았다. 현관에 택배며 각종 잔 짐들과 우산과 자전거에 아이들의 그림까지 정신없이 많이 놓여있고 붙어있는 집도 있고, 그저 아무것도 없이 깔끔한 집도 있다. 우산이나 놓아둘만한 현관문 옆 좁은 공간에 라벤더 조화 화분이 놓여 있는 집도 있고, 늘 사용하는 것 같아 보이는 카트가 놓인 집도 있다. 어떤 층은 방화문을 열자마자 재활용품이 가득 쌓여 있었는데, 그 바로 위 방화문에는 '소방법 상... 적치 금지... 치워주세요.'가 적힌 종이가 언제부터 붙어있었는지 우글쭈글해져 있다. 그렇게 내려가면서 보는 풍경들이 재밌기도 하고, 다 같이 사는 좁은 아파트 공용 공간을 둘러싼 갈등이 보이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하고.
문을 열고 아주 잠깐 인테리어 설명을 하고 서명을 받는 짧은 순간에도, 80년대 같은 이웃 간의 정은 찾아볼 수 없을지라도, 그래도 모두가 친절했다. 어떤 아주머니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목례를 잠깐 하는 정도인데도 내가 찾아가자 반갑게 인사해 주셨고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었다. 다른 층의 할머니는 인테리어 실패담을 들려주시는 것으로 시작해 한참을 '이 인테리어는 어떻게 왜 하는 것인가'와 관련된 이야기를 물으시더니 마지막엔 이사 가서 잘 지내라며 덕담도 해주셨다. 어떤 분은 고생한다고 말해 주시고, 어떤 분은 예쁘게 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분명히 치매 할머니가 계신 댁은 피하리라 마음먹었는데, 정신없이 내려가는 와중에 벨을 눌러버려서 아차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어떻게 할 새도 없이 할머니가 벌컥 문을 열고 나오셨는데, 그 뒤로는 많이 피곤해 보이는 며느리로 보이는 분이 계셨다. 나는 당황하지 않은 척하며 하던 대로 설명을 했고 할머니는 '으응 이렇게 하면 돼?' 하시면서 정자로 이름을 또박또박 써주셨다.
문을 열고 빼꼼 나와주시는 이웃들이 고맙다. 벨을 누르고 사람들이 나오는 그 장면들이 착착 떠오른다. 가볍게 '네~!' 하는 대답이라든지, '누구세요'라고 묻는 중후한 목소리라든지, 극세사 잠옷을 입고 부스스 나오는 청년과 벨이 눌리자마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문을 여는 귀여운 어린이까지(어른이 집에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절대 그러지 말라고 얘기해 줬을 거다). 영화였다면 꽤 귀여운 장면이었을 것만 같다. 이제 나를 000호로 소개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시간을 잘 여며 나가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