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D-4 집 안
버릴 짐과 가져갈 짐이 뒤엉켜 발 디딜 틈도 없는 빽빽한 집 안 풍경을 본다. 한 달이 넘게 이사를 준비 중인데도 하나도 정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75리터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몇 개나 내다 버렸는지도 모르겠고, 분리 수거 하는 날마다 수레를 덜덜덜 끌고 왔다 갔다 한 것도 몇 주째다. 지금 거실 중앙에는 우리가 늘 쓰던 테이블을 중심으로 해서 좌로는 버려야 할 책들이 가득 쌓여있고, 우로는 이삿짐으로 보낼 생필품들이 가득하다. 해외 이사를 준비하다 보니 조급하게 식료품과 옷가지 등을 다람쥐처럼 이것저것 사모으고 있다. 그러니까 버리는 만큼 계속 집에 물건이 들어온다. 비우고 싶은데 비워지지가 않는다.
오늘도 대체 얼마나 많은 물건을 버렸는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아직도 버릴 것이 나오는지 나 조차도 의아하지만, 생각해 보면 쌓아만 놓고 들여다보지 않는 집안 공간이 그렇게나 많다는 이야기다. 매일 보는 공간인 부엌, 책상, 화장실 선반에서조차 못쓰거나 안 쓰는 물건이 그득인데, 매일 보지도 않은 창고, 베란다 한편의 청소도구함, 붙박이장의 높은 선반에는 거의 몇 년 만에 보는 물건들도 있다. 특히 고쳐야겠다, 꾸며야겠다, 정리해야겠다 생각하면서 샀던 물건들도 말도 안 되게 많다. 내가 사는 공간을 어떻게든 더 낫게 만들어야겠다는 다짐 같은 것을 늘 품고 살았던 증거들이다. 그러나 막상 실제로 썼냐 하면, 아니다. 그냥 그렇게 열심히 검색해서 물건들을 사놓고는 마치 그 물건들이 스스로 뭐라도 해줄 것처럼 그렇게 가만히 두었다.
묵은 물건들은 내 욕심과 내 게으름을 한 번에 보여준다. 어떻게든 나와 내 주변을 나아지게 만들고 싶은 욕심, 그리고 그것을 실행할 힘까지는 못 내는 나태함. 미니멀리즘으로 살고 싶은데, 너무너무 쉽지가 않다. 이제 정말로 짐을 싸야 할 시점이 되자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계속 사고사고 또 산다. 분명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이제 그곳에 정착해야 함을 아는데도 자꾸 물건으로 불안함을 채운다. 이곳의 물건들이 그곳의 안정과 행복을 도울 수 있을까? 너무 많은 조언들이 한국의 물건들과 식료품을 찬양한다. 다다익선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거기에 적응하려면, 여기의 물건은 더 없어야 하는 것 아닐까.
내 물리적인 공간과 정신적인 공간까지 모두 차지한 물건들을 보면서 느끼는 답답함은 단출하게 살고 싶은 꿈으로 이어진다. 이불 한 채, 수저 한 벌, 그릇 한 세트, 최소한의 옷과 신발... 그렇게 아주아주 적게 소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본 적이 있다.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적게 가지면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여유로운 것이 정말 맞을까. 정신 없는 집안 꼴을 보며 나의 모자라고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은 물건이면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내 삶을 더 나은 삶으로 만드는 것은 더 많은 물건과 더 좋은 물건이 아니라, 그걸 위해 한 번 더 일어나는 부지런함과 성실한 움직임이겠지. 이 작은 몸 하나가 이고 지고 있던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는 사실이 오늘따라 너무나 지치고 힘들다. 탈탈 털어내자 가볍게. 가벼운 몸과 정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