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
물건이 모두 빠지고 난 빈 집은 넓다. 공간을 가득 채웠던 모든 것을 비워내니 허전하다. 하지만 그 허전한 깨끗함이 만족스럽다. 가구 아래 잔뜩 쌓인 먼지들과 그 사이사이 잃어버렸던 작은 물건들이 보인다. 싹싹 쓸어버린다. 집에서 살 땐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집에는 정말 많은 수납공간이 있었고, 아직도 이삿짐에 싣지 못하거나 버려야만 하는 물건들이 남아있다. 큰 가구들과 전자 제품은 모두 나간 썰렁한 공간인데도 내가 살았던 흔적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
구석구석 보이지 않았던 때들이 훤히 드러나 보인다. 그 휑하고 지저분한 흔적들이 보기가 싫다. 이렇게 저렇게 청소해 보지만, 쉽게 또 사라지지 않는 흔적들. 분명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 와서 크게 보인다. 늘 간결하고 깨끗한 집을 유지할 수 있을까. 빈 집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다음에는 꼭 간소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소유하며 깨끗이 살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이 공간을 다시 차지할 사람들을 위해서 다시 또 버리고 조금씩 더러움을 지워낸다. 그러고 나니 이제는 이 공간이 어색하다. 벌써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집이 된 것처럼 불편하다. 이제는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때가 또 쌓이고 묻어나겠지. 내가 이곳을 잘 썼는지, 다른 사람이 쓸만한 공간인지 다시 한번 둘러본다. 이제는 집과 작별을 해야 한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올 때도 '다녀왔습니다' 하고 집에 인사하곤 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인사한다. '잘 있어, 덕분에 잘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