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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깎이 Sep 23. 2016

너의 일과, 나의 일과, 우리의 일과

맘튜던트의 하루

아이가 8개월 즈음 맘튜던트 생활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엄마로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몸에 익었다 싶을 때였다. 하루를 쪼개어 학교 공부 시간을 넣어야 했다. 이 쪼개 넣은 시간으로 1학기는 정신력과 체력이 시험당했다.


나의 일과는 다른 모든 엄마들의 일과와 비슷하게 하루종일 빡빡하다. 정신을 차려보면 밤이다. 아이가 깰 때부터 잘 때까지 숨 돌릴 유일한 틈은 등하교를 하는 버스 안에서 일것이다.


아이의 일과는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내 일과는 그 보다 4시간 길어 아침 6시부터 1시까지이다. 엄마의 기상 시간은 곧 아이의 기상시간. 전 날 몇 시에 잤든 상관없이 아이가 6시에 일어나면 6시에 일어나야 하고, 아이의 취침시간은 엄마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평화로운 자유시간의 시작이다.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은 밥 짓기


내 밥, 남편 밥은 안 챙겨도 애를 굶겨서는 안 되기에 비몽사몽 일어나 밥을 한다. 차리는 건 그나마 낫다. 먹이는 일은 사람 진을 쏙 빼놓는다.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일은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입에 넣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식탁에 앉히고, 숟가락을 3개쯤 준비해서 그중 하나를 쥐어준다. 다른 하나는 내 손, 또 다른 하나는 예비용으로 식탁 위에 있을 테지만 어차피 식사가 끝날 때쯤에 숟가락은 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거나 내 손에만 간신히 하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떠 먹인다. 첫 술에 받아먹지 않을 것이다. 억지로 맛을 보게 하면 약 세 숟가락 먹는다. 그리고는 식탁에 있는 온갖 것들에 관심을 가지며 내놓으라고 찡찡댈 것이다. 안 위험한 물건을 찾아 뭐 하나 쥐어주면(예를 들면 비타민 약통이나 어른 숟가락 같은 것) 거기에 집중한 동안 한두 숟가락은 먹는다. 그러나 흥미는 금새 고갈되어 바닥으로 던지기 놀이를 시작한다. 던지면 주워주고, 던지면 주워주고...

먹다 뱉기, 내려달라고 칭얼대기, 손 뻗어 안아달라고 울기, 음식을 손으로 만지고 약간 맛보고 던지기 등 인내심 테스트를 견뎌야 한다. 씻은 김치를 주거나 김, 치즈 등을 같이 주면 먹을까 해서 대령하면 밥은 안 먹고 저것들만 쏙쏙 골라먹기 일쑤.

어느 순간 밥 더 먹이기를 포기하고 애를 화장실로 데려가 씻긴다. 어떤 날은 세수나 손닦기로는 부족하여 목욕을 시켜야 한다. 다시 깨끗한 옷을 갈아입히고 장난감을 쥐어준다.

이 과정은 하루에 3번 반복된다.


설거지로 시작되는 오전 집안일


난장판이 된 부엌을 치우는 것으로 아침 가사 노동이 시작된다. 밀린 설거지부터 음식이 잔뜩 떨어져 있는 바닥까지 한번 훑고 나면 빨래를 한다. 동향인 아파트 덕에 아침마다 쨍한 햇살을 받는데, 빨래를 널거나 갤 때 그 햇빛이 조금은 위안이 된다. 그리고는 청소를 하려고 노력한다. 정말 힘이 남아 있거나, 너무 더러워서 애를 놀릴 수가 없는 지경이 아니면 평일 청소는 대부분은 더러워 보이는 걸 그때 그때 치우는 걸로 대신한다.


아이와 놀아주기


이동성이 엄청나게 발전한 돌 지난 아기는 집안 곳곳을 헤매며 온갖 위험한 것, 더러운 것을 찾는다. 조금만 한눈을 팔면 어디선가 이상한 걸 주워 먹거나, 장난감 등의 모서리에 찍혀 울기 십상이다. 그래서 일단 시야에서 사라지면 찾아 나서야 한다.

이제는 혼자도 잘 놀기 때문에 다치지 않게 봐주는 걸로 충분한 시간들이 많아졌다. 같이 놀아줄 때는 책을 읽어주고, 노래 불러주고, 몸으로 놀아준다. 놀 때 깔깔대는 아이 모습이 또 그렇게 귀엽고 예쁘다. 놀아줄 때는 다치는 것을 빼고는 나도 즐거운 시간이다.


먹이는 것과 함께 육아를 힘들게 하는 대표 과제

재우기


눕히면 자는 그런 천사 아기는 어디 있다고는 하는데 본 적이 없다. 아이가 눈이나 코를 비비거나, 찡찡댐이 잦아지거나 몸을 제대로 통제를 못해서 넘어지거나 어디 찧어 울거나 하는게 졸린 신호다.

일단 자자~하고 방으로 유인한다. 그러면 처음엔 대부분 혼자 눕는다. 이 때다 싶어 자장가를 부르면 도망간다. 도망가는 애를 잡아서 다시 눕히고 쭉쭉을 해준다. 몸을 비틀며 일어나서 또 도망갈테지만 다시 데려와 눕힌다. 결국 울게 되는데, 그 때 약해지지 말고 다시 데려와 자장가를 부르며 토닥여준다. 계속 울테지만 굴하지 않고 자야할 시간임을 알려준다. 때로는 울며 젖을 찾지만 주지 않는다. 돌 지난 이후에는 젖을 점점 안 찾도록 도와주고 싶다. 

다시 눕히고, 울고, 타이르고, 안아주고, 노래불러주고  이웃에게 민폐가 될까 걱정할 즈음 아마 스스르 혼자 잠이 든다. 때로는 울지 않고 이 과정을 할 때가 있는데 그 날이 더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이것이 낮잠 1이다. 아기는 하루에 3번 잔다. 고로 밥먹이는 것과 똑같이 재우기도 하루 3번 반복이다.


아이의 낮잠 시간=나의 휴식 시간


방 밖으로 나가면 할 일이 여전히 산더미이므로 일단 인터넷의 세계로 도피한다. 육아용품을 사거나, 육아 정보를 검색하거나 웹툰을 보고, 인스타를 뒤적인다. 그러다가 나도 짧은 잠을 청한다. 낮잠이 정말 꿀같다.


씻고 점심 준비


꿀잠에서 깨어나 아침 잠에서 깬지 4-5시간 만에야 후다닥 샤워를 하고 점심을 준비해서 먹인다. 먹이기의 긴 과정이 되풀이 된다. 


드디어 학교에 간다


친정 엄마와 바통터치를 하고 학교로 간다. 종종 할머니와 함께 유모차에 탄 채로 밖에 나와 열심히 손을 흔드는 아이와 긴 인사를 나눈다. 나를 향해 열심히 흔드는 손이 사랑스럽다. 처음 학교에 갈 때에는 아이와 떨어져있는 그 시간이 불안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아이도 엄마가 하루에 몇시간 씩 어딘가를 간다는걸 알게 되어 인사를 나눌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나 역시 학교에 가는 시간이 즐겁다. 물론 친정 엄마에게 지는 마음의 빚은 차곡차곡 쌓이고 있지만...

학교에 도착해서는 방금까지 아기 밥 먹이느라 고생한 엄마라는 걸 싹 잊고 강의실에 들어간다. 아직은 깊이 친해지지 못한 동기들에게 인사를 하고 앉는다. 강의를 듣는 건 정보를 얻는 일이지만, 나에게는 그보다는 내 부족함을 끊임없이 알아가는 시간이다. 해야 할 공부와 읽어야 할 책들이 넘쳐난다. 의욕이 샘솟는다.

이 시간 친정 엄마는 아이 간식을 먹이고, 낮잠 2를 재우고, 놀이터에 데려가 놀릴 것이다. 


아이와의 재회


그 수많은 지식들을 허겁지겁 공책에 넣어놓고서 아이에게 달려간다. 고작 4시간 만에 보는데도 너무 반갑다. 할머니랑 재밌게 놀았어? 묻고 꼬옥 안아준다. 가끔은 자기를 꼭 안아주는 내 등을 토닥토닥해주는데 마음이 사르르 녹고 만다. 저녁 먹기 전 잠깐의 놀이 시간을 갖는다.


저녁 밥 해서 먹이기


저녁은 특별히 든든하게 챙기지 않으면 잠자다 배고파서 깰 우려가 있기 때문에 공들여서 고기반찬을 하고 열심히 먹여본다. 역시 잘 안 먹는다. 말했듯 하루 3번 겪는 일이다. 


씻기기


겨우 배를 채워주고는 목욕을 시킨다. 아기는 목욕 다 좋아한다고 누군가 그랬던 것 같은데, 아니다. 서고, 걷게 된 이후로 욕조에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는 샤워기로 샤워만을 겨우 시키는 지경이다. 도망가고, 샴푸 캡 안 써서 눈에 물들어가면 울고, 목욕 인형 던지고 주워달라기를 반복한다.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모든 걸 끝마쳐야 한다. 

밖에 나와 물기를 닦고 옷을 입힌다. 이 과정도 길다. 계속 도망가므로.


하루의 마무리는 재우기로


낮잠 1의 과정과 같다. 다만 집 안은 깜깜하게 불을 다 꺼둔다. 자야할 시간임을 알려주는 거라고 해서 신생아 때부터 이렇게 해왔다. 그러나 깜깜하든 말든 더 놀고 싶은 아이는 집 안을 쏘다닌다. 

9시에 재우면 기쁘다. 제발 오늘은 깨지 말고 아침까지 자주길 기대하면서 방에서 나온다. 물론 아이 옆에 쓰러져 자고 싶은 날이 더 많다. 1학기 동안은 너무 힘들어서 아이를 재우다가 내가 먼저 잠드는 일이 잦았고, 자다가 1시쯤 깜짝 놀라 깨어나 다시 책상에 앉는 날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어둠 속에 감기는 눈을 부릅뜨고 아이가 깊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방에서 나온다. 잠드는 순간 내일 할 일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자면 안된다. 


저녁 집안일


저녁을 먹이고 설거지를 할 짬은 없었기 때문에 부엌이 난장판이다. 그렇지만 지금 달그닥 거리면 애가 깰 수 있으므로 일단 식탁만 치우고 그릇은 물에만 담가 둔다. 내일 아침 집안일이 되는 것. 

거실이 난장판이다. 대략 장난감이라도 치워서 깨끗해 보이는 상태로 만들고 빨래를 한다. 아침에 해 놓은 빨래가 말라서 개든지, 아니면 빨래를 돌리든지, 아까 돌려 놓은 빨래를 널든지 해야 한다.

힘들다. 정말 자고 싶다. 그러나 나는 할 일이 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일단 좀 딴짓을 한다. SNS, 뉴스, 브런치 등을 살펴본다. 자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머리에서 맴돈다. 낮에 수업 들을 때 그 의욕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억지로 꾸역꾸역 뭐라도 읽어본다. 집중력이 오래가질 않는다. 학교를 다니며 체력이 더 떨어진 것 같다. 먹는 것도 부실, 잠도 부실, 운동도 안하니 몸이 나아질 리가 없다. 매일 아이 재우고 최소 3시간 공부하자는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선 운동이 먼저 아닐까. 고민하지만 평생 운동을 하지 않은 내 몸은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는다.

과제가 있는 날은 무조건 밤을 샌다. 그 시간이 유일하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안 할 수는 없으니까 밤새서라도 과제를 한다. 몸도 힘든데 머리까지 쓰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다보면 다시 아침이 온다.



일과에서 남편은 빠져있는데, 아침에는 출근하니까 배웅해주는 것으로 끝이 난다. 가끔 마음이 동하는 날에는 아침을 차려주긴 하지만 드문 일이다. 

저녁에는 남편이 애 재우기 전에 퇴근하면 저녁밥을 같이 해 먹어야 하는 일이 추가된다. 엄마들은 주로 아이 먹을 때 대충 무언갈 주워 먹으므로 별로 밥 차리고 할 일이 없으나 남편이 오면 같이 밥해먹어야 할 것만 같다. 가족의 식사자리가 만들어지면 소소하게 기쁘다. 아이까지 세식구가 함께 앉아 있는 작은 식탁이 좋다. 또 이렇게 일찍 오는 날엔 남편이 아이도 보고 집안일도 하므로 내가 좀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애 재우는 동안 집에 오면 아이가 아빠 왔다고 신나므로 취침시간이 늦어지기 때문에 힘들고, 애 재우고 오면 같이 집안일하고 각자, 혹은 함께 자유시간을 누린다.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의미없이 야근하거나 쓸데없는 회식을 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함께 저녁 한 끼라도 먹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하루가 너무 긴데 짧다. 눈뜨고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잘 시간이다. 사람들은 그래도 아이 웃음에 피곤이 싹 사라지지 않냐고 한다. 물론 아이 웃음은 그 순간 고통을 잊게 해주는 마약과 같은 것임이 확실하다. 절로 웃음이 나는 미소, 깔깔대는 천진한 웃음 소리는 아마 모든 부모의 보물일 것이다. 그런데 하루는 24시간... 그 웃음으로 버티기에는 너무 길다.


육아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건 누군가 해주는 밥을 먹고, 누군가 청소와 빨래를 해주고, 누구의 방해도 없이 하고픈걸 하고, 맘껏 잘 수 있는 단 하루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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