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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깎이 Sep 13. 2016

나는 왜 불안한가

반쪽짜리 맘, 반쪽짜리 학생

많지 않은 금액이라도 매달 내가 버는 돈이 꼬박꼬박 통장에 들어오는 것이

굉장한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는 것을 대학원생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매달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회사에 나를 묶어두는 족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게 얼마간의 돈을 내 마음대로 쓸 자유와 당당함을 주었다. 

이 때는 나도 하나의 경제적인 주체로 인정받았고,

가사 노동도 남편과 거의 반반을 나눠했었다. 

안정적이었다.


맘튜던트가 되어 내가 버는 돈을 포기한 만큼 남편은 그마만큼의 짐을 더 지게 되었고,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 지출에 민감해졌고, 돈을 벌지 못한다는 생각에 위축되었다.

내가 가계 경제에 부담이 되었다는 생각이 내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 같았다.

살림을 살아야 하는데 아기까지 있으니 지출이 더 많아진 것은 당연한데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남편이 벌어오는 돈 뿐이라니, 

부부 사이에 네 돈, 내 돈이 어딨냐지만 괜한 자격지심 때문인지 돈 쓰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알뜰살뜰 산다고 육아용품 하나를 사는 데에도 여기저기 비교하고,

종일 중고나라를 기웃기웃 거리고, 이걸 사도 되는지 수없이 고민하고,

돈을 쓰는 것 자체가 피곤하고 힘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육아와 동시에 가사 노동도 대부분 나의 것이 되었다.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돈을 벌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직업을 잃은(자발적인 실업이긴 하지만) 상태 자체가 너무나 불안하고 초조하고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실은 가사노동과 함께 엄마로서 육아를 맡고 있다.

다만 학생으로서의 역할을 또 하고 있을 뿐이다.

회사를 다닐 때처럼 노동의 대가를 물질로 받지 않고 있다 뿐이지 실은 나도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노동은 학생이라는 또 다른 신분 때문에 평가가 절하된다. 

아마도 전업주부만큼 시간과 노력을 쏟지 않을 것이므로, 그리고 그 대가를 물질로서 받을 수 없으므로.

또한 스스로도 학생으로서의 신분 때문에 엄마이자 주부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기 때문에, 나의 노동을 그만큼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꺼려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엄마도 학생도 아닌 이 어중간한 신분은 나를 불안하게 한다. 


남편의 카드를 가지고서 장을 본다는 것이 나는 행복하지가 않다. 

부모님에게서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누군가에게 내 삶을 의지하게 되었다는 것이 답답하다.

완벽한 맘도 아니고 학생도 아니기 때문에 나는 불안하다.

두 개 중 어느 하나도 완벽히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완벽히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반쪽짜리 엄마, 반쪽짜리 학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불안하다.


하지만 이 불안은 아마 내가 맘튜던트라는 위치를 벗어나게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때에 나는 워킹맘일 것이므로.

한국에서 아이를 낳은 여성은 자의로든 타의로든 직업 + 육아의 역할을 가져가야 할 것이므로...


이런 맘튜던트를 위로해 주는 것은

남편도, 친정엄마도, 성공한 맘튜던트도, 심지어 사랑스러운 내 아이도 아닌

어린이집 입소 대기 신청 시에 대학원생도 맞벌이로 인정된다는 것, 

그래서 아이가 1순위 대기자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어느 정도 대학원생도 직업으로 인정된다는 느낌,

이것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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