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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팍 Sep 29. 2016

플라밍고의 추억

#공동아이디어제작소 #월요일세시프로젝트 #월세납부


작년 말, 십수년간 다니던 광고대행사를 때려치고

가장 먼저 해야했던 건 일에 (당연한 줄 알고) 미뤄두고 있던 딸과의

진정한 회복이었다.


7살 되도록 주중엔 시어머니 댁에 딸 아이를 있게 했고,

(나와 남편 그 어느 누구도 제 시간에 끝나는 사람이 없었다)

주말 부모 밖에 되질 못했다.


나는 딸과 둘이서 뉴질랜드를 떠났다.

그간 쉼없이 달려오기만 했던 내 삶에 대한 쉼표이기도 했고,

딸과 오롯이 24시간을 집중할 수 있는

화해의 시간이 되어줄 거라 생각했다.


뉴질랜드는 직장인, 자영업자 할 것 없이

근무시간이 무척이나 짧은 곳이다.

즉 저녁이 되면 일찍 문 닫는 가게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 비한다면 가게 자체도 그렇게 많지가 않다.

(뉴질랜드 인구는 다 합쳐 400만이다.

땅은 남한의 4배인데 인구 수는 우리나라의 1/10도 안된다)


고로, 온통 초록인 초원/산/바다/공원으로 둘러싸인

이 머나먼 섬나라에서의 한 달은

복닥거리며 번잡스러울 일 없이

어쩌면 굉장히 단조롭고 심심하게 지내게 될 거란 얘기.


나와 딸은 소일거리를 들고 갔다.

독서를 좋아하는 나는 책을,

그림을 좋아하는 딸은 드로잉북과 색연필과 연필을

필수품으로 챙겨갔다.


사실, 플라밍고 얘기를 하려 한건데.

플라밍고는 정확히 말하면 뉴질랜드를 근거지로 하여 살고 있지 않다.

뉴질랜드에서 볼 수 있는 곳은 실제로  몇몇 동물원 정도랄까.


하지만 뉴질랜드 사람들은 플라밍고를 좋아하는지

그 마젠타 컬러와 깃털형태의 패턴,

그리고 플라밍고 대형 인형들을 거리에 많이 세워두고 판다.


내가 거리를 딸과 지나가면서 무심코 던진 한 마디.



"플라밍고 참 예쁘지? 색깔도 곱고 곡선도 참 예쁜 것 같아."



그로부터 딸은 거의 날마다

컬러는 제각각이지만

플라밍고 비슷한 새들을 엄청 그리기 시작했다.


엄마와 블루 플라밍고  


플라밍고의 나라



비오는 날의 플라밍고



내가 스케치북을 들여다보며,

"왜 새들만 이렇게 많이 그렸어?"라고 했더니

딸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우리 엄마가 플라밍고를 좋아하니까."



딸은 그간 너무 고팠던 엄마를

한껏 차지할 수 있는 뉴질랜드가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플라밍고가 참 좋다는 엄마의 그 한 마디에

엄마를 위한 플라밍고들을

날마다 그려 선물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동안 내가 쏟아부은 사랑보다

왠지 딸에게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복받쳐 올라왔다.


'이제, 내가 줄게 그 사랑.

그 동안 못 줬던 사랑,

내 딸에게 마음껏 줄게!'


그래서일까 뉴질랜드에 돌아와서도

플라밍고에 대한 나의 애정은 남달라졌다.


핑크빛 따뜻한 빛감,

그리고 모든 것을 포용할 것 같은

완벽하리만치 유려한 곡선-

그리고 이름마저 이리도 우아할 수가 있는가.

FLAMINGO


나는 이제 내 딸을 위해 그리고 있다.


그리는 동안 딸에 대한 사랑을 그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는 오브제.


그 소중한 기억을, 그 마음을 잊지 않도록

앞으로도 끊임없이 그려나가는 걸로.


Copyrightⓒ. 2016. Nina Park.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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