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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ar Jul 15. 2023

좋아하는 마음이 방향을 잃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 것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것은 큰 행운이다. 어떤 걸 좋아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고, 일을 시작하는 처음부터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본의 유명 기업가 이나모리 가즈오는 이 확률이 1만 명 중의 한 명이 될까 말까 하는 아주 적은 확률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행운을 비교적 어린 나이에 가질 수 있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던 시기 TV 프로그램에 나온 디자이너를 보고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학교 미술시간에 그리는 그림이 재미있었고 실력도 제법 나쁘지 않았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았다는 믿음과 확신이 생겼다. 

고등학교 3학년 본격적인 입시 생활 시험을 위한 훈련이 시작되었다. 실기시험은 문제를 푸는 정답지를 그림으로 그리는 거라 어느 정도 정해진 공식과 색상, 기술이 있었는데 매일 시험을 준비하면서 같은 것을 반복하다 보니 쉽게 지쳤다. 시험이 끝나는 날, 대학교에 가서 내가 듣고 싶은 수업을 듣는 모습, 졸업 후 멋진 커리어우먼이 된 모습을 상상속 이미지를 계속 머리에 되새기며 겨우 겨우 버텼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해서 사회생활을 하는 지금까지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돼서 행복하다는 느낌이 점점 옅어졌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최소한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해야 하는 거 아닌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좋아하는 만큼 쉽게 상처받는 건 알고 있지만 어디서부터 색이 바래진 걸까. 


애니메이션 <블루 피리어드>에는 야구치 야토라 고등학생이 나온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하니까 같은 의무감으로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친구들과 놀며 요즘의 인싸처럼 살고 있다. 남보기에 모자랄 것 없는 생활. 하지만 야토라는 왠지 모를 공허함을 느끼고 있다. 

그렇게 일상을 보내던 중 우연히 학교 미술실에서 같은 학교 선배가 커다란 캔버스에 그린 천사 그림을 보고 마음을 빼앗긴다. 이후에도 천사 그림이 계속 생각났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이 그림 그리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야토라는 도쿄 예술 대학교 진학을 목표로 삼는다. 그림을 전혀 모르던 야토라가 그림의 구도, 표현 방법을 배우고 공허함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 그려진다. 천재적인 실력으로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를 부러워하는 마음, 시험 당일 갑자기 몸이 아파 그림을 망칠뻔한 위기 등등 수험생의 희로애락이 잘 녹여있어 금방 몰입할 수 있었다. 그런 야토라의 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았을 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요즘의 모습을 겹쳐놓고 무엇이 변했는지 생각해 봤다. 


알콩 달콩한 신혼 부부의 모습을 보며 결혼 한 지 오래된 부부는 신혼이라 그래 우리도 저때는 다 그랬어 말한다. 사람이기 때문에 처음 설렘 그 느낌이 시간이 흘러도 계속 될 수 없다는 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다만 시간에 의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의 마음이 변했을때 다시 떠올리게 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좋아하는 일을 찾고 직업으로 갖게 되었지만 머리속에서 상상하던 핑크빛 미래와 현실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보통 미래를 생각할 때 좋은 일만 생각하지 어떤 시련이 닥칠지 상상하지는 않으니까.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에 숨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좋아하는 마음. 당장 어떤 행동을 해서 내 마음을 예전처럼 되돌릴 순 없겠지만 <블루 피리어드>를 통해 희미했던 감정이 다시 차올랐다. 


<블루 피리어드>는 파블로 피카소의 청색시대(1901~1904)에서 이름을 따왔다. 친한 친구가 자살을 하자 충격을 받은 피카소는 검푸른 색이나 짙은 청록색을 주조색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팔아 돈을 벌어야 하는데 주머니엔 돈이 없었고 친한 친구는 죽었다. 심리적으로 우울한 피카소는 이 시기에 거리에 있는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주로 그렸다. 

청색시대 그림 (좌) 자화상 (우) 비극

첫사랑 페르낭드 올리비에를 만나고 암울한 분위기의 화풍은 끝이 난다. 피카소가 힘든 시기를 겪고 난 뒤 자신의 화풍을 정립한 것 처럼 애니메이션 <블루 피리어드>의 야토라도 회차를 거듭할수록 그림 실력과 함께 생각이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블루 피리어드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시간이다. 어떻게 보내는지가 중요하다. 지친 내 마음을 잘 보살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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