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반란

오감만족 우리동네 미술관

by 정아

부산 금정구 서동에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여러 갈래의 길들이 유난히 얽혀있는 <서동미로시장>이 있다. '미로'는 어지럽게 갈래가 져서, 한번 들어가면 다시 빠져나오기 어려운 길이란 뜻이 있는데, 실제 <서동미로시장>이라는 공간 속 돌고도는 작은 골목 그리고 더 작은 골목들과 마주치면 그 명명이 틀리지 않았음을 몸소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돌고 도는 미로 속 어딘가에 <시장>이라는 이름과는 조금 동떨어진듯한 느낌의 공간이 위치하고 있다. <서동예술창작공간>이라 이름 붙인 이 곳은 지역주민과 예술가와 함께 소통하는 문화예술창작 공간을 지향하며 과거 문화 소외지역이었던 이 지역에 일상과 문화가 접목된 예술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리고 2020년 유난히 비가 많은 여름, <서동예술창작공간>에는 오감을 동원해 관람자를 미로 속에 가둬두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동 작은미술관 - 오감만족 우리동네 미술관

공간의 반란 2020.8.10 - 9.5.




전시장 입구 짧은 계단을 차곡차곡 올라 검게 드리워진 커튼을 열어젖히면 시각은 검은 커튼 속 공간을 지배하는 어둠 속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후각적 심상이 침투하며 깊은숨을 들이쉬게 한다. 어둠의 아키타입적 의미를 상쇄시킬만한 차분하고 은은한 향기에 긴장한 마음이 풀어지며 전시는 시작된다.

첫 번째 마주하는 공간 속에는 우리의 일상 속 물건들이 작품의 오브제로 자리 잡고 있다. 황경호 작가의 작품들은 이처럼 공간 속 일상의 물건들이 지닌 가치와 의미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는 이야기를 다양한 감각을 동원해 이야기하고 있다.


공간 속 사물들은 그 고유한 기능과 파동을 가지고 있다. 이로한 것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간이 정해놓은 가치적 기한을 가지며 생성 쇠퇴하게 된다. 이것들은 파괴되고 해체, 재조합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의미가 되고 같은 공간 속 상호작용하며 또 다른 파동을 가지게 된다.

- Press release, 공간의 반란-



<가족의 식탁, 2020, 140*80*100>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꾸만 무엇인가를 부르는듯한 느낌이 든다. 중첩된 높지 않은 파장이 일정한 간격으로 청각을 통해 전해지고, 오브제 속 느리게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빛은 무엇인가를 불러들이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이자 신호인 것 같다. 무엇을 부르는 것일까?라는 물음을 마음에 품고 작품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KakaoTalk_20200820_095549122_02.jpg <황경호, 가족의 식탁, 2020, 140*80*100cm>

한때 유행했을법한 빈티지한 엔틱 테이블은 왠지 모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거기에 더해 작품이 품고 있는 빛이 깜빡일 때마다 머릿속에는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보았던 환영과도 같은 온기에 감싸인 가족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실제로 <가족의 식탁>에서 사용된 오브제는 작가가 독립을 하며 샀던 값비싼 엔틱 테이블이다. 이곳에서 지금은 행방불명이 되어버린 큰형을 포함한 3형제의 마지막 식사를 가졌다. 작품은 언뜻 보기에 단순히 '만날 수 없는 가족'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는 재생과 재조합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품을 구성하는 모든 것은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을 향해 되돌아가고 있다. 그 촉매제가 될 소리와 빛은 가족의 기억이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부름을 반복할 것이다.



전시의 첫 공간과 다음 공간의 길목을 이어주는 작품은 이 시대의 누구나가 한 번쯤은 오매불망 기다렸을 '무엇'이다. 그것은 바로 '택배'. 따뜻한 노란빛을 품은 자동으로 열렸다 닫히는 택배 상자를 아이들이 신기한 듯 바라본다. 그 뒤에 붙어 그 모습을 함께 관찰하며 한 가지 물음이 생긴다. 왜 하고 많은 택배 상자 중에 해외에서 도착한 것일까? 스스로 생각한 답은 그것이 가진 '견고함'이라는 성질 때문이 아닐까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작품의 설명에 두 입술을 있는 힘껏 앙 다물 정도의 그리움과 쓸쓸함이 느껴진다. 그 쓸쓸함을 간직한 채 뒤돌아서 다음을 향해 걸어가다 문득, 휙 하고 뒤를 돌아본다. 그러자 택배 상자 속에서 솟아 나와 얼기설기 공간을 채우고 있던 마치 마른 잎과 줄기 같은 그것들이 내 심장 가까이 한 점을 향해 아주 빠르게 모여든다. 그 점은 기다리던 택배를 마침내 두 손에 받아 들었을 때의 기쁨으로 번져가고 또 누군가의 심장으로 다가가고 있다.

작가의 마지막 작품을 향해가며 <방독면, 2020>을 바라본다. 천천히 깜박이는 진동과 불빛은 앞서 느꼈던 '부름'의 정서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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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호,택배왔어요,2020,500*3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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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호, 방독면,2020,300*300cm>


<피아노, 2020,500*500cm>에서는 파편이 되어 조각조각 해체되는 피아노와 마주하게 된다. 이 특별한 피아노에는 작가의 기억과 관객의 참여가 만나 공간을 새롭게 재창조할 울림이 숨어있다. 망가진 피아노가 보여주는 빛의 호흡과 울림이 만날 때, 우리는 각자의 기억 속에 있던 피아노를 꺼내 공간과 소통하게 될 것이다.


다음 공간으로 이어지는 복도에 여덟 살 남자아이가 서있다. 무서워서 혼자는 그 속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최정은 작가의 전시공간은 그 시작부터 아주 강렬한 붉은빛으로 물들어있다. 차가운 붉은빛 속에 온 몸을 적시며 다음 공간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선다.


신체 내부 안에서 수없이 일어나는 싸움과 움직임들은 그 실체를 확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이는 종교라는 이름 아래에 다양한 욕망으로 나타내어진다. 이번 작업에 사용된 인등과 연등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불안함을 나타내는 동시에, 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장치로써 사용된다.

- Press release, 공간의 반란-


들어서는 순간 스산하고 차가운 냉기가 흐르고 뜨겁게 달아오른 욕망의 덩어리가 공존하는 모순적인 공간을 만나게 된다. 현실에서는 차가움과 뜨거움이 서로 만나면 중화되어 적당한 온도를 남겨야 하지만 작가의 작품 속에서는 시리도록 차가운 냉기와 화기에 가까운 뜨거운 기운이 동시에 느껴진다.


본래 예술이라는 것은 정확한 계산에 의한 논리와 이성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최정은 작가의 <소원, 2020>의 공간 초입에는 에어컨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것이 만들어내는 차가움과 작품이 품어내는 뜨거움이 만나 빠져나올 수 없는 감각의 기억을 세기고 있다. 우연이라면 정말 절묘한 것이고 계산적인 설치라면 완벽한 계산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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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은, 소원,2020>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이 공존하는 이 공간 속, 시선을 사로잡는 걷는 단연 방석이다. 방석을 바라보면 별다른 설명이 없이도 '욕망'이란 단어가 쉽게 떠오른다. 이 것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체에 대한 감각을 느낄 수도 있다. 다양한 소재가 중첩되어 구성된 오브제는 길고 혹은 짧으며 많은 돌기를 가지기도 하고 얇은 막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것들은 꾸미지 않은 아주 날것의 모양으로 한대 똘똘 뭉쳐 다시는 풀어질 것 같지 않은 응어리가 되어있다. 흔히 욕망의 덩어리라는 표현을 쓰는데, 최정은 작가의 방석은 더 깊고 어둡고 복잡한 욕망의 응어리 같았다. 이 공간 속에 좀 더 오래 머물다 보면 소원성취의 염원을 담은 뜨겁고 강렬한 행위와 감정들이 사실은 지독하게 차갑고 이기적인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부처가 몸소 실천하고 설했던 이타의 마음은 온대 간데없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안락밖에는 모르는 이기적인 중생들로 가득한 공간. 이 모습을 지켜보는 부처의 마음속에 드리웠을 서늘함이 에어컨 바람을 타고 다시 한번 마음속을 가로지른다. 다음 공간으로 이동하기 위해 방석에서 시선을 돌려 정면을 바라보자 수많은 인등 사이로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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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은, 포장된살결, 2020>

어두운 통로를 지나 [커튼을 젖히고 들어오세요]라는 지시어를 따라 마지막 공간으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이고 하늘에는 연등이 빼곡히 드리워져있는 작품을 마주한다. 참고로 이야기하자면 이 공간에는 비밀이 숨어있다. 공간에 들어서면 필수적으로 자기 자신과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서방의 거울을 통해 다방면의 자기 자신을 볼 수밖에 없다. 웬만한 나르시시즘이 아니고서야 스스로가 숨김없이 비치는 것을 한동안 바라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선을 돌려 하늘을 향하면 저마다의 소원이 담긴 연등을 바라보게 된다. 불교에서 연꽃은 현생과 극락을 연결하는 매개체이다. 더러운 물속에서도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연을 통해 중생은 극락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끊임없는 실천과 수행으로 피울 수 있는 연꽃을 지금은 돈으로 피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광경을 조용히 그리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KakaoTalk_20200820_103741123_01.jpg <김지은, 향기 있는 공간, 2020>

이렇게 전시의 끝 공간에서 에서 처음으로 되돌아 나오면 첫 공간에서 경험했던 후각적 기억의 정체를 알게 된다. 참여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김지은 작가의 향기 있는 공간은 시각적인 미술작품과 그 의미를 담은 향을 함께 콜라보하여 사람들의 기억 속에 공감각적 심상으로 자리 잡게 한다. 실제로 후각은 가장 원초적 감각이며 감정과 기억력에 관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향기와 함께 지나온 공간을 다시 되돌아보면 기억은 더 깊고 강하게 뇌리에 각인된다. 전시장을 빠져나와 미로 같은 시장을 거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로소 한 가지를 알게 될 것이다. 오감을 통해 스스로를 각인시킨 '공간의 반란'과 아직도 그 미로 속 한 공간에 머물고 있는 내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참고 및 인용 : 공간의 반란 Press release, 서동창작공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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