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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Jun 20. 2021

도비니의 정원에서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

Daubigny's Garden | Vincent van Gogh | 1890 | Oil on canvas | 56 cm × 101 cm




"도비니의 뜰 전면에는 녹색과 빨간빛이 도는 풀이 나 있다. 그림의 왼쪽에는 초록빛 숲과 라일락이 있고 그루터기에서 돋은 잎이 하얀빛을 띠고 있다. 또 한복판에는 장미 화단이 있고 오른쪽의 울타리와 벽이 있는데, 그 벽 위에는 보랏빛 잎의 개암나무가 서 있다. 그리고 라일락 울타리와 함께 노란빛의 둥그스름한 보리수나무가 줄을 지어 서 있다. 안쪽 막다른 집 풍경은 진홍빛이며 지붕의 기와는 푸른색을 띠고 있다. 기다란 책상 하나에 의자가 세 개 있으며, 노란 모자를 쓴 검은 빛깔의 사람 그림자와 함께 전면에는 검은 고양이가 있다. 하늘은 엷은 쪽빛이다. "


이 편지 구절은 만인이 사랑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인 테오에게 도비니의 정원에서 발견한 다양한 색조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다. 정원의 주인인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1817-1878)'는 빈센트가 평생 존경하고 사랑했던 화가였다. 사실 빈센트가 우아즈 강가의 작은 마을인 오베르에 정착하게 된 것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도비니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인상파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도비니는 1860년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정착하며 작지만 평화롭고 안락한 이 곳으로 수많은 화가들을 모이게 했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물론 빈센트가 마지막 생을 보냈던 시절의 오베르에는 도비니 대신 12년째 검은 상복을 입고 있는 그의 부인과 여전히 생기 넘치는 그의 정원만이 존재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빈센트는 도비니를 생각하며 그의 정원에서 3점의 그림을 완성했다. 도비니의 무엇이 빈센트로 하여금 그토록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게 만들었을까 궁금해지는 지점이 생긴다.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


도비니와 연관된 단어 중 높은 빈도수로 오르내리는 것이 '바르비종'이란 단어이다. 바르비종은 파리 교외에 위치한 작은 도시였다. 어느 날부턴가  그곳에  화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고 그중에는 우리에게 아주 친근한 밀레, 루소, 코로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아뜰리에를 벗어나 자연으로 나가 캔버스를 펼쳤다. 온몸으로 태양 빛의 미묘한 변화와 그날그날의 온도와 습도 바람까지 온몸으로 교감하며 야외에서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후에 사람들은 그들을 바르비종 파라 부르기 시작했고, 그중에는 도비니도 포함되어있었다.


Dinner in boat,   Charles-Francois Daubigny

The Studio on the Boat, 1861,  Charles-Francois Daubigny


도비니는 1850년대 초반  화가로서 확실한 성공을 거두고 움직이는 아뜰리에를 마련했다. 1857년 마련한 이 아뜰리에의 이름은 'Botin(Little Box)'으로  다름 아닌 물에  띄우는 배였다.  도비니는 배를 화실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하여,  센 강과 우아즈 강을 따라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보틴에서 그림을 그릴 때의 상황이 담긴 도비니의 스케치들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지점들이 참으로 많다. 'The dinner in boat'  속 두 사람은 정신없이 음식을 먹어치우고 있고 한쪽에는 주전자에서 뜨거운 김을 내뿜고 있다.  이곳이 화가의 아뜰리에라고 미리 말하지 않으면 흡사 낚싯배의 낚시꾼들의 식사시간 같이 느껴진다. 'The studio on the boat' 속 화가는 집중하여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데 자꾸만 벽에 걸린 생선들과 다양한 살림살이들에 시선이 간다. 두 장의 스케치만 보아도 이곳은 도비니의 생활공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먹고, 자고, 그림을 그리고 가끔은  친구를 초대하기도 했다. 그 친구 중에는 모네도 있었을 것이다. 훗날 마네가 그린 보트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네는 도비니의 영향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도비니와 모네는 함께 여행을 하기도 하며 각별한 교류를 이어갔다.


The botin, 1855, Charles-Francois Daubigny


이렇게 보틴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탄생한 그의 풍경화들은 물가에서의 작업이 주를 이루었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과  하늘 그리고 그것들이 반사된 물의 모습을 빛의 흐름 속에서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인상 깊게 담아냈다. 도비니는 이렇게 자연주의에서 인상주의로 넘어가는 가교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Morning | Charles-Francois Daubigny | 1858 | oil, canvas | 30 x 48 cm
Summer Morning on the Oise | Charles-Francois Daubigny | 1869 | oil, canvas
Ducklings in a River Landscape | Charles-Francois Daubigny | 1874 | oil, canvas



사이프러스 나무들은 푸른색을 배경으로
아니 푸른색 속에서 봐야만 한다.
다른 어디서나 마찬가지지만
이곳의 자연을 그리기 위해서는
그 속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
- 빈센트 반 고흐-


도비니의 정원 | 김정아 | 2019 | Digital painting


빈센트의 말처럼 자연을 사랑했고  자연 속에서  충분히 느끼고 교감하며 작업했던 그에게 도비니의 작품과 생애는 충분히 영감을 주는 대상이었음이 분명하다. 도비니가 이어주는 서로 다른 세계는 그의 그림 안에서 안정되고 평화롭게 공존하며 도비니만의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냈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세계를 본 이들이 더 확고하고 기존과는 달라진 새로운 그림들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마 지금도 그 누군가는 도비니의 정원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그리기 위해 쉬지 않고 붓을 움직이고 있지 않을까? 필자 역시 마음속 도비니의 정원 안에서 나만의 세상을 온 힘을 다해 그려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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