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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May 20. 2021

엄마의 냉장고, 작은 미술관

세상을 살다 보면 뭔가 대단히 기억할만한 일이 아님에도 잊히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엄마의 냉장고에 관한 이 기억도 그런 종류의 기억중 하나이다. 필자가 10대가 되기 전 그리고 10대 초반까지 우리 집 냉장고에는 항상 달력이나 혹은 잡지에서 오려낸 그림들이 붙어있었다. 주로 르네상스나 바로크의 거장들이 그린 명화들이 그곳에 자리를 잡고, 인쇄물에서도 숨길 수 없는 아우라를  발산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곳은 흡사 엄마의 작은 미술관 같은 장소였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그림 보기를 좋아했던 필자도 늘 그 작은 미술관의 컬렉션들을 관찰하고 감상했던 기억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어느 날 냉장고에 아이 손바닥만 한 새로운 그림 하나가 붙여졌다. 한 소녀가 저 멀리 어딘가 손짓하는 듯한 포즈를 취한 초상화였는데, 그 그림을 보고 어린 나는 엄마에게 어떤 말인가를 건네었던 것 같다. 그것에 대한 답으로 엄마는 이런 의미가 담긴 이야기를 했다.


"이 그림은 네 동생을 닮았어, 왜냐하면..."


세월이 흘러 이성적이고 차가운 도시의 과학자를 꿈꾸던 소녀는 엄마의 냉장고 갤러리 때문이었는지 생물학을 전공한 그림쟁이가 되었다. 수많은 그림과 씨름을 하던 중 우연히 동생을 닮았다던 그 그림과 반가운 재회를 했고 약간은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되었다.


<헤어 도련님> 조슈아 레이놀즈, 1788, 캔버스에 유채, 77X63 cm


윤기 나는 긴 곱슬머리에 붉은 뺨과 입술. 허리에 띠를 두른 예쁘장한 드레스를 입은 이 귀여운 아이가 소녀가 아닌 소년이라는 사실과 마주한 것이다.  사실을 듣고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친 질문은 왜 남자아이에게 이런 스타일과 복식을 하게 했는지였다. 그리고 곧 이 소녀가 소년이란 사실을 과연 엄마는 알았을까라는 생각이 따라붙었다.


먼저 첫 번째로 떠올랐던 질문에 대해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것이 당시 영국의 풍습이었던 것이다. 이 그림을 그린 조슈아 레이놀즈 경은 그림이 그려진 1788년 당시 영국에서 당대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고 있었다. 특히 초상화에서 탁월했던 그는 장엄하고 무게가 있으면서도 우아한 새로운 스타일의 초상화를 영국 미술계에 확립하게 된다. 그때 마침 숙모인 안나 마리아 존스 부인의 양아들인 '프랜시스 조지 헤어'의 초상화를 그려주게 되었는데 그 그림이 바로 <헤어 도련님>이란 명작이 되었다. 당시 2살이 되었던 프랜시스도 풍습에 따라 얇은 면직물로 만들어진 원피스에 허리띠를 두르고 아주 예쁘장하게 포즈를 취하며 초상화 속에 영원히 남아있게 된 것이다. 


프랜시스는 아마 7살이 넘어가면서 긴 머리를 자르고 바지를 입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서서히 찾아가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남자아이에게 여장을 했던 풍습은 당시 유럽 전역에서 유행하던 풍습이었다. 성역할이 극도로 양극화되었던 시기에 행해졌던 이해할 수 없는 이 풍습에는 두 가지 납득 가능한 설이 있다.  첫 번째는 영아 사망률이 높던 당시 과학과 의학 대신 마귀나 사신의 존재로 생과사의 갈림길이 결정된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의 옷을 입으면 죽음을 피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지퍼나 스냅 단추 등이 발명되지 않은 당시 유아기의 소년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입을 수 있는 바지를 스스로 입고 벗는 것이 어려웠고, 기저귀 착용이나 배변훈련 시 바지보다는 치마가 훨씬 편했기 때문이란 실용성의 측면에서의 이유이다. 실제로 당대의 왕가나 귀족 가문 남자아이의 초상화 속에는 여장을 하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실용성의 이유는 분명히 설득력이 있지만 단지 실용적인 이유에서였다면 초상화 속에서까지 드레스를 입고 있을 이유는 없으니, 두 가지 이유 모두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싶다. 


a portrait Charles II of England as a baby with a puppy on his lap, holding a teething coral, 17th
Prince Philip Prospero of Spain, Diego Velazquez, 1659
The Young Louis XV, Pierre Gobert, 1714


 이렇게 드레스를 입은 남자아이를 보며 떠올렸던 첫 번째 질문은 어렵지 않게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두 번째 질문은? 당사자인 엄마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져 보았다. 


"엄마가 나 어릴 적에 냉장고에 붙여놓고는 OO 닮았다고 한 그림 기억나? 근데 그 그림, 여자아이가 아니고 남자래."


나이가 든 내 어머니는 그 그림을 떠올리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고, 이미지와 기억과 질문이 연결된 순간 작은 감탄사와 함께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얼마 전 냉장고 옆 선반에 아주 오랜만에 새로운 그림이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어린 시절의 엄마는 유독 호기심이 많던 필자에게 그림을 보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을 것이다. 엄마와 만들었던 수많은 일화 중 가까스로 기억하고 있는 '냉장고 작은 미술관'의 기억은 사소한 기억이 아니었으며, 사돈의 8촌까지 예술과 관련된 직업이 전무한 가족들 사이에서 예술의 길을 걷게 된 나에겐 운명의 한 장면이었다는 재평가가 이뤄진다. 왠지 어머니 앞에서 전문지식을 뽐내며 잘난 척했던 순간이 떠올라 부끄러워지려고 한다. 오늘은 달력을 오리고 잡지를 오리던 엄마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예술에 대한 무겁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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