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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Jan 07. 2022

202

저기 아니고 여기 in JEJU

30대 후반이 된 나는 먹는 양이 급격히 줄었다. 보기 좋고 그럴듯하게 포장된 프리랜서란 단어 속에는, 1년 중 몇 달은 휴일도 없이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붙여 일하는 것을 선택한 사람이라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당연히 그 기간 동안 운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기초체력이 떨어지고 힘을 쓰는 근육은 모두 소실되었다. 그나마 중력을 거슬러 서있을 수 있는 근육이 남아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실제로 나는 미친 듯이 일하는 그 기간 동안 몇 걸음 걷는 것도 힘에 부쳐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했었다. 덕분에 미약한 심신이 더욱 미약해지면서 입맛도 덩달아 사라졌다. 입맛이라는 것이 이렇게 쉽게 사라지는 것이었던가. 20대 넘쳐나는 식욕을 원망했던 나는 참 건강했던 사람이었구나를 회상해본다.


지난밤 저녁을 굶은 터라 조식을 부셔주겠다며 호기롭게 식당으로 입장했지만, 고작 볶음밥 반공기와 제육볶음 그리고 국 한 그릇에 배가 부르다. 머릿속에 자꾸 이상한 생각이 맴돈다. '곡기를 끊으면 죽는 것이야'라는 어디서 들었는지 모를 문장이 자꾸 내 머리 꼭대기에서 나를 누른다. 나는 다시 일어나 야채죽과 설탕을 넣은 코르타도를 제조해서 다시 한번 먹는 행위를 반복한다. 뭔가 비장했던 아침식사가 끝나고, 곧장 이 새로운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본다. 도중에 오늘의 여정과 아침식사 동료들의 정체를 알아냈다. 경산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이었구나. 어쩐지 빵 굽는 기계 앞에 서서 빵을 몇 개씩 입에 욱여넣는 걸 보고 보통은 아니구나 했었다.



오늘은 마치 감정처럼 통제할 수 없는 나의 생각들을 잠재우기 위해 걷기로 했다. 대신 돌아오는 길엔 202번 버스를 타야지.




<걸으며 떠오른 짧은 생각들>



자꾸 다음 일정을 떠올리는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기 아니고 여기'


계단을 내려가며 생각한다.

나는 빨리 내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느려도 한 발 한 발 정확히 딛는 게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취향의 섬이란 곳에서 책을 한 권 산 후.

헤세를 가방에 넣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문장은 나의 정신을 홀딱 빼앗아 갔다.

우리는 닮은 것 같은데 어째서 나는 그가 되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닮았다는 생각 자체가 나의 착각인지 모른다.


나의 작은 마음이 자꾸 큰 세상과 부딪혀 싸운다.


높게 자란 야자나무가 바람에 흩날리는 소리를 듣고 나무에도 소리가 있다는 걸 알았다. 알았다기보다 인식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다.


제주 김만복 김밥을 먹다가

문득 외로움이 밀려온다. 나는 스스로 고독을 자처해서 여기까지 와놓고서, 가장 고독할 수 있는 순간에 와서는 그것을 폄하하는 감정을 느낀다. 내 외로움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일까?


30대 후반이 되니 인생이 짧다는 것을 실감한다.


문득 중성화란 단어를 생각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죄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아주 고도화된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거세라는 단어가 주는 소멸과 잔인함을 잠재우기에 가히 바람직한 단어가 아닐까.


어느 날은 니체의 좋은 엄마라고 생각이 들다가도 또 어느 날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존재인 것 같이 느껴진다. 세상에 자식을 거세하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사랑하는 존재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부모가 아니다. 나는 결국 니체의 엄마는 될 수 없겠지.



오늘의 걸음 +22852

달라진 점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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