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떠서 곧 어제 그린 그림을 펼쳐본다. 그림 속 나무는 마치 나의 마음 같았다. 어느 때는 아주 충만했다가 또 어느 때는 너무나 공허하다. 충만과 공허, 그 사이의 적당한 어디쯤이었으면 참 좋으련만, 늘 양극단을 질주하는 나의 정신은 참 고달프다는 생각이 든다.
식당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가 북적이더니 식당은 더욱 북적인다. 그러나 식사의 마지막으로 커피 한잔을 할 때 즈음해서는 이곳이 언제 스크램블드 에그를 어서 내놓으라고 말하는 유소년 축구단으로 가득했었는지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조용하다. 자동 커피머신에 '연한 아메리카노'를 선택했지만 다시 한번 뜨거운 물과 찬물을 번갈아 채운 컵 끝까지 차오른 검은 물을 찰랑이며 입구 근처에 앉아 고개를 숙여 커피 향을 맡는다.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리며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잡으며 본능적으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고양이가 필요해"
어제는 이만보가 넘는 걸음 속에서 단 하나의 고양이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나는 지금 심각한 고양이 금단증상을 앓고 있는 것 같다. 고양이 니체씨가 나의 세상에 들어온 후, 단 하루도 고양이 없는 세상에 살지 않았는데. 임시처방으로 묵고 있는 호텔에 살고 있는 고양이를 만날 수 있을까 하여 주차장을 찾아갔다. 반가운 나머지 조금 호들갑을 떨었더니 약간 멈칫하더니만 이내 내 주변을 빙빙 돌며 몇 번이고 친한 척을 한다. 하지만 곧 방향을 바꾸어 지하주차장 구경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고양이와 헤어지고 일부러 호텔 주변을 빙 둘러 돌아오며 아이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미상이라고 불러야겠다. 미상은 존재하지만 알지 못하는 것이다. 미상이는 그리고 모든 고양이들은 사실 그런 존재들이 아닐까 해서 말이다.
방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문득 오늘의 계획이 떠오른다.
'어제의 경로를 정리하면 어떨까'
동시에
'그럼 오늘의 오늘은 사라지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를 정리하는 오늘은 과연 오늘로서의 새로운 의미를 갖는 것일까? 시도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곧 641 버스에 올라있었다. 계획은 수정되었고 나는 오름을 올랐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걷는다. 이렇게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가운데 마음에 켜켜이 쌓였던 먼지들이 조금씩 비워지고 마음의 속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오래 쌓아둔 먼지들은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 낱낱의 조각들은 털어내도, 그 색은 마음에 스며들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내 마음속에도 질서 없이 쌓였던 다양한 먼지의 색이 남겨졌다.
색은 나름의 성격이 있다. 어떤 색은 다른 어떠한 색과도 조화롭게 어울려 새롭고 신선한 세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또 다른 색은 좀처럼 다른 색과는 석이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다른 모든 색을 잡아먹는다. 나의 마음에 남은 색은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나는 블랙홀과도 같은 그 먼지의 흔적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인생이 어디 노력만으로 되나. 마음이 어디 노력만으로 움직이는 것인가. 나의 문제는 늘 너무 애쓴다는 점이다. 내일은 조금 덜 애쓰며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