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그림 그리기
"제가 그림은 배운 적이 없어서요, 혹시 기초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요?"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온 10명 중 8명은 이런 의미를 담은 질문들을 한다. 모두 초중고 혹은 대학까지 졸업했고, 분명 미술시간이 있었을 테지만 자신들이 배운 것이 미술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은 이런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50대 이상 분들 중에는 "내가 그림이 너무 배우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어서..."라고 말하는 분들도 종종 계신다. 그러면 나는 방긋 웃으며 "모르고 못하니까 배워야죠!" 하고 말하며 우리의 그림 수업은 시작된다.
3년 가까이 화실에서 소수의 인원으로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제 사람을 보면 약간의 예감 같은 것이 생기지만, 그래도 더 확실히 개인의 성향을 알기 위해 첫 시간에는 함께 TMI를 늘어놓는다. 그것을 위해 내가 처음으로 준비하는 그림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그림이다. 그림을 화면에 띄우고 잔잔한 음악을 배경에 깔고 그림을 가리키며 묻는다.
"천-천-히 살펴보고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 혹은 기억도 좋으니, 준비가 되면 편안히 말씀해 주세요"
그러면 하나같이 "제가 그림은 잘 모르지만..."으로 시작하는 감상을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내가 첫 시간 첫 그림으로 특별히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선택한 이유는 그의 그림이 조금은 특별한 힘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Woman at a Window>, 1822 뿐만 아니라 그의 그림에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이 사람의 속마음을 건들기 때문이다. 낯선 장소와 등장인물의 뒷모습을 본 감상자들은 은연중에 관찰자에서 그림 속으로 이동하여 어느새 주인공이 된다. 특히 얼굴 없는 저 사람이 어떤 상태이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상상해 보라는 질문에는 자신도 모르게 현재 본인의 심리상태가 반영된다.
나의 경험을 빌리자면 아주 힘겨운 작업을 진행하고 있을 때나, 번아웃이 와서 세상과 단절하고 있을 때 저 여인은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외부로 향하는 듯한 몸의 방향과 창은 그냥 속임수다. 세상에서 도망가고 싶은 나의 심리가 무한대로 반영된 감상이지 않은가. 그러나 다행히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본 여인은 창밖 어딘가를 바라보거나, 또는 밖을 통해 무엇인가 관찰하는 소통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대답처럼 저기 멀리 미래를 바라보며, 표현하고 싶은 모든 것을 자유롭게 표현할 날을 고대하며 드디어 본 수업이 시작된다.
처음 몇 개월은 그리기만을 위한 시각을 함께 키우고, 쉬지 않고 손 기술을 연마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그리고 싶은 대상을 비슷하게 그릴 수 있게 되며 재미를 느끼고, 그때부턴 수업이 조금은 수다스러워진다. 배운자의 여유랄까? 처음에는 정말 땀을 뻘뻘 흘리며 복사하듯 그려내기 위해 말 한마디 아끼며 열심히 그림만 그리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턴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진솔한 대화가 오가고 서로의 신뢰가 쌓이기 시작한 어느 날은 자신의 가장 아픈 구석을 털어놓는다. 모든 수강생이 한 명 한 명 특별하지만 그래도 '이런 것까지 이야기한다고?'라고 흠칫 놀라는 순간들도 있다. 그러나 나를 믿고 어렵사리 힘든 일을 입으로 꺼낸 상대를 위해 최대한 같이 공감하고 위로를 전하며 수업은 계속 진행된다. 가끔은 내가 그림 선생님이 아닌 심리 상담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목적 지향적인 나는 처음엔 이런 부분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딜 가나 그 수업의 목적만 달성하면 되는 나로서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스킬만은 가르치면 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방향을 바꾸어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대입해 생각해 보니 이건 '나' 때문에 생긴 일이기보단 그림이 주는 '치유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필 끝에 모든 감각을 집중하고 사각사각 소리와 함께 조용히 형태를 만들어간다. 물과 물감의 양을 조절하여 종이 위에 올려 섞이고 퍼지는 은은한 색을 바라본다. 온전히 집중하고 관찰하고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는 이 과정들이 복잡한 감정에서 잠시 벗어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틈을 주고, 그 속에서 기억과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로움 내지는 용기를 주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누구나 걱정과 근심 고난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잠시의 틈,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그 틈을 '그림 그리기'가 만들어주고 나는 그것도 '치유'의 한 가지 방식이라고 결론지었다.
올해도 나는 미술강사의 탈은 쓴 최선을 다하는 심리 청취자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예술이 가져다주는 치유의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앞으로의 날들을 꿈꾸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