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을 읽는 중입니다.

나의 수많은 피스토리우스의 의미

by 정아
'피스토리우스는 그가 나에게 준 것을 그 자신에게는 줄 수 없었으며 내 눈에 비쳤던 그의 모습도 그의 실체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는 길잡이인 자신도 넘어서지 못하고 떠나야 했던 길로 나를 인도했던 것이다.'

- 데미안, 야곱의 싸움 중 -






2016, Vienna


내가 살면서 스승이라 생각했던 거의 대부분은 모두 피스토리우스와 같은 종류였다. 한동안 강렬하게 나의 모든 정신을 빼앗아 깨달음을 준 것같이 느껴지도록 했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서서히 그전까지 보지 못했던 허점과 약점들이 새어 나와 나를 당황시켰다. 그것은 단순히 한 명의 사람이 될 수도, 특정 사상이나 지식 혹은 사람에 따라서 종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피스토리우스'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 거쳐가는 스승일 뿐 마지막까지 품어야 하는 스승은 아니다. 그것이 적어도 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그 실체를 의심하게 하고 내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가는 것을 방해한다면 나는 그 '피스토리우스'와 맞서야만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매우 두려웠다. 그것이 두려운 이유는 결코 '피스토리우스'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피스토리우스와 함께 만들었던 나의 경험과 기억들, 곧 나의 세상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강렬한 믿음으로부터의 해방이 가져올 방황과 혼란에 대한 공포감이었고, 어리석은 내 모습에 대한 가여움이었다. 나는 때때로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 안의 정의로운 의심과 싸웠고 내 양심의 소리를 잠재웠다.


인용된 구절을 다시 천천히 읽으며 떠오른 영화가 하나 있었다. 사실 이 영화는 내 세상이 흔들릴 때마다 떠올리는 영화이다. '아뉴스 데이(Agnus Dei, 2016)'라는 영화인데, 특히 수녀 한 명과 주인공인 여의사가 나누는 대화는 내 평생을 따라다닐 것 같다.



'믿음을 잃는 자는 없나요?


'믿음이라는 게 말이죠,

처음엔 아버지 손을 잡은 어린아이처럼

안정을 느끼죠.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틀림없이 오는 순간이 있어요.


아버지 손을 놓치는 순간이.


우린 길을 잃은 거예요.

혼자 어둠 속에서

소리쳐 울어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죠.

아무리 대비를 해도 느닷없이 당하죠.

가슴을 정통으로 맞는 거죠.


그게 우리의 십자가예요.

우리가 살면서 지고 갈 십자가인 거죠.'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나요?




나는 늘 의사의 저 마지막 말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그것을 후회한 적은 없는지. 선택과 후회가 가져온 결과가 견딜만한 것인지 가치 있는 것인지 묻는 것을 쉬지 않는다. 그래서 괴로울 때가 많다. 그러나 멈출 수 없고 멈춰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한 가지 가치와 믿음에 안주해 그곳에서 편안하고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젠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은 가끔 과거의 나와 나의 피스토리우스가 만들었던 세상을 생각하며 웃기도 한다. 세상이 무너진 게 아니라 단지 내가 좀 더 높아졌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데미안이 성장하고 변모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무엇이라면, 피스토리우스는 데미안에서 성장과 변모의 가능성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가차 없이 피스토리우스를 버리고 다음 피스토리우스를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 나는 다시 한번 묻는다.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나요?



P1060095.JPG 2017, Gran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