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헤세
'한스는 보잘것없는 자신의 존재와 인생이 커다란 선율에 어우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느끼게 된 어느 밤, 한스 기벤라트는
'시체가 되어 검푸른 강물을 따라 골짜기 아래로 조용히 떠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한스 기벤라트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그가 죽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한스가 죽은 밤을 <그가 스스로 '나'이기를 포기한 밤>이었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내가 '나'이기를 포기했던 무수한 밤들에 대해 떠올렸다. 가장 처음 떠오른 '포기한 밤'에 대한 기억은 매니큐어에 관한 것이었다.
졸업 후 첫 직장을 가졌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녀가 적당히 비율을 이룬 20명 내외의 직원이 있는 크지 않은 회사였다. 여자 직원들은 매일 점심을 싸와 사무실 한편에서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우리는 늘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너무나 충격적인 한 문장을 듣게 되었다. 그 문장을 다듬어 보자면 이렇다.
'여름의 발에 매니큐어를 칠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예의 없는 행동이다.'
나는 이제껏 스무 살이 넘도록 그런 생각을 가져본 적이 단 한 순 간도 없었다. 그러나 더 놀란 것은 다들 어느 정도 동의하거나 무척 동의하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있어서는 안 될 공간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들키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료들과의 마음의 거리도 훅-하고 멀어졌다. 나는 그 해 여름 열심히 발에 매니큐어를 발랐다.
그 직장을 옮기고도 20대의 내 머릿속엔 늘 매니큐어에 대한 생각이 따라다녔다. 여름이 되어 예쁘게 칠해진 다른 사람들의 발을 보곤, 늘 잊고 있었던 나의 발을 생각하며 늦은 매니큐어 칠을 했다. 그러나 그 모양이 썩 아름답다고 느끼진 않았다. 단지 누군가 나를 예의 없는 사람으로 보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30대를 넘기면서는 나와 맞지 않는 생각이란 걸 확실히 알았다. 그래서 지금은 '예의 없지 않기 위해서'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는다. 단지 기분전환 용으로 가끔 찾을 뿐이다.
사회와 집단의 선율 속에 어우러지는 느낌이란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시체가 된 한스가 자꾸 벌떡 벌떡 일어나 무덤을 헤치고 나오려고 했다. 나는 한스다. 한스는 곧 나다. 나는 늘 시체가 사실은 살아있음을 알고 있었다.
요즘 나의 한스는 하늘을 나르고 있다. 그런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한스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는 건 오로지 나뿐이다. 그러나 나의 세상에서 추락은 나의 상상력을 동원해 다시 한스를 살려낼 것이다. 다른 세상속에서 추락했을 때의 방황과 절망을 지금 이 곳에선 느끼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선다. 나는 다시는 한스를 무덤 속의 시체로 돌려보내지 않을 작정이다. 내가 함께 그 속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