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커의 길

결국엔 나의 길을 가는 것

by 정아

나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나답게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나 다움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알아가고 있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나의 재능 없음을 한탄하고 또 확신했다. 그러나 그러한 확신에도 불구하고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과 갈망이 멈추지 않아 나는 이제 그 길에 접어들었다. 이 길에 접어든, 그러니까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기로 결정한 후, 나는 내 안의 나를 더욱더 자세하게 관찰하고 있다.


2016, 부다페스트


그 관찰에서 가장 처음 발견한 것은 내가 지독한 멜랑콜리커란 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돌려 나의 과거로부터 그 단서를 찾아보았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그러니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춘기 이후부터 가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끌어내림의 기분'을 경험하곤 했다. 어쩌면 호르몬의 변화가 일어난 후부터였다고 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보다 훨씬 어릴 때부터 나에게 주어진 고통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끊임없이 생각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나는 축농증과 중이염으로 오랫동안 고생했는데, 그 질병의 원인과 진행에 대해서 끊임없이 상상하곤 했다. 상상의 원천은 의사 선생님이 보여주신 엑스레이 사진과 백과사전에서 본 해부도 같은 것들이었다. 어린 시절 백과사전을 보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었는데 그것이 이런 나의 고통을 사유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이 글을 쓰면서 처음 발견한 사실이다.


어쨌든 쉽게 잊어도 되는 고통과 슬픔의 순간들을 시도 때도 없이 끄집어내어 스스로를 멜랑콜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나를 나 아닌 그 누구에도 말하지 않았고 쉽게 들키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그 누구도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6, 부다페스트


다시, 앞에서 이야기했던 끌어내림의 기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나는 인생에서 한 번 바닥까지의 끌어내림을 경험했다. 사실 제대로 말하자면 그때는 바닥이 없었던 때였다. 제발 여기가 바닥이길 바랬는데, 그 바닥은 자꾸만 자꾸만 내려가는 바닥이었다. 매일매일 여기가 바닥의 끝이기를 바랐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지만, 어떻게 끝이 났다. 그런데 이 '바닥의 경험'이 시작되기 얼마 전부터 나는 아주 자주 '끌어내림의 기분'을 느끼곤 했다. 이것은 사려 깊지 않았으며 분별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뭔가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어둠의 세계로의 길이 열리고 있었다.


데미안에서는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직장에 다니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을 빛의 세계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 자신도 그렇게 빛의 세계에 머물고 싶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젠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여기서 운명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옳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운명은 나를 그렇게 두지 않았다. 나는 결국 '나의 길'을 가야 하는 사람이었다. 데미안의 마지막 타이틀 ' 종말의 시작'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넘치는 만족과 쾌적함 속에서 숨 쉬도록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고통과 쫓김이 필요했다. 언젠가 이 아름다운 사랑의 영상 안에서 깨어나 오로지 고독과 싸움뿐인, 평화나 공존이란 없는 타인들의 차가운 세계 속에서 홀로, 온전히 홀로, 다시 서게 되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데미안, 종말의 시작

정확했다.

내가 바닥에서 올라와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정확하게 이렇게 느꼈다.


그림을 그리며 가끔 글을 쓰며 나는 싱클레어가 말했듯이 '고통과 쫓김', '오로지 고독과의 싸움'에 자주 빠져든다. 처음 그림을 그릴 때는 마치 태교를 하듯 좋은 감정만을 고집하며 스스로를 옭아매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멜랑꼴리의 대기에 둘러싸인 내가 간주간적으로 긍정적이라고 여겨지는 감정들만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또 심각한 고민에 빠질 뻔했다. 그런데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완성된 내 그림들이 어둡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아주아주 따뜻하고 밝았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고 미소를 띠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그림을 그릴 것을 허락했다. 그러나 여전히 일치하지 않는 나 자신과 내 그림은 나의 연구대상이다.


이제 나는 그토록 회피했던 어둠의 세계로 들어섰다. 결혼, 내 집 장만, 안정된 직장은 꿈꿀 수 없고, 오로지 가난과 고독만이 기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내 길을 가야겠다. 멜랑꼴리 한 모습 그대로. 그리고, 끝까지 가야겠다.


2016, 부다페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