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비바람속의 브리스톨
한나라의 여러 곳을 여행할 때 지도를 따라 동선을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생긴 영국지도를 보니 런던은 부산 정도, 웨일즈는 전라남도쯤이니 런던 다음, 그 다음은 중부지방에 위치한 블랙풀, 리버풀, 마지막으로 거의 북한 함경도 지방쯤의 에든버러로 동선을 짰다. (여행이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런던은 마지막에 종합해서 올리기로).
브리스톨은 원래 일정에 없었던 곳, 웨일즈 친구집 숙박이 취소되면서 홧김(?)에 급조된 여행지다. 친구를 만나지 못한다면 4일을 있어야 할 명분이 사라지는 셈, 대신 중간 경유지인 브리스톨에서 일박을 추가 된 것이다. 나중에 살짝 후회하게 되는 에피소드가 생기지만 미래를 알수없는 우리는 그 선택에 흐믓해 하기까지..
런던과 기차로 한 시간 거리의 브리스톨에 내리니 역이 심상치 않다. 역이름은 템플미드, 2차 대전 때 폭격을 맞은 인근 템플 교화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이름에 걸맞게 뽀쪽한 첨탑들이 역이라기보다 성당에 더 가깝다. 올려다보니 높은 곳의 창문틀들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롭고 벽도 여기저기 떨어져 나가 마치 유적지 같다. 족히 100년은 됐을 건물을 보존만 하는 게 아니라 사용도 하고 있다니.. 여행자의 시선에서는 경이로움을 넘어 존경심마저 들게 한다. 오랜 시간을 품고 있는 공간이 주는 따스함에 잠시 젖었다 나오니, 날씨라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와 바람, 악천후 종합세트, 우산 조차 쓸 수 없다. 캐리어를 끌고 비바람을 헤치며 호텔로 가면서 ‘여행은 이런 거지 단맛이 있음 쓴맛도 있는 겨’ 울며겨자먹기로 생각을 바꾸니 비에 젖은 도시가 보인다. 런던과 한 시간 거리라는 게 실감 나지 않을 정도로 도시는 아기자기하다. 호텔에 체크인을 마치고 ‘온 김에’ 봐야 하는 랜드마크, 클리프턴 서스펜스 브리지(이름도 어려우니 그냥 클리프턴 현수교)로 갔는데 날씨 탓인지 관광객은 한 두 명뿐, 다리를 조금 걷다 포기, 우리 사전에 없는 택시를 불러 중심가로 갔다. 조그만 항구 카페에서 쉬면서 배 그려주고 (브리스톨은 해양도시), 저녁엔 펍에서 비 내리는 도시 바라보며 맥주 한잔. 기차역, 현수교, 항구카페, 펍, 기차시간 때우기용 쇼핑센터, 그리고 이틀 내내 비바람.. 아직은 생생한 브리스톨 여행은 시간이 지나면 비바람의 기억만 남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반이 필요, 그리는 동안 내 몸에 새겨지는 풍경과 분위기, 냄새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