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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Jul 25. 2023

그렇게 개할미가 되었다.

    

손주를 보는 친구나 또래 지인들이 늘어나면서, 할머니가 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생각만으론 감이 오지 않아 경험자에게 물어보면 ‘너무 이뻐’. ‘자식 키울 때랑 달라’. 천편일률적인 답이다. 모두가 그렇다 하니 그게 정답일 것이다, 하기사 남의 아기도 예쁜데 내 손주는 ‘말해 뭐 해’. 그 정도는 나도 안다. 그러면 내가 기대한 답은? 힘들다,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너무 바쁘다 등등.. 너무 쌤이 났나? 질투와 부러움에 눈이 먼 백설공주 새엄마 모양새다. 없는걸 뭐 어쩌겠어.. ‘있으면 있는 대로 행복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자유롭다’는 스님들의 말씀을 의지가지 하며 지내던 차, 아들에게서 톡이 왔다.

‘개 키울까?’

‘누가 준대?’

‘유기견이지’.

‘좋지, 엄마는 찬성’.

참고로 아들은 6년째 연애 중이지만 공공연한 비혼주의에 개인주의, 이기주의 성향. (나에게만 그런지 몰라도). 그런 아들이 자신의 시간과 돈, 에너지를 써야 하는 반려견 입양을 생각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답장은 그렇게 보냈지만, 고양이 입양건도 유야무야된 전작이 있기에 설마 했는데 며칠 후 쭈루루 강아지 사진이 올라왔다. 유기견 센터의 입양대기 중인 애들인데 그중 이 개월 된 믹스견이 끌린다는 설명과 함께. 그 후 아들은 여친과 센터를 방문하여 강아지와 대면을 하고 최종적으로 입양 날짜를 잡았다. 입양은 가족의 동의와 도움이 중요한지라 당일에는 내가 동행했는데 아들도 나도 살짝 설레고 긴장, 이게 뭐라고..  선생님의 환대와 함께 한 시간여의 컴퓨터 교육이 시작되었다. 아들은 인자한 미소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수업을 들었고 대신 강아지는 내 무릎에 앉혀졌다(할미랑 친해져야 한다고). 하지만 생애 처음 안아본 강아지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꼼지락거렸고, 강아지 단도리 하랴 중간중간 강의 들으랴, 인내력의 한계가 오면서 이 상황이   낯설기만 했다. 그야말로 각본에 없는 시추에이션. 게다가 “어머님, 얘는 아기예요. 아들 키울 때 생각나시죠?” 잊어버린 지 오래인 육아를 선생님은 계속 소환시켰고, 육견을 육아에 비유하는 것은  오버가 아닐까, ‘차라리 애를 키우는 게 쉽겠네 ’ 딴지도 걸어보고. ‘나는 교육 한번 받지 않고 아들 둘 낳고 키웠는데..' 수업시간에 딴생각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집으로 오는 길, 선생님의 단언대로 강아지는 차 안에서 공복토를 하고, 다시 공복토 먹기를 반복했다. 모든 것이 처음인 생후 이 개월 강아지에겐 힘든 여정이었겠지만 우리 또한 반려견은 처음이라 생소하고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 ‘체험, 삶의 현장’은 TV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강아지를 데리고 오랜만에 간 아들집은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다. 식탁에 매번 보이던 책대신 떡하니 올려져 있는 ‘우리 개 명견 만들기’, 거실 전체 깔려있는 미끄럼방지 매트와 삥 둘러 쳐진 펜스, 강아지집, 담요, 장난감, 배변매트, 거실은 강아지 용품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마치 아기방처럼. 내 눈에만 그런가?) 하지만 유달리 깔끔 떠는 아들이 이 상황을 만들고 기꺼이 감수한다는 사실에 아들의 진심이 느껴졌다.

'너는 얘의 뭐니?'

’ 아빠지 ‘

...나는 그렇게 개할미가 되었다.

     

강아지 이름은 밍고, 밍고가 오고 나서 제일 큰 변화는 남편이다. ‘나는 개가 제일 싫어’를 입에 달고 살던 남편은 지금은 밍고의 열혈팬이 되었다. 누구보다 밍고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잘 놀아준다. 산책하다 만나는 개를 바라보는 시선도 적의에서 관심으로 바뀌었다. 이유는 우리 식구라 생각하니 이뻐보인다는 것.

이게 개과천선? (넘 생뚱맞나?)


반려동물과 손주의 공통점은 그냥 예뻐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한다. (다른 점은 손주는 입양이 안되는데 개는 입양이 된다는 점?) 교육이나 경쟁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책임과 의무에서 살짝 비켜나 부담 없이(?) 예뻐하기만 하면 되는 할머니, 그런 찐 할머니가 되고 싶었는데 개 할미가 먼저 되었다. 순서가 좀 바뀌었지만, 먼저, 나중이 대수랴. ‘있으면 행복하고 없으면 자유롭다’를 주문처럼 되뇌이며 지금은 자유를 만끽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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