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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Jan 27. 2024

제주 바다, 풍차, 그리고 다시.. 우도.

    

제주를 다녀왔다. 팬데믹과 겹친 몇 년간 연중행사처럼 제주를 가다 보니 여행이라기보다 멀리 있는 친구 집에 놀러가는 기분이 들어,  다녀온것이 되었. 물론 제주에 친구가 있는 것은 아니니 심심풀이 땅콩 대용 ‘그림’이라는 친구를 동행한다. 그 친구와 놀다 보면 심심하거나 외로울 새가 없다. 게다가 제주의 바다, 나지막한 산들과 울긋불긋한 집들은 이미 트고 지낸 지 오래, 공항을 나서자마자 격한 포옹으로 맞아주는 바람 또한 마중 나온 친구처럼 반갑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현실 친구’와 그녀의 세컨드하우스에서 5일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한때 로망이었던 제주 한달살이의 맛보기 버전이라고나 할까. 그 당시 한달살이는 이런저런 이유로 번번이 무산되곤 했는데, 지나고 보니 짬짬이 다니는 것 또한 괜찮은 방법이었다. 제주의 동서남북, 중산간, 한 방향을 정해 여건에 맞춰하는 여행은 부담감이 덜하여 자유롭고, 약간의 아쉬움은 다음 여행의 기대를 남긴다.

내 경험상 제주를 오래 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한달살이 후 제주를 졸업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우리가 묵은 숙소는 고호의 노란 집을 연상시키는 옐로우 커티지 (한국은 로우 커티지, 고호의 그림은 노란 집, 뭔가 바뀐듯한?) 보는 순간 그리고 싶다는, 아니 그려야 한다는 스케쳐스의 의무감과 집에 대한 매너.. 하지만 이런 합당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제주의 거센 바람으로 자리를 깔 수 없었으니, 고호는 따뜻한 아를에서 어반스케치를 했을 텐데 정작 나는 지반(집안 스케치)을 했다. (그러게.. 고호 코스프레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바다를 앞마당 삼은 숙소, 아침에 눈 뜨면 보이는 창밖의 풍차는 키 큰 야자나무를 배경으로 하는 제주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강릉 안반데기에서처럼 바람의 언덕에만 있는 줄 알았던 풍차가 바닷가에도 있다는 새로운(?) 사실, 바람 많은 제주에 풍차가 있는 것은 당연한데 왜 그리 신기하고 이국적이었는지.. 멀리서 보면 바람개비처럼 조그마한 풍차는 가까이에서는 너무 거대해서 나는 마치 소인국과 대인국을 넘나드는 동화 속 걸리버가 된 듯했다.

제주를 친구집에 오듯 한다면서 이제야 풍차를 본 것은 아마 내가 바다보다 마을을 좋아해서 일 것이다. 선인장, 동백, 야자, 유채꽃.. 하나의 테마를 정해 오래, 자세히 보는 여행이 컨셉 라면 이번 여행은 단연 풍차, 제주에 ‘풍차 하나 추가’요.

한겨울임에도 발을 담그면 따스할 것 같은 에메랄드 빛 바다, 느껴지지 않는 바람을 타고 돌아가는 풍차, 거실 창밖의 풍경은 평화로움을 넘어서 비현실적이다. 그 속에서 나는 하나의 풍경일 뿐..

잠시 현실과 비현실이 경계가 사라진다.

 


4박 5일의 제주여행, 김녕바다를 마당삼은 숙소니 정해진 것은 대략 제주 동쪽이라는 방향뿐 가야 할 곳을 미리 정하지 않고 떠난 여행이었다. 둘 다 제주는 n차방문, 딱히 가고 싶은 곳이나 가야 할 곳은 없었지만 비행기 타고 렌트까지 했으니 비용은 털어야 할 판, 어쩔 수 없이 저녁이면 “내일 어디 갈까?”가 즐거운 고민거리가 되었다. 그 해결책은 맛집과 카페 탐방, 해마다 들어서는 대형카페와 맛집은 대부분 풍광이 뛰어난 곳에 자리 잡아 그 주변 자체가 새로운 관광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면의 통창으로 보이는 각기 다른 풍경, 스케쳐스인 내게 그림의 떡 같기만 했는데 그림을 그리지 않는 친구는 눈치 빠르게 나보다 먼저 멍석을 깐다. 친구의 성의도 괘심(?)하고 그림이 없으면 글을 올릴 수 없다는 물어보지도 않은 핑계를 대며. 하루에 한 장, 30분 정도 휘리릭으로 만족, (그림친구가 아니라면 한 시간 안에 마치는 게 예의)

그렇게라도 그려야 마음이 안정되니 그림은 내게 천연성분의 안정제?

.     

그리고.. 우도  

마지막 날, 우도나 갈까? 하는 친구의 제안으로 행선지 고민은 종지부를 찍었다. 친구는 7년 전, 나는 10년 전 우도여행의 기록을 뒤적이며 우도 하면 떠오르는, 어느 카페 문 앞, 햇살아래 다리를 쭉 뻗고 찍은 사진을 찾았다.

그때는 제주 여행이 아니라 우도여행, 남들은 한나절관광인 우도에서 (무슨 생각에서인지) 3박 4일을 묵었다, 사진 속 카페 사장님이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이 박을 하며 숙박객인 우리는 조식으로 커피와 샌드위치를 카페에서 먹었다. 오고 가는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 기분을 느꼈던 사일간의 우도, 관광객이 모두 떠난 휑한 우도에 가로등이 켜지면 할 일 없는 우리는 밤마실을 나섰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불 켜진 집 담벼락을 기웃거리고, 소화시킨다며 ‘달밤에 체조’도 하고, 우도의 밤은 낮보다 더 뚜렷이 기억에 남아있다.

십 년 동안 우도는 어떻게 변했을까. 검색을 하다 보니 우도에 훈데르트 바서파크가 생기고 상설전시장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 서울에서 몇 년 전 본 훈데르트바서전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한 나는(내 책의 글감이 되어주기도 했던) 친구에게 강권했고 우도는 갑자기 꼭 가야 할 목적지로 등극했다.

  

하지만 우도에서 더 놀랄 일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전 날 뒤적거리던 10년 전 사진 속의 그 카페를 만난 것이다. 발단은 뚜벅이 여행, 다리가 아프면 마을의 조그만 카페에서 쉬며 그림도 한 장 그리고.. 이런 생각으로 뚜벅이를 자처했지만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그건 네 생각이고’의 함정. 예전에 군데군데 있던 정감 있는 작은 카페는 대형카페에 밀려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우리는 카페를 찾아 다시 바다 쪽으로 나와야 했다. 세찬 바람과 아픈 다리를 끌고 내려오던 중 “여기 카페 있네. ‘노닐다’라는” 친구의 말에 귀가 번쩍, 10년 전 그 카페가, 내가 앉아 사진 찍었던 하늘색 문도 그대로인 채,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서 있었다.  

게다가 사장님도 그대로, 반가운 마음에 그때 사진을 보여주니 무척 귀한 사진이라며 연신 신기해하신다. 알고 보니 사장님은 우도 토박이에 지킴이, 인스타로 꾸준히 우도를 알리고 있었다.

감성 넘치는 사장님이 지켜주신 오래전 카페와의 해후, 이번 우도 여행은 그 한 가지로 끄읏~.

친구 또한 훈데르트 바서의 매력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했으니 우리의 우도 여행은 윈윈게임.

한달살이 열병이 도지면 우도에 다시 가야겠다. 사장님을 가이드로, 숨겨진 우도의 매력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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