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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Feb 18. 2024

내 인생의 숫자 3.

       

대부분의 은행업무가 온라인상에서 가능하고 출금 또한 atm기를 이용하다 보니 요즘은 은행에 갈 일이 거의 없다. 오늘은 밀린 통장정리나 할까 하고 나가는 길에 통장을 챙겼다. 은행 안 기계에 통장을 넣으니 몇 장 넘어가더니 역시나 ‘기재란 부족’ 뜨고 재발급을 위해 창구로 갔다. 바쁜 직원과는 달리 별 할 일이 없는 나는 자리에 앉아 이곳저곳 두리번 거리던 중 내 앞에 놓인 직원의 이름표에 눈이 갔다. 양**, 순간 어디서 많이 본 듯 익숙한 글자의 조합, 우리 아들들과 앞의 두 글자가 같다. 같은 성에 돌림자, 사실 남자였으면 궁금하지 않을 수 있지만 (아들 둘도 징글징글) 딸이 없는 나에게 돌림자가 같은 여자 이름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내가 딸을 낳았으면 이런 이름을 지었겠지?. 혹시 닮은 구석이 있는지, 시가 쪽 조카딸들 얼굴도 겹쳐보며 곁눈질로 그녀를 흘깃흘깃 훔쳐보고 무슨 양 씨예요? 아버님 존함은 어떻게 되나요? (항렬확인). 두더지게임을 하듯 눌러도 눌러도 튀어나오려는 묻고 싶은 유혹을 참느라 진땀이 날 정도였다. 만약 친절하게 꿍짝을 맞춰주면 ' 딸 할래요?'라는 다음 대사까지 머릿속에서 맴도는 위험한(?) 상황, 이 무슨 망발?  잘 보지도 않는 드라마를 찍고 있는 내가 우스워졌다.

웃다 보니 한편 구차해졌는데.. 과연 딸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을까?

       

구구절절 은행 얘기를 쓴 것은 숫자 3 때문이다. 우리 집에는 남자가 셋(아들 둘과 남편). 여기에 여자(딸) 하나 추가되었다면 내 인생이 지금보다 나아졌을까? (팔자는 낙장불입이지만 상상은 자유). 좋아지고 나빠지고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딸은 구원투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라마다 선호하는 숫자가 있듯이 사람들도 각자 마음속의 숫자가 있다. 흔히 7을 행운의 숫자라고 하지만 나에게 7은 무지개색 외 딱히 떠오르는 조합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숫자는 3, 알고 보니 숫자 3은 나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의 선호도 1위라 한다.

삼총사, 삼국지, 삼각대, 천지인, 만세삼창, 금은동 삼메달, 진선미, 아기돼지 삼 형제, 삼고초려, 삼세번, 최진사댁 셋째 딸, 서당개 삼 년.. 세 살 버릇.. 속담, 놀이, 노래, 동화책등 적다 보니 숫자 3의 행렬은 끝이 없다. 이러한 사실은 숫자 3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규정짓기에 적합하고 안정감을 주는 숫자로 여겨졌음을 보여준다.

 

이런저런 법칙과 상관없이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것은 개인적 경험에 의한 것이다.

일단 내 주변에는 앞에서 말한 세 남자와 그 구원투수 역할을 해주는 세 자매(두 여동생과 나)가 있다. 하는 일도, 성격도 달라 시간 맞추기 힘들고 때로는 사소한 다툼으로 잠시 소원할 때도 있지만 희한하게도 둘이 만난 적은 없다. 까칠한 동생이나, 대장질하는 언니조차도, 각자의 역할이 있어 하나가 빠지면 뭔가 허전할 것 같아 둘의 만남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셋이 되어야 비로소 완전체가 되는 느낌, 이 법칙은 친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10년째 만나는 삼인방이 있다. 여기서도 셋이 보는 것은 암묵적 철칙, 한 사람이 아프거나, 해외에 나가 있어 오래 보지 못할 때에도 세 명이 같이 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세 명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단연 여행이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나는 셋이 가는 여행을 좋아한다. 혼자는 외롭고, 두 명은 늘 붙어 다녀야 하는 부담감이 있지만, 세 명일 땐 조금 자유롭다. 차에서 혼자 앉을 수도 있고, 뒤쳐져 걸으며 말없이 혼자의 생각에 빠질 수 있다. 단체여행(삼인부터 단체의 개념에 들어간다)에서 잠시 혼행의 기분을 느끼다 심심하면 바통터치(?)도 가능하고 여행의 반은 맛집탐방, 세명은 되어야 먹고 싶은 음식을 웬만히 시킬 수 있다. 이 모든 이론은 경험의 소산, 오래전 각기 다른 세 명의 친구들과 했던 청산도, 우도 여행, 세 자매 여행까지, 굳이 맞추려고 한 것은 아닌데 어쩌다 세 명이 갔던 여행은 적당히 오붓하고 자유롭고 서로에게 집중하게 했다.

모임을 만들 때에도 일단 세 명은 모여야 시작할 수 있다. 세 명이 하다가 더 들어오면 좋고 아니어도 괜찮다. 증원의 부담감이 없다.

3은 일단 시작할 수 있는 숫자다. 하지만 세 명 구성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인간관계에 취약한 내게 한 명은 다른 사람들의 열 명과 맞먹는 수준, 두 명은 되는데 마지막 한 명이 없어하고 싶은 모임(독서모임, 글쓰기모임, 림모임, 영어스터디등)이 무산되고 연기된다. 혹자는 두 명이 하면 되지 하겠지만 상대방에게 100% 집중하고 집중받는 것은 버거운 일이다. 셋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 '세 명 급구'공고라도 내야 할판.

     

이렇듯 3이라는 숫자는 우리의 생활에 알게 모르게 깊숙이 들어와 있다.     

아마 내가 3에 연연하게 된 것도 이런 숫자 3의 법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 2, 다음의  수 3은 작지만 결코 작지 않다. 셋이 모이면 뭐라도 할 수 있다. 모임이든, 공부든, 여행이든. 역사나 신화 속의 숫자는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매력적인 만큼 가까워지기 어려운 숫자 3, 올해의 미션은 '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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