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남해, 여수, 목포, 순천, 무안, 함평, 구례, 내가 여행한 전라남도 끝자락에 있는 도시들이다. 대부분 하루, 이틀 머문 이 도시들 외, 오고 가는 길에 잠시 들른 곳까지 치면 더 많은 도시가 추가될 수 있다. 그럼에도 강진이 빠진 것은 강진이 관광지의 이미지로 부각되지 않은 탓일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아껴둔 것이 아닐까.. 미안한 마음에 핑계를 대어 본다.
사실 이번 여행 또한 전적으로 강진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강진 일주일 살기는 ‘강진’과 ‘일주일 살기’가 합쳐진, 요즘 뜨고 있는 일종의 콜라보네이션이다. 혼자는 조금 미흡할 때 둘, 셋이 어우러져 서로를 보완해 주는 마케팅, 내가 ‘그림을 쓰는’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숙소 창밖 뷰
‘ㅇㅇ에는 뭐가 있는데요?’ 이 말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의 패러디다.
흔히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나 또는 사람들이 많이 가는 여행지를 갈 때 그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말이지만 때로는 내가 나에게 묻는 말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콕 집어주는 그 말이 재밌어 가끔 내 여행기의 제목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번에 ㅇㅇ에 들어갈 도시는 강진이다.
강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한때 친하게 지낸 선배 때문이다. 강진이 고향인 선배는 일 년에두어 번 내려가곤 했는데 언젠가 같이 가고 싶다는 내 말에 ‘강진에 아무것도 없어’ 단호하게 손사래를 쳤다. 벌써 20여 년 전이고 지금은 많이 달라졌음에도 내 머릿속 시계는 그 시간에 멈춰져 강진은 ‘아무것도 없는 도시’로 남아있었다.
강진의 첫인상은 넓고 깨끗하고 조용하고, 도심의 전원주택단지를 옮겨 놓은 듯 (관광지에 국한될 수도 있지만) 내가 상상한 시골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마을의 집들은 담장을 허물어 집과 거리의 경계를 없애고 앞, 뒤 들판과 떠나버린 옆 집터까지 마당을 삼았다. 집들을 허물어낸 넓은 공터는 힘써 가꾸지 않아도 피고 지는 봄꽃과 나무들로 여기저기 작은 공원이 되었다.
여행의 이유와 목적을 차치하고라도 해외여행도 아닌 국내 여행을 위해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내기는 대부분 쉽지 않다. 하지만 시간 부자인 내게 일단 그 문제는 패스, 적당히 다니고 적당히 쉬고 적당히 지루하고, 적당의 정도를 정하는 문제가 남아있지만 그 또한 여행상황에 맞춰 조절하면 될 것이고, 게다가 아직 로망으로 남아있는 지방 한달살이의 선행학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고’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에 우선한 첫 번째 이유는 가성비였다. 매일의 아침식사와 두 번 제공의 저녁식사비에도 못 미치는 숙박비는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답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 답은 비용의 50프로를 지원해 주는 군청에 있었다. 그렇다면 가성비는 만점, 남은 것은 가심비다, 보통 가성비와 가심비는 시이소놀이처럼 한쪽이 올라가면 한쪽이 내려온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 둘 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최고치에 머물러있으니.. 이건 반칙(?)이다.
푸소는 한 곳에서 6박도 가능하고 3박씩 나누어 두 곳의 숙소를 선택할 수도 있다. 우리의 처음 숙소는 다산 정약용선생이 강진에 귀양 와서 처음 머문 사의재 마을로 주막과 저잣거리, 모란으로 뒤덮인 영랑생가등 관광지는 마을의 집들과 구분 없이 어우러져 있었다. 아침저녁 나지막한 뒷산과 마을 산책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던 삼일.
두 번째 숙소는 도원마을의 갖가지 꽃과 나무로 가꿔진 정원 넓은 집, 정갈한 이부자리와 매일 다른 메뉴의 한정식, 손수 내린 커피와 간식,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는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지.. 황송할 정도였다
‘왜 이제야 왔을까’, ‘그러게’ 오랜만에 장단이 맞은 남편과 내가 강진면서 감탄사를 연발한 것은 두 가지다. 그중 하나는 자연, 제 철을 만난 다양한 초록과 갖가지 꽃과 나무들 (집집마다 피어있는 갖가지 빛깔의 모란, 편백나무, 편백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삼나무, 황칠나무, 홍가시나무, 수백 그루의 배롱나무 군락지등), 그 나무들 사이를 오르다 보면 나타나는 다산초당, 지금은 숲이지만 그 당시는 산이 아니라 마을이었다 하니 가릴 것 없는 정상에서 보이는 풍경이 얼마나 멋있었을까 툇마루에 앉아 숨을 고르며 이백여 년 전의 풍경을 잠시 상상해 본다. 그냥 숲이려니 생각하고 간 백운동 원림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신비하고 아름다웠다.
자연 그대로의 원림과 적당히 어우러진 옛 집과 정자, 호수, 거닐다 보니 마치 내가 한 폭의 산수화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곳곳의 풍경이 다른 12경 중 제1경은 다산 선생과 초의선사가 차담을 나누던 곳이다.
흐드러지게 핀 겹벚꽃을 지나칠 수 없어 정자에 앉아 잠시 그림 한 장. 옆에서 도란도란 두 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다산 정약용, 고려청자박물관, 영랑생가, 오설록 다원, 한국민화뮤지엄(너무 훌륭했던 일대일 도슨트로 민화의 세계에 흠뻑 빠지게 한),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던 강진은 그 어느 도시보다 많은 조선시대의 유적과 유물로 가득했고 그 향기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이렇게 멋진 자연경관에서 예로부터 많은 예인이 탄생한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 그에 못지않게 훌륭한 학자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라는 사실은 이번 여행을 통해서다. 이유인즉 강진은 우리나라 최남단인 이유로 유배지로 적합했고 유배온 선비들은 제자들을 육성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것으로 힘든 유배생활을 견뎠다 한다.
강진의 정약용. 보길도의 윤선도, 흑산도의 정약전, 그 외에도 많은 선비들이 유배지인 남도에서 집필을 하고 학문을 전파하면서 후대 학자들의 산실역할을 했다.
실제로 1990년대를 전후해서 남도에서 많은 관료들이 배출된 것은 이런 연유일 것이다.
남편과 내가 감탄사를 연발한 두 가지 중 나머지 하나는 인정이다.
강진에는 순하디 순한 자연과 함께 그 자연을 닮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농가체험의 성격을 띤 푸소라는 숙박 때문이다. 아침저녁 차려주는 집밥을 먹으면서 주인장과 마주하고 얘기하는 일주일은 타임머신을 타고 비대면의 세계에서 대면의 세계로 돌아간 시간이었다. 서로의 생활이 궁금한 시골쥐와 서울쥐 같았던 일주일은 의도치 않았던 감염병으로 익숙해진 비대면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우리가 원했던 세상은 과연 이런 것이었을까. 단지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면 이것은 진화라기보다 퇴화가 아닐까.
푸소는 시작하는 날, 끝나는 날 강진 문화원에 들러야 한다. 푸소안내와 스트레스지수 측정,
간단한 알림이 있고 떠날 때는 서식에 따라 몇 가지 사항을 기재해야 한다. 마지막란은 푸소에 권의 할 사항이나 개선점, 남편이 답은 ‘일주일 내내 행복했음’, ‘그걸 쓰라는 게 아니잖아’ 핀잔을 주었지만 그 한마디에 남편의 진심이 농축되어 있음을,. 가끔, 아니 종종 여러 말이 필요치 않을 때가 있다.
강진 일주일살기의 또 하나의 매력은 강진을 베이스캠프로 남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도의 기분이 살짝 들지만 고흥, 진도, 장흥, 목포, 완도, 청산도등 멀어서 엄두를 못 내던 매력적인 도시들이 한 시간 내외의 거리에 포진되어 있으니 한 눈을 팔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진도, 장흥, 그리고 15년 전에 갔던 청산도를 다시 찿았다.) 대신 외박은 허용되지 않는 당일여행이다.
강진의 일주일은 친정 나들이 같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실컷 놀다 밤늦게 들어와도 잔소리하는 사람 없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의 부산 고향집 같았다.
여행의 방식은 진화하고 있다. 옮겨 다니는 여행에서 한 곳에 머무는 여행으로. 보는 여행에서 느끼는 여행, 관광지 위주의 여행에서 체험하는 여행으로. 새로운 여행의 패러다임에 맞춰 숙소의 형식도 바뀌고 있다. 호텔, 콘도를 벗어나 민박이나 에어비엔비, 잠시 현지인이 되어보는 농어촌 체험형으로.
모든 풍경중 제1경은 ‘사람 풍경’, 여행지의 풍경에 사람이 들어갈 때 때 풍경은 완성된다.